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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누가복음 12장2절)

교훈 안에 2022. 11. 4. 18:49

오늘은 누가복음 12장2절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 에서 "감추이고 숨은 것"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고 숨기고 싶은 마음 깊숙한 것이 있으며 다만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안 그런 척, 아닌 척, 없는 척, 꾸며서 포장할 뿐... 그러나 마가복음 4장21~22절에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은연 중에, 부지중(不知中)에, 무의식적으로 마음과 생각에 있는 말이나 행동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면서 감추고 있던, 숨기고 있던 내면의 것들을 드러내고 나타내게 되리니 터널처럼 어둡고 앞 일을 가늠하기 어려운 인생의 삶에서 그나마 저마다의 승화(악한 것을 변하여 선하게 만드는 것)시키고 순화(부드럽게 받아들임)하여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의 마음이 한 줄기 빛 즉 "등불" 이 되어주기 때문에 이러저러한 욕심(성공,재력)으로 말미암아 독하고 모질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은 언젠가는 드러나고 나타나게 되므로 절대로 감출 수 없고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로마서 16장25~27절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 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계시 곧 열어서 보여주셨고(요3:31~32) 그리스도의 사도요 선지자인 바울은 그리스도의 계시(갈1:11~12)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니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여 "기름부음(행10:38)" 이라 하시는 것이며 "복음" 을 전파함에 있어서 그 내용은 마귀에게 갇히고 억눌린 자(사61:1)에게 자유와 해방을, 죄와 악에 포로된 자(눅4:18)에게 놓임을 주시는 것으로써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과 안식과 구원" 이며 이 복음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오셨던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루시고 끝(롬9:28)내시기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며 만약에 감추이지 않았고 숨기우지 않은 것이었다면 두 번째 다시 오실 이유가 없는 것이며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감추시고 어떤 것을 숨기었던가? 하는 것으로써 지금까지 우리 사람들은 마귀에게 갇히고 억눌려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고 사랑하면 성령에 속하여 있다고 생각하지 마귀에게 갇혔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며..... "마귀" 는 용이요 사단이요 옛 뱀(계20:2)이며 또한 "마귀" 는 교회를 못가게 하고 교회의 집회나 성회를 방해하고 훼방하는 것을 "마귀" 라 하여 사람보고 "마귀야 물렀거라." 하는 표현을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요한일서 3: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등쳐 먹는 사기치는 "죄" 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성경 66권에서 말하고자 하시는 "죄" 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도의적인 차원의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며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하고 사나운 맹수처럼 물고 뜯고 싸우고 갑질하는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죄" 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러한 죄는 우리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또 그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여서 대대손손 유전처럼 이러한 망령된 행실(벧전1:18)을 해왔으므로 처음부터 범죄한 것이 맞는 것이며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여 없애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며 계속하여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마귀의 포로가 되어서 종노릇하여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갈 수 없으며(벧전3:21) 반드시 선한 양심으로 온전히 바뀌고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죽으심(롬6:5~11)이며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본과 자취(벧전2:21)를 좇아서 따라 행하는, 지켜 행하는 그리스도의 흔적(갈6:17)을 가진 자가 되신 것이며 이를 보아 그리스도에게 "계시" 를 받으신 것이 분명하며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요 제자로서 그를 사랑하며 믿는다면 감추고 숨기었던 것을 열어서 드러내고 나타내 보이신 "복음" 을 좇아서 따라서 지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리니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믿습니다.", "주여 주여!!" 외치고 부르짖는 것은 여전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여서 감추이고 숨긴 것과 일반이며 이 모든 것은 온전히 이루시고 응하여서 그 행한대로 갚아서 생명의 부활로, 심판의 부활로 드러나고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0장24~26절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세상에서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라 하여서 엄연히 위아래 즉 상하 관계가 있고 떠받들어 모셔야 하는 위치(자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는 제자와 선생이 같고 종이 상전과 같으니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선생된 자가, 상전된 자가 제자나 종 즉 아랫 사람을 섬길 줄(막10:45)을 알아야 하며 이를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높아진 것들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죽으심을 겪으신 것이며 또한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높아진 것 곧 모든 것을 아래로 보면서 뜻대로 마음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려는 욕심대로 하면서 뜻대로 마음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좌지우지 안되면 비방하고 훼방하며 칼자루를 휘두르지 못하면 사나운 맹수가 되어서 물고 뜯고 싸우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여 마귀의 포로가 되어 종노릇하고 있는 우리들을 위하여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며 이로써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되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아가게 하려 하심이며 이 복음이 온전히 드러나고 나타난 것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실 이유도 목적도 없는 것이며 그런즉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그리스도" 에 관한 온전한 뜻과 비밀을 깨달아서 고쳐 행하는 자가 "계시" 받은 것이요 "기름부음" 을 받은 것이며 감추고 숨겨졌던, 그래서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었던 소경이요 귀머거리에서 이제는 드러내고 나타내심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이요 이 사랑을 6000년 전 아담의 때에 이미 보이셨던 것을 그동안 감추이고 숨기었으므로 알지 못하였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