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누가복음 9장16절)
오늘은 누가복음 9장16~17절에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로 모인 무리들을 먹이시는 "먹을 것", 즉 "양식(糧食)" 에 관하여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중요한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 그저 육안(肉眼)으로 보이는 떡이나 물고기,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떡과 물고기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 사람의 육신(신체,몸)을 배 불리고 살찌우는 양식 곧 "떡과 물고기" 에 빗대어 우리 사람의 영혼(마음과 생각)을 배 불리고 살찌우는 양식인 "말씀" 을 알리고자 하여 "떡과 물고기" 에 빗대어 하신 말씀이니 육신을 배 불리고 살 찌우는 양식인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로는 많은 무리들을 절대로 먹일 수 없는 아주 적은 양이기 때문이며 그러나 그것이 영혼을 배 불리고 살 찌우는 말씀의 양식이라고 한다면 그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가 아니라 100개, 200개도 거둘 수 있으리니 "말씀의 양식" 으로 배 불리고 살 찌우는 것은 그 말씀의 뜻대로 지켜 행하며 순종하는 것이며 남겨서 거두어야 할 결실 곧 열매는 그리스도께서 생명 나무(요15:1,요11:25)이시니 생명 나무의 열매가 되는 것이며 그 열매를 담고 있는 그릇 즉 바구니는 그리스도이시며 성경 66권에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의 양식은 "떡과 물고기" 외에도 "떡과 포도주" 도 있고 "쓴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는 빵과 양고기(민9:11)" 도 있으며 "안식일에 밀밭 사이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으로 비비어서 먹은 밀(눅6:1)" 도 있으니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동전 앞 뒷면처럼 두 개가 겹쳐져서 마치 오버랩 되어진 것과 같이 앞 쪽에는 육안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만물과 뒷 쪽에는 그 만물의 참 뜻, 참 형상이 겹쳐져서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참 뜻, 참 형상을 반드시 드러내고 나타내서 알려주고 가르쳐주기 전에는 결단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만약에 참 뜻, 참 형상을 깨달아 알아서 그 마음과 생각이 배 부르고 살 찌웠다면 그와 같이 행하였을 것이요..... 그러나 우리 사람은 여전히 지금도 죄와 악에 얽매이고 져서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사나운 맹수처럼 물고 뜯고 싸우는 죄와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으니 "떡과 물고기"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셨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런즉 떡과 포도주를 떼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유익도 없는 것이며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본보기로 말씀의 양식인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깨달아 알아서 지켜 행하심(히10:7~9)으로 말미암아 생명(부활)으로 들어가시고 하나님 우편(히10:12)에서 안식하고 계시며 구원의 근원(히5:7~9)이 되셨으니 이는 떡과 물고기를 먹어 배 불리고 살찌우신 것이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정하신 자로서 "하나님" 이라고 하는 바구니 안에서 거두신 자 즉 첫 열매(고전15:23)가 되셨으며 또한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들을 거두어 들이시기 위하여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32~34절에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말씀의 양식이라고 하여 다 양식이 되는 것이 아니니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썩는 양식" 도 있기 때문이며 중요한 것은 이것을 무엇으로 구분하고 어떤 것으로 구별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으로써 "썩는다." 는 것은 언젠가는 변한다는 것이요 또 쇠하여 없어진다는 의미이며 쇠하여 없어질 것은 폐하여야 하리니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안에도 썩는 양식 즉 폐하여 없어질 양식이 있으니 히브리서 10장8~9절에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천국의 법인 "율법" 을 주셨고 그 율법을 통하여 우리 사람이 지은 죄와 행한 악에 대하여 장막(교회,성당)에서 용서와 죄 사함을 구하게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제사(예배)와 예물(헌금)이며 그러나 모세를 통하여 주셨던 율법에는 큰 헛점과 맹점(히7:18~19)이 있었으니 제사(예배)와 예물(헌금)을 통하여 무한 반복 용서를 구하는 신앙 고백과 죄 사함을 구하는 고해 성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용서를 구하고 죄 사함을 구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죄 아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그런즉 언제까지 죄 아래 즉 율법 아래에서 어린 아이처럼 용서만 구하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으로써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는 무한 반복, 중언부언 용서만 구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대안과 방법이 필요하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는 "순종" 이며 하나님의 사람을 향한 뜻은 오직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요13:34~35)" 이며 하나님의 뜻인 계명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동안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물고 뜯고 싸우던 죄와 악에서 벗어나고 이겨내야 하는 십자가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이 있어야 히리니 이를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신 후에야 부활(생명)에 참예하시고 안식하고 구원을 얻으셨으며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먹어야 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2장28~31절에 "서기관 중 한 사람이~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서야(요일4:20)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즉 최고한 계명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서로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이며 또한 이 최고한 계명에 순종함이 우리 사람으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가게 하는 "바구니" 가 되는 것이며 사랑으로 행하기(고전13:8~10) 위해서는 반드시 죄와 악에서 벗어나야 하며 죄와 악에서 벗어났다면 더는 죄를 위하여 용서를 구하는, 죄 사함을 구하는 제사(예배)와 예물(헌금)을 드리는 율법 아래에 있을 필요가 없으며 또한 눈에 보이는 떡과 물고기도, 떡과 포도주도 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