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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와 징조...

교훈 안에 2022. 6. 18. 13:43

오늘은 에스겔 12장10~11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예조라~ 징조라. 그들이 당하여 사로잡혀 옮겨 갈찌라." 에서 "예조와 징조"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다와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의 왕과 온 백성이 이방 족속 바벨론에 의해 에워싸이고 사로잡혀서(렘1:3) 그들의 포로가 되었던 일에 관하여 기록하신 말씀이며 이는 에스겔 선지자 뿐만아니라 같은 동시대에 등장했던 이사야나 예레미야, 다니엘도 동일한 내용을 담아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예언서(선지서)이며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이 이방 족속(애굽,블레셋,앗스르,로마... 등등등)에게 사로잡혀서 그들의 종과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또한 성경 66권이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는 마지막 때 즉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무엇에, 어떤 것에 사로잡혀서 포로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려주고 전해줄 줄 알아야 이 시대에 필요한 목자요 리더이니..... "예조(豫兆)", "징조(徵兆)" 는 동일한 의미로써 어떤 일(사건,문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나타나고 드러나게 되는 조짐이니 징후 즉 전조증상이나 전조현상을 의미하니 다시 말해서 전도서 1장4절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하시면서 9~10절에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모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더욱이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은 일(사건,문제)은 시대시대마다 있어왔고 그 세대세대마다 겪어왔으며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사로잡혀서 포로되어 식민지 생활을 하였던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오늘 본문의 말씀 역시 그러하여서 에스겔 시대에 있어졌던 일(문제,사건) 자체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자체 역사만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은 표면적인 것으로 초보(초보적)에 불과하며 성경 66권은 역사책이 아니라 비록 6000년의 역사를 담고는 있지만 엄연히 일점일획(마5:18)이라도 다 이루실 약속의 말씀이므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만을 배운다면 일부분(부분적)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때 그 에스겔 시대에 빗대어 먼 훗날 거울처럼 똑같은 형태로 드러나고 나타나서 이루어질 일이라는 차원에서 이 일이 이루어질 때에 동일한 "예조와 징조" 를 보고 그 약속(예언,언약)을 믿게 하려 함이 목적이니 인자의 때가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눅17:26~28)와 같기 때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 12장54~56절에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성경 66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일과 그 뜻과 계획을 이루시고 끝(롬9:28)내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에 무슨 예조나 징조가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할 지라도 성경 66권 어디를 들여다 보아도 노아의 때에 홍수에 사로잡히고 아브라함의 때에 그 조카 롯의 가족이 이방 왕들에게 사로잡히는 일(창14:14), 모세의 때에 애굽에 사로잡히고 사사시대에 블레셋(삿10:6~9)에게 사로잡혔고 분열 왕국 시대에 유다는 바벨론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사로잡혔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 곧 유대인들은 로마의 속국이 되어 그들의 치리(다스림)를 받았으니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지식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만 그친다면 여전히 초보 아래에서 부분적으로만 가르치고 배우는 몽학 선생(갈3:24~25) 아래에 있는 것이며 그러나 이는 세상 끝 즉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알리며 세상 끝이 왔음을 분변케 하기 위한 "예조와 징조" 로써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사로잡혀 포로됨" 의 참 실체, 참 형상은 로마서 7장21절에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하시면서 23~24절에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시는 것처럼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특히나 죄에게 지고 악에게 져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언짢아지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한다면 죄악에 사로잡혀서 포로가 된 죄의 종(벧후2:19)이 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심의 목적은 죄에게 얽매이며 끌려다니는 죄의 종이나 되어서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파멸하는 사망의 길을 걷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오직 포로되었던 죄와 악에서 벗어나 자유케 하고자 함이요 그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 안에 기록하고 있는 계명(십 계명)으로 행할 때에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 중에 완전한 율법인 최고한 계명(막12:31)으로 행할 줄 알 때에 해방되는 것이며 이 기쁘고 아름다운 소식(사61:1~2, 눅4:18)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기 위하여 오신 것이 "그리스도" 이시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를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 이며 이러한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하여 스스로 절제하고 제어하고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고난" 이요 고난을 통하여 죄를 이겨내는 것 즉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는 것이 죽으심(롬6:6~10)이며 이러한 본과 자취(벧전2:21)를 보이신 것은 우리 또한 믿는다면 좇아서, 따라서 지켜 행하게 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4장3절에 "~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하시면서 15~16절에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하고 쓰고 있듯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다니엘 시대에 있었던 드러나져 있는 역사적인 사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으로써... "거룩한 곳" 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교회)이지만 사람의 손으로 지으신 집(행7:48) 곧 교회나 성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 사람이 진정 하나님께서 거하실 집이요 성전(고전3:16)이기 때문에 그 안에 깃들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덧입기를 원하시는 것이며 그런즉 "멸망의 가증한 것" 은 "사람으로 멸망케 할 미운 물건" 을 의미하여서 그것은 오직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와 악" 밖에 없으니 중요한 것은 한 집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한 우물(입의 말)에 쓴 물, 단 물을 낼 수 없고 한 몸에 두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가 되어야 할 우리 사람이 죄와 악에 사로잡혀서 포로되어 종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이 시대에 참 실체, 참 형상의 "예조와 징조" 이며 보았다면, 깨달았다면 거기서 도망쳐야 하리니 도망한다는 것은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죄에게 져서 얽매였던 것에서 벗어난다는 죄와 악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겨내기 위해서는 억누르고 쌓아놓았다가 한꺼번에 폭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제어하고 다스려서 좋은 것 곧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알며 관용으로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선한 마음으로 바꾸어서 행하는 것을 의미하니 이것이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의 메뉴얼이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 곧 고난이 필요하며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자연스레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을 수 있게 되며 죽어야만이 다시 사는 부활 곧 사망의 구덩이, 구렁텅이에서 건짐을 받아 생명의 길로 옮김을 받아 그 길을 걷게 되리니 그 길은 영원한 안전(사32:17)과 안식이며 이것이 구원의 참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