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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누가복음 11장17절)

교훈 안에 2022. 10. 10. 11:21

오늘은 누가복음 11장17절에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에서 "분쟁(紛爭" 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분쟁" 이라 하심은 어떤 한 집단이 이쪽 저쪽 또는 이편 저편으로 나뉘고 갈라져 서로 시끄럽게 다투고 싸우는 것을 의미하여서 이는 잠언서 6장16~19절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 곧 나이가 되었건 경험이 되었건 위치(자리)가 되었건 하다못해 성별로라도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아래에 두고서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교만한 마음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만약에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게 되면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있는 욕, 없는 흉까지 보태어 거짓된 것을 말하고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이간질을 하여서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고 대립하고 갈등하며 분쟁하게 만드니 이는 스스로 망하는 길이요 사망의 길이며 또한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실을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저질르면서 어찌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여 주여!!" 외치고 부르짖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말만 앞세워서 그 믿음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행실을 미워하고 이러한 행실을 행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요 하나님을 경외(잠8:13)을 경외하는 참된 모습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 12장51~53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남아있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마냥 평화롭고 유유자적하면서 기쁘고 영광스러울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도 아직까지도 마음에 이는 여러 정욕(욕심,욕구,욕망)으로 말미암아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분노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보복,복수)하며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이러한 분쟁에서, 이러한 죄와 악에서 반드시 벗어나고 이겨내야 하리니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다툼과 갈등과 대립과 분쟁이 있고 그 분쟁이 보복이나 복수를 낳고 복수는 테러를, 테러는 전쟁을 일으키는 일이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인가? 하는 것으로써 현인류가 출현한 이래로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전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그 죄악의 소용돌이와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시려고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 천국의 법인 "율법" 을 주신 것이며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모형과 그림자(히10:1) 즉 일부분만 보이시고 알리시고 기록하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참 뜻, 참 형상(실체)을 알아야 하며 알아야만이 하나님의 온전하고 완전하신 뜻을 깨닫게 되므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오셨던 것이며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많은 아들 곧 처음 익은 열매를 거두고자, 얻고자, 찾고자 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으로써 아직도 물고 뜯고 싸우고 분쟁하고만 있다면 하나님 나라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을 절대로 찾아갈 수 없을 것이며 "구원" 은 자동적으로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로만 그치게 되리니 그리스도께서 평강의 왕이요 화평의 신(神)이요 의의 왕(히7:1~2)이 되신 것은 하루 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롬6:5~11)으로 말미암아 밉다고 미워한 것이 아니라 뜻대로 안된다고 분노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안든다고 유대인들처럼 비방하고 때리고 침밷은 것이 아니라 입으로 범죄치 않으려 잠잠(시39:1~2)하려고 노력하였고 몸(행실)으로 범죄치 않으려 묵묵히 하나님의 계명(약2:8~9)만을 지켜 행하기(히10:7~9) 위하여 죄된 모양(롬8:3), 죄의 형체(빌2:7~8)를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 위하여 피땀눈물의 노력을 하셨으니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이요 십자가의 죽으심이며 이를 통하여 주변(가정,학교,직장,이웃)을 평화롭게, 의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곧 평강의 왕, 의(義)로 행함에 있어서는 왕중왕이 될 수 있었으며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두 번째 다시 오시는 추수 때에 얻게 될, 찾게 될 많은 아들 곧 처음 익은 열매들을 위하며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으로써 그 본과 자취를 좇아서 따라 행할 줄 아는 자라야 비로소 장자의 명분(갈4:1~5)과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하나님께 있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17~20절에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분명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열심으로 봉사하고 충성으로 하나님의 일에 앞장서서 하고 있는데 정작 그 행실은 미우면 갈등을 조장하고 뜻대로 안되면 대립각을 세우며 마음에 안들면 사나운 맹수처럼 물고 뜯고 싸우면서 분쟁하는 허망한 것으로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다면 하나님을 잘 몰로 안 믿고 못 믿는 저 세상 사람들 즉 이방인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제아무리 살아 온 연륜이나 경험이 많더라도 다른 사람을 아래로 보면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려고만 하고 체면과 자존심을 위하여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행한다면 그 총명함과 지혜는 아무런 효력(갈5:6)이 없으리니 오직 로마서 16장17~18절에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욕심)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4복음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신 생명의 교훈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더는 물고 뜯고 싸우고 대립하고 갈등하고 분쟁하는 것을 하지 말고 그 싸움(엡6:12)은 그 내면에서, 마음 속에서 싸워서 이겨내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이것이 "십자가의 죽으심" 으로써 죽어야만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 곧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부활(고전15:53~54)의 생명으로 옮겨 주시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벧전3:21)이요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