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오늘은 창세기 13장12~13절에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에서 "소돔" 과 더불어 "고모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께서 명령 하신대로 갈대아 우르를 지나 하란 땅을 거쳐서 가나안 땅으로 왔지만 함께 가나안 땅에서 정착을 하기에는 좁은 땅이요 또한 그 수하에 있는 양치는 목자들이 서로 다툼이 잦으므로 아브라함은 계속하여 가나안에 머무르기로 하고 롯은 소돔으로 갔으니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롯이 도망친 곳 "소알 땅" 은 모두 사해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들로 추정하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왜 "소돔과 고모라" 를 살펴 봐야 하느냐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며 또한 이 소돔과 고모라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은 누가복음 17장29~30절에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있고 이러한 이 인자의 날 즉 세상 끝, 마지막 때, 오늘날에도 롯의 때에 악함으로 인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소알 땅을 멸하신 것처럼 그 참 실상(참 형상)을 우리가 제대로 알지 못하여 예비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오히려 그 때와 같은 하나님께서 멸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에 거울(고린도전서 10장11절)과 경계와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 삼고자 함이니.....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용서치 않으시고 멸하신 것은 창세기 18장20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 26절에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사람의 죄악이라 함은... 우리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필요하고 발휘해야 할 인성(人性)은 나보다는 남을 낫게 여기는 이타심(利他心)과 겸손한 자세로 다른 사람을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배려하고 양보하려고 하는 사랑으로 행하여야 하는데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욕심)이 항상 먼저 앞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자신의 입장과 처지와 자신의 주관과 기준, 관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서로 자신의 입장과 기준만을 내세우게 되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이중적으로 행하게 되며 그 마음을 상석 곧 높은 자리에 두게 되어서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어하고 만약에 뜻대로 마음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분노하게 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녀 사냥하듯 비방하고 훼방하게 되며 이내 못마땅해져서 함부로하게 되며 언짢아지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갑질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를 범하며 악을 행하게 되므로 실상은 시간은 흘렀지만 공간(장소)는 바뀌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지 않으니 의인 오십이 없어서, 의인 사십이 없어서, 의인 삼십, 의인 이십이 없어서 결국엔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에 이르렀으며 더욱이 계시록 11장8절에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창세기에서 기록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던 죄악이 심히 중하여 멸하기에 이르렀던 이 역사적인 사실, 사건이 육적으로는 전혀 다른 장소, 다른 위치에 있는 소돔과 애굽과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즉 예루살렘이지만 영적으로 하면 소돔과 애굽과 예루살렘이 똑같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즉 오늘날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모이는 곳은 교회요 성전이요 예배당이요 성당이며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저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이 심히 중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어버린 것을 말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3장10~13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의인" 이라 함은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서 "의롭다.", "옳은 일" 하는 것은 밉다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뜻대로 안된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는 것이 아니라 언짢아졌다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으로 행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하며 상대방이 그렇게 한다고 정의를 위하여 용서(이해,관용)하지 못한다면 똑같이 사람 밖에 되지 않고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르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으로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만드신 것은 다른 사람, 다른 것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마음(영혼)이라는 것을 주셨기 때문이니 이를 진정한 "의인" 이라 하는 것이며 하지만 그리 행하려고 삶 속에서 애쓰고 힘쓰며 노력하는 사람이 없음으로 하여 의인이 없다고 하신 것이며 그러한 뜻을 알라고 전하여서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게 하고자 하여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1장20절에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 23~24절에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예수께서 주로 활동하신 곳은 태어나신 베들레헴을 떠나 제 2의 고향인 나사렛, 가버나움, 납달리와 같은 지역과 예루살렘으로써 권능을 많이 베푸셨다는 것은 소경이나 귀머거리나 앉은뱅이,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와 같은 아프고 불완전한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고치신 것을 의미하며 하지만 여기에서 꼭 짚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고치고자 하신 참된 실상은 마태복음 13장14~15절에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 하시는 것처럼 육체의 어떤 장애를 고치고자 하심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의 완악함 즉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악으로 인하여 마음의 눈을 감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마음의 귀가 닫혀서 똑바로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베드로전서 3장21절)에 있어서 선한 양심이 앉은뱅이가 되고 절뚝발이가 되고 혈기가 말라서 죽은 자가 같이 되었음을 돌이켜 고쳐 행하게 하여 그 마음과 생각을 고치고자, 개혁하고자 하신 것이니 성한 눈과 손으로 지옥(마태복음 5장29~30절)에 가는 것보다 차라리 실족케 한 눈을 빼버리고 손을 찍어버리고 구원을 얻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며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완악하고 죄악이 심히 중하였던 곳이 말씀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셨던 가버나움, 납달리, 예루살렘이었음을 말하고자 하신 것으로써 이는 그저 6000년 전, 2000년 전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해버린 역사속의 소돔과 고모라, 가버나움, 예루살렘을 말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고 그 약속을 받고 있는 우리들도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과 생각을 돌이켜서 고쳐 행하게 하려고 기록하여 주신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