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에스겔 37장10절)
오늘은 에스겔 37장10절에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서 "생기(生氣)"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생기(生氣)" 라 하심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기운을 의미하며 우리 사람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생활함에 있어서 활력과 의욕이 있어서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기의 근원" 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그로 말미암아 "생기의 본질" 즉 그 참 형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써..... 다시 말해서 그저 먹기 위해서 돈을 벌며 또 먹었으니 싸고 그러한 지루한 일상을 재미있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놀며 이로 인해서 피곤해지니 잠을 자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생기" 는 인간(사람) 뿐만 아니라 본능으로 살아가는 동물들도, 지능이 1~2세 또는 3~4세 지능을 갖고 있는 짐승들(전3:19)도 먹고 자고 싸고 놀고 하는 아주 기본적인 "생기" 는 갖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프로그램이 입력된 로보트나 컴퓨터와 같아서 살아있다면, 기운만 있다면 획일적으로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생기" 에 불과하여서 이를 창세기 2장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고 쓰고 있듯이 바꾸어 말하자면 코에 불어넣은 호흡이 끊어지면(시146:3~4) 그 생령은 코에 불어넣은 호흡에서 시작했으므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호흡이 코에 있는 인생 곧 그러한 우리 자신을 믿지 말고 의지하지 말기(사2:22)를 말씀하셨으며 그런즉 우리 사람이 동물(짐승)이나 모든 생물과 다르며 보다 특별한 이유는 그저 먹고 자고 싸고 놀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소망" 이라는 것이 있고 "희망" 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과연 그 "소망의 실체" 는 무엇이고 "희망의 실체" 는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에 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에스겔 37장1절에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하시면서 5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시는 것처럼 이 내용은 정말로 죽은 사람들의 뼈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11절에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 이 없음을 인하여 멸절(滅絶)되었고 이는 마치 죽어서 썩은지 오래되어 뼈만 남았고 그 모습이 흡사 무덤(겔37:12~13)과 다름이 없음을 알리고자 하여서 에스겔에게 다른 모양 곧 이상(異狀)으로 보이신 말씀으로써 사람이 살아서 움직인다(먹고,자고,싸고,놀고)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없는 사람은 멸절 즉 멸망하여 완전히 없어진 것과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여서 이를 시편 106편13~15절에서는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하시는 것처럼 모세의 때에 하나님은 430년간 아무런 소망이나 희망도 없이 그저 애굽에 종노릇을 하면서 살아가던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아브라함과 하셨던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관한 영원한 약속(언약)을 지키시기 위한 가나안을 향한 노정을 위하여 애굽에서 탈출시키셨으며 그러나 430년간 나고(먹고,자고,싸고,놀고) 죽고, 나고 죽고를 반복하면서 몸과 마음에 박히고 새겨진 종의 근성에서 벗어나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시내 광야를 지나가게 하시면서 그 종의 근성을 벗어버리게 하시려고 율법의 계명(신8:1~2)을 주셨지만 어린 아이가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처럼 얼마 못되어서 애굽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이적)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서 먹고 자고 싸고 놀고 하는 삶(생활)을 위한 욕심(재력,학력,권력,성공)을 위하여 물고 뜯고 싸우는 본능에 치우쳐서 주신 계명을 지켜 행하지 않는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역리를 저질렀으니 우리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변함없이 얽매이고 져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종의 근성은 무엇일까? 바로 "죄악의 근성" 이며 또한 하나님의 모든 뜻과 계획을 이루시고 끝(롬9:28)내시는 마지막 때 즉 세상 끝에 아브라함과 하신 영원한 약속인 온전한 참 형상의 "가나안" 에 관한 생명과 안식(히4:9~11)과 구원이 남아 있으므로 지금의 우리의 삶은 시내 광야와 같은, 또 모세와 같은 선지자(행3:20~22)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시험 받기 위하여 계셨던 유대 광야와 같은 곳으로써 우리 사람이 하나님께 받을 시험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을 지켜 행하나, 안지켜 행하나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시험(히10:7~9) 즉 죄와 악에서 벗어나고 이기시는(요16:33) "십자가의 죽으심" 으로 하나님 우편에서 쉬고 계시는 것이며 이는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믿게 하는 식이 아니라 너희도 따라 좇아오라고, 우리도 그와같이 지켜 행하라고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으로써 아직도 여전히 지금도 계속하여 종의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코의 호흡에 의지하여 살아간다면 그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런 소망도 없이 멸절될 "뼈" 에 불과하여 그 뼈가 많이 모였있는 곳은 "무덤" 이 되리니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 예언의 말씀이기 때문이며 물고 뜯고 싸우면서 전쟁처럼 비록 뜻대로 욕심대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이룰지라도 그 마음이 담겨있는 영혼이 뼈만 남은 앙상한 가지처럼, 그 영혼이 파리하게 되어 멸절된 것을 전하고자 하시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시면서 45~47절에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산 영(靈)" 도 "생기" 요 "살려주는 영" 도 "생기" 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산 영" 은 과거에는 살았었지만 현재는 멸절되어 죽어버린 과거형이며 이렇게 과거형으로 머물게 한 주범은 오직 죄와 악(고전15:56)이며 또한 "살려주는 영" 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쭉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으로써 지금의 우리 사람은 "산 영" 이라는 사실이며 그 이유는 비록 성경 66권은 첫 사람 "아담" 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현인류(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있은 이래로 우리 사람은 죄와 악의 사슬에서 단 한 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고 다만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악이라는 것을 사람의 생각에 하나님께서 정립시키고 확립시켜주신 것이 6000년 전 아담으로부터(롬5:13)였을 뿐이며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모형과 그림자로써 애굽에 430년간 종노릇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울처럼 보여주신 것이며 중요한 것은 사람의 호흡(생기)이 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요6:63)을 담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이 숨쉬고 호흡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것으로써 그것이 바로 "text" 즉 "글(문자)" 이며 글을 말(언어)로 옮기기까지는 마음(영혼)에서 소화(계10:10~11)가 되어야 하며 그러나 글은 글이되 "살려주는 글" 곧 "살려주는 말" 이기 때문에 "살려주는 영" 이 되는 것이니 우리 사람을 살려줄 수 있는 말(말씀)은 오직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없이 먹고 자고 싸고 놀고하면서 욕심(약4:1~2)만 성취하고 욕심의 성취를 위하여 죄악의 무기를 사용하며 썩고 죽어갈 우리 사람에게 영혼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벧전1:9)에 관한 소망과 희망을 주시고 광야와 같이 매마른 마음 속에, 나그네와 같이 잠깐 왔다 갈 인생에서 그 소망을 위하여 "율법의 계명(눅10:25~28)" 주어서 지켜 행하게 하심으로 비로소 아브라함에게 하신 영원한 약속(창17:7~8)을 이루어주시고자 하심이며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우리 앞서서 보내주셔서 죄와 악에서 벗어나는 방법인 "십자가의 죽으심(롬6:5~11)" 몸소 실천하여 보이심으로 죄에게 해방되고 놓임 즉 탈출하게 하시며 그래야만이 비로소 온전하고 완전한 율법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가나안(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들어갈 자격과 명분을 갖출 수 있는 "산 영" 이 아닌 "살려주는 영" 의 "생기" 를 불어넣어 주시는 것이니 이제는 "몰라서 못했다." 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고 광야에서 계명에 순종치 못함을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뼈처럼 다 죽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지 말아서 알려주시고 소화(깨닫게)되게 하시는 보이는 길 앞에서 주저하며 고쳐 행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헛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