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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에스겔서 44:24)

교훈 안에 2023. 1. 28. 10:19

오늘은 에스겔 44장24절에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 에서 "송사(訟事)"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송사" 라 하심은 민사가 되었건, 형사가 되었건 어떠한 문제(사건,사고)로 분쟁이나 다툼의 여지가 있을 때에 그 나라의 법과 제도에 비추어서 판결하는 것을 의미하며 "승소", "패소" 하듯이 어느 한 편이 이기면 그 반대편은 반드시 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항소" 나 "제소" 를 통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끝까지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하는 일은 언제나 어디서나 메뉴얼이 있고 판례(判例)가 있어도 시대적인 흐름이나 여론, 재판관(판사)의 가치관이나 성향 또는 그 시대의 권력에 의해서, 재력(유명 로펌)에 의해서 좌지우지 치우쳐서 판결이 날 때가 많으니 돈 없고 빽 없고 힘 없는 것이 "송사" 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뜻으로써..... 그러나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송사" 는 일단 도의적이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이니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등쳐먹는 감옥(구치소,교도소)에 가는 일은 나라마다 국가마다 할 일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며 중요한 것은 그러한 "송사" 에 빗대어 비유하여 신명기 1장16~17절에 "너희가 너희 형제 중에 송사를 들을 때에 양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의 타국인에게도 그리할 것이라.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며~ " 하시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송사" 는 반드시 어느 한 쪽이 이기는 "승소" 와 또 어느 한 쪽이 지는 "패소" 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송사" 는 양방간의 공의롭고 공정한 재판(심판)이 목적이므로 절대로 사람의 외모(재력,학벌,권력,권위... 등등등)를 보지 말고 귀천(높고 낮음,있고 없음)에 치우치지 않으며 사람의 낯(체면,자존심,나이 많음,성별의 우월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리니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진정 공정한 재판, 의로운 판결, 하나님의 "송사" 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으로써 솔로몬은 열왕기상 3장9절에서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니 하나님께서는 11~12절에"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數), 부(富)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 유명한 솔로몬의 지혜가 3000년이 흘렀음에도 지금도 여전히 회자(膾炙)되고 있는 이유는 그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 께 있었고 또 그 재판이나 판결이나 송사의 기준이 그 무엇도 아닌 선악의 분별 즉 그 사람의 선하고 의로운 마음인지, 악하고 불의한 마음인지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또 중요한 것은 선하고 의로운 것은 무엇이며 악하고 불의한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야 하리니.....

일례로 마가복음 3장2~5절에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 하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하나님과 모세의 글(율법)과 시편의 글(시편,잠언,전도서)과 선지자의 글(예언서)을 믿고 의지하던 그 때 그 시대 사람들(서기관,바리새인,율법사,대제사장)이 안식일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먹고 또 사람도 고치기까지 하니 따져 묻는 내용이며 앞서 포스팅한 글에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여는 키포인트 첫 번째(사람의 죄와 악을 망라한 책)와 두 번째(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는 책)를 말씀드렸고 세 번째는 그런즉 사람의 어떠함 즉 그 마음의 일을 하나님께서 살펴보려고, 들여다보시려고 주신 책으로써 사람의 하는 일은 하다못해 먹고(밥,반찬,국,설거지,그릇 정리...등등등) 자고(이불 펴고 정리) 싸고(닦고 씻고) 말하고 걷고 움직이게 되는 모든 것도 일인데 안식일에 일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정확한 기준이나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일을 안할 수 없기 때문에, 움직이는 모든 것이 일이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다만 마음으로는 누군가가 너무 밉고 원수 같아서 열두 번도 더 죽일 수도 있고 또 마음으로는 누군가를 너무도 흠모해서 열두 번도 더 야한 상상을 할 수도 있으므로 굳이 안식일이 아니더라도 매일매일 선하고 의로운 마음으로 말하고 행하며 악하고 불의하여 죄스러운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하지 말라는, 그러한 일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며 그런즉 선하고 의로운 마음의 정확한 기준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메뉴얼이요 판례로써 곧 "서로 사랑하라.(요이1:5~6)",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롬13:8~10)", "원수도 사랑하라.(마5:44)",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라.(눅17:4)" 하신 율법의 계명을 통하여 요구(롬8:3~4)하신 "사랑" 이며 "사랑(고전13:4~7)" 은 상대방을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며 관용으로 배려하고 양보할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23~24절에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화해)하라." 하고 쓰고 있듯이 어느 종교나 하다못해 용하다는 점집을 가도 빈손으로 가지 않고 바칠 물건 곧 예물(헌금,과일,곡식,각종 음식,물건...등등등)을 제단에 드리고 바치는 것이 믿는 사람으로서의 도리요 예의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우리 자신의 죄와 악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니 그렇게 따지면 돈 많은 사람이, 예물을 많이 갖다 바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야 하고 만사형통해야 하리니..... 하나님께서 아벨의 희생 제물은 받으시면서도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신 이유는 그 마음에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죄(창4:4~7)를 아셨기 때문이고 또 그러한 악한 마음을 진짜 행동으로 옮겨서 동생 아벨을 쳐죽였기(요일3:11~12) 때문이며 사람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이므로 다들 실수가 많고 잘못도 하게 되기 때문에 살아가다 보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떤 모임(동아리,동호회... 등등등)에서, 이웃에서 원망 들을 만한 일, 다투는 일, 속상한 일, 기분이 나쁜 일, 억울한 일이 왜 없겠는가마는 누가 되었든지 먼저 화기애애하게, 화목하게, 화평하게, 평화롭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먼저 사화(화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 이며 이러한 빛과 소금의 일을 하라고 우리들을 부르신 것(골1:21~22)이며 이 모든 것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죽으심" 이니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정작 그 가르침과 교훈의 일은 하지 않는다면 어찌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2장13~15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처음에 모세를 통하여 우리 사람에게 율법 곧 말씀을 주신 이유는 "아멘, 아멘!" 외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지켜 행하라고 주셨고 지켜 행할 때에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복(신8:1~2)을 주시겠다는 것이며 그 율법의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서로 사랑하라.(약2:8~9)" 하신 계명 밖에 없으며 이를 온전히 완전히 지켜 행하지 못하니 아직도 그리스도의 믿음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며 또한 이는 어려운 것도 무거운 것(요일5:3)도 아니며 그리고 하나님을 잘 몰라 안믿고 못믿는 저 세상 사람들 마음 속에도 "사랑" 이 없는 사람이 없고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양심이 "율법" 이 되어 송사(판단,결정)하므로 그 자체가 율법의 행위가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의 하나님만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하나님(롬3:29)도 되는 것이며 하지만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분노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못마땅하면 사나워져서 싸우고 언짢으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는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하였으며 그 자유 의지에 대한 댓가와 책임은 멸망과 파멸과 사망의 길이었으니 다만 이러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음과 생각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랑으로 행함에는 어쨌든 노력과 정성(눅10:25~27)이 들어가고 마음 씀씀이에 수고로움이 있겠지만 그 잠깐의 고난과 고생과 수고로움으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에 서게 해서 안전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공정한 "송사" 는 없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하는 재판이며 만약에 "서로 사랑하라." 하신 프로그램만 마음과 생각에 입력되고 기록되어 있어서 뱀의 유혹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실도 없어서 그 프로그램대로만, 메뉴얼대로만 움직인다면 이는 로보트나 컴퓨터에 불과하지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자유 의지라는 특권을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셨기 때문이며 그러나 자유를 누리는데는 반드시 책임과 댓가가 따르며 이 또한 특권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