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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교훈 안에 2021. 9. 30. 18:13

오늘은 창세기 42장1~5절에 "때에 야곱애굽곡식이 있음을 보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에서 "애굽" 과 "가나안"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이 시간 "애굽" 과 "가나안" 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함은 애굽과 가나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이며 예언은 마태복음 5장18절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다 이루시겠다는 변치 않는 약속이기 때문에 6000년 전의 이 애굽과 가나안의 참 형상, 참 실체는 무엇이며 또한 그 예언(약속)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들여다보기 위함이며.....

"애굽" 과 "가나안" 을 알기 위해서는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때" 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리니 사도행전 7장4~6절에 "아브라함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갈대아 우르는 바벨론을 말하며 하나님은 바벨론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으로 하란 땅을 지나 굳이 가나안으로 가게 하신 이유는 창세기 17장7~9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는 것처럼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그 후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으로 주어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표식, 표징, 관문으로써 믿는 자라면 다 할례(창세기 17장10절)를 받기를 명하셨으니 바꾸어 말하자면 할례를 받은 것이 있어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으며 하나님을 내 하나님, 우리 하나님이라 부르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니 이 할례는 진짜 육신, 몸의 표피를 베어내고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이는 율법에 근거한 할례 의식에 불과하며 또한 율법은 장차 올 참 형상, 참 실체에 대한 그림자이기 때문에 로마서 2장28~29절에서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 하시는 것처럼 "할례" 의 참 형상은 마음과 생각에 있는 쓰잘데기 없고 필요없는 것을 베어내고 잘라내는 것이며 사람에게 있어서 필요없고 쓸데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이 사람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이며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야곱의 12아들을 통하여 생육 번성케 하셨으며 또한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일이 있어야 하리니 중요한 것은 그 때 그 세대 사람들에게는 약속에 대한 증거(히브리서 11장39~40절)만 받았을 뿐 참 형상으로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세상 끝, 오늘날에 믿음의 의(義)로 행하는 우리들에게서 이루어질 약속의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땅 곧 애굽에서 나그네로 430년간 살아야 하리니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우리도 일제 강점기에 해방을 맞을 때까지 30년 가까이 우리나라 땅임에도 마치 나그네처럼, 손님처럼 되어서 다 빼앗기고 일제의 억울한 통치 아래에서 갑질 당하고 종처럼, 노예처럼 살면서 갖은 서러움과 고통과 고생을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그마치 430년이나 애굽에서 나그네로 종처럼 노예처럼 살면서 나고 죽고, 나고 죽고를 수 없이 반복하는 세월과 시간을 보냈으며 그 시간은 종의 근성, 노예의 DNA가 몸과 마음에 박히고도 남았을 시간이니 하나님께서 그 후손 곧 믿는 자들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애굽의 종노릇을 하게 하신 이유는 출애굽기 23장9절에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압제하지 말라는 것은 밉다고 미워하지 말고 뜻대로 안된다고 분노하지 말며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지 말고 못마땅하다고 사나워져서 다투거나 함부로하지 말며 언짢다고 훼방하거나 갑질하지 말라는 즉 죄와 악으로 행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여서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사랑으로 행하라는 것이며 하지만 우리 또한 죄와 악을 종이 되어서 죄대로 악대로 행하고 있으니 할례를 통하여 우리의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이, 못됐고 나쁘고 악하였던 양심이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되게 하기 위하여 그러한 시간과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며 이는 우리에게 거울과 경계(고린도전서 10장11절)와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써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에게서 이루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들어가야 할 참 형상의 가나안(히브리서 4장8절)이 남아있기 때문이며 그 선한 양심이 가나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게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8~11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가나안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일, 걸어왔던 길을 멈추고 편안하게, 안전하게 쉼을 얻는 안식의 땅, 안식처로써 6000년 전 여호수아가 되었건, 2000년 전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되었건 그 때 그 당시에 온전한 참 형상의 안식의 땅, 안식처 가나안을 주었더면 하나님께서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며 우리에게 할 약속이 남아있지 않았으리라. 다시 말해서 참 실체의 가나안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말씀으로 이미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하시고(히브리서 10장8~9절), 다 이루시고(요한복음 19장30절) 하나님 우편(에베소서 1장20절)에서 쉼 곧 안식하고 계시며 이 모든 것은 우리로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을 좇아서 따라오게, 지켜 행하게 하시려고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며 그런즉 우리가 거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짓과 가식과 외식과 체면과 자존심으로 말미암아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걸어왔던 길, 행하여 온 일들을 버리고 이러한 쓸데없고 필요없는 마음 가죽을 배어 버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리고 이해하고 존중하여서 관용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랑으로 행함으로 죄되고 악한 마음에 할례를 행함으로써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고 거처를 함께 거처를 하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구원이요 그 약속을 알리고 전하기 위하여 애굽과 가나안에 관하여 기록하신 약속의 말씀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