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창세기 18장20절)
오늘은 창세기 18장20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 에서 "죄악(罪惡)"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에 관하여 창세기에서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서 일부 기록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간에 이 지나간 역사적 사실, 사건 즉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 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함은 심히 무거웠던 그 시대 사람들의 "죄악" 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고 거울처럼 들여다 보고자 함이니...
"죄악" 이라 함은 죄가 되는 악 즉 죄와 악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과 같은 것으로써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사기치는 "죄악" 은 이미 각 나라나 국가에서 정해놓은 법률과 규율로 합당한 벌(징역형)을 받도록 해놓았기 때문에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에서의 "죄악" 에 관한 것은 교도소 가고 구치소 가고 감옥에 가는 그러한 죄악에 관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도의적인 차원의 "죄악" 에 대하여 말하고자 함이며 하지만 또한 이런 사소한 죄와 악이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열 번 되어 무뎌지고 무감각해져서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사기치는 죄악으로까지 연결이 되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시편 55편3절에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하시면서 12~13절에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찐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찐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 사람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보복,복수)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이러한 "죄악" 에 관한 것으로써 처음에는 원수가 아니었는데 원수처럼 되었고 예전에는 미워하는 자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서로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은 어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가까에 있는 사람 즉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척, 친구나 동무, 이웃이 원수가 되고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이니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라는 것이 있고 나름의 기준이나 관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서로가 헤아려 주지 못하고 이해해 주지 못하고 존중해 주지 못한다면 이내 마음에 안들고 밉고 못마땅해져서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 분노가 흉보고 욕하는 비방을 하게 되고 비방하던 것에서 선을 넘으면 사나워져서 다투게 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악을 행하게 되니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와 기준과 관점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여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한다면, 이러한 사랑으로 행한다면 원수 같이 미워하는 "죄악"을 행할 일이 없어지고 화목하고 화평하고 평화로운 곳이 되려니와 그 것이 되지 않아 6000년 전에도 지금도, 거기도 여기도 중한 죄악으로 멸망과 파멸과 사망에 이르게 됨을 거울처럼 바라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에스겔서 16장2절에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 하시면서 46절에 "네 형은 그 딸들과 함께 네 좌편에 거하는 사마리아요 네 아우는 그 딸들과 함께 네 우편에 거하는 소돔이라." 하시는 것처럼 아모리, 헷 사람인 가나안 족속은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중에 함의 족보에서 나왔으며 그러나 예루살렘은 셈의 족보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게 그 근본과 난 땅을 가나안이라 하신 것은 가나안이 죄악됨과 같이 예루살렘도 똑같이 되었기 때문에 가나안이라 하신 것이며 또한 "소돔" 이라 표현하신 것도 그 죄악이 "소돔" 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니 그 죄악은 49~50절에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이 교만함과 거만함과 풍족함에 있으면 그 마음이 항상 상좌 곧 높은 곳, 높은 자리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면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어지며 함부로하고 갑질하게 되기 때문이며 실질적으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침 밷고 결국엔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긴 것은 그 마음의 자리를 낮은 자리, 낮은 곳에 두어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즉 이타심(利他心)이 없음으로 인하여 그들의 교만하고 거만하며 그 마음의 풍족함과 안이함에 있었기 때문이니 신명기 32장15절에서도 "여수룬이 살찌고 비대해지고 윤택해지매 그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발로 찼도다." 하시는 것처럼 사람이 배 부르고 등 따시면 처음에 가졌던 신실하고 순전했던 초심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체면만 남고 자존심만 쎄져 어느새 그 마음이 상좌에 앉아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하며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며 갑질하는 중한 죄악을 행하게 되며 6000년 전 그 때에도 그러하였음을 기록하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1장23~24절에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벳세다, 갈릴리, 가버나움과 같은 곳은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신 곳으로써 오늘날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곳은 교회, 성당, 성전, 예배당이며 이는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저 세상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 소돔에서 행한 죄악보다도 더 심하고 악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시는 말씀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자세는 어떠한지 거울처럼 들여다 본다면 과연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베드로전서 2장20절에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하시는 것처럼 선으로 행한다는 것은 그 근본이 상대방,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고 이해하여 존중하며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랑" 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하지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이중적이고 다중적이어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행하며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는 교만함으로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이해하지 못하고 존중할 수 없어서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악으로 행한다면 그 죄악으로 멸망하였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오늘날에도 멸망과 파멸과 사망을 피할 수 없으며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거울과 경계와 교훈으로 기록하여 주신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