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요한복음 7장2절)
오늘은 요한복음 7장2절에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에서 "초막절"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초막절" 이라 하심은 유대인의 명절 곧 모세의 율법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절기(역대하 8장13절) 중에 하나로써 신명기 16장16절에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하시는 것처럼 여기에서 "무교절" 이라 하심은 "유월절(출애굽기 12장11~17절)" 을, "칠칠절" 이라 하심은 "맥추절, 초실절(출애굽기 34장22절)" 을 의미하며 "초막절" 은 레위기 23장43절에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초막" 이 상징하는 바는 430년간 애굽의 종노릇하던 것에서 탈출하여 안식과 쉼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는 꼭 거쳐서 지나가야 하는 나무도 물도 양식도 없는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있었음을 감사하며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게 함에 있으며 또한 "공수(空手)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라." 하심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 장막(출애굽기 25장8~9절)이었고 "장막" 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보이러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사(예배)를 드려야 하고 제사에는 절대로 빈 손(출애굽기 34장20절)을 보여서는 안되기 때문에 제삿상 곧 희생 제물을 드려야 하리니 이는 초막절을 비롯한 모든 절기(무교절, 칠칠절)에 적용이 되어서 오늘날에는 이 "장막" 이 교회, 성전, 성당으로 바뀌었으며 제사는 예배로, 희생 제물은 헌금으로 바뀌었으며 희생 제물(헌금)의 성격은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 죄를 대신하여 희생할 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죄에 대한 용서와 죄 사함" 의 차원이 그것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 사람은 죄인임을, 악인임을 잊지 말아서 더는 막나가지 않도록, 더는 엇나가지 않도록 제사(예배)와 희생 제물(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우리 사람을 묶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율법" 이라는 것이 장차 올 좋은 일(히브리서 10장1절), 좋은 날(베드로저서 3장10~11절)에 대한 그림자(껍데기)이지 참 형상이 아니며 우리 사람에 있을 좋은 일은 우리의 믿음의 소망인 "구원" 이요 좋은 날은 영원무궁한 차원의, 무한한 차원의 장구한 "생명의 날" 을 의미하여서 구원을 얻으며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 형상을 알아야 하리니 그런즉 "초막절" 에서 우리에게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참 뜻, 참 실체 곧 참 형상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으로써 고린도전서 10장5~6절에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노릇하던 애굽에서 탈출시키신 것은 종과 노예의 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법 곧 율법 아래에 있게 하고자 하심이며 또한 애굽에서, 광야에서 멸망받게 하려 함이 아니라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에 들이시기 위하심이며 비록 집도 절도 없고 물도 식량도 없는 광야 생활이었지만 때 되면 만나와 음료를 주시고 때 되면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살피시며 다만 초막을 지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 을 기억하게, 기념하게 하심으로 무사히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바라셨지만 목을 꼿꼿이 세우고 높은 마음으로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서로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 서로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애굽에서 즐겨하던 죄와 악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율법에서 지켜 행하라고 하신 계명 곧 "십 계명" 대로 지켜 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이는 거울과 경계와 교훈의 말씀으로써 우리에게 믿음의 소망인 구원과 생명(부활)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남아 있는 것은 우리가 들어가야 할 참 형상의 "가나안(히브리서 4장8~9절)" 이 남아 있음이요 그런즉 지금의 우리의 삶은 광야 생활과 다름이 없으며 아직도 여전히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행한다면 악을 즐겨함으로 광야에서 멸망 받은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히브리서 3장8절에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이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함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독불장군처럼 교만으로 그 마음을 상석에 두고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 하는 죄의 유혹(히브리서 3장13절)으로 행하기 때문이며 죄대로 악대로 행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광야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애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광야에서 벗어나 생명(부활)과 안식(가나안)과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하고 제어하고 다스리려는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을 겪어야 하며 겪어서 이겨내야 하리니 이를 앞서서 본보기로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시요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완전히 이루시고 끝내시려고(로마서 9장28절)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며 또한 광야에서 초막을 지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기억하고 기념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을 언제 어디서나 항상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은 시편 40편11절에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하시는 것처럼 주의 말씀 밖에 없으며 그러나 이 말씀이 누구나 들여다 보면 알 수 있게, 알아볼 수 있게 기록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기 전에는 온전히 깨우칠 수 없도록 이상(異狀)으로, 비유로 기록하셨고 그런즉 때가 이르러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히(요한복음 16장25절) 참 형상으로 알려 줄 때가 이르러야 비로소 말씀의 보호하심 곧 초막 아래에, 초막 가운데에 있게 되리니 이를 "보혜사 성령(요한복음 15장26절)" 이라고 하며 "보혜사 성령" 은 말 그대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영(靈)이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靈)이 바로 "말씀(요한복음 6장63절)" 이며 그 영(靈)대로 지켜 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 계명의 말씀 곧 "십 계명" 이니 우리 사람이 대대손손 행하여 온 죄와 악으로부터 탈출하여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최고한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계명의 말씀에 온전히 무조건 순종할 수 있을 때에 이것이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초막이 되어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얻기전까지 우리로 보호하시며 지켜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