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오늘은 에스겔 47장13절에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에서 "지계(地界)"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지계" 라 하심은 말 그대로 땅의 경계를 의미하며 그 땅의 경계를 쉽게 알아보고 구분할 수 있도록 표식하기 위해 세워 놓은 돌이 바로 "지계석" 이며 중요한 것은 어떤, 무슨 땅의 경계를 나타내고자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인지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써 먼저 여기에서 10지파도 아니고 20지파도 아닌 굳이 12지파로 땅을 나누시는 이유에 관하여 계시록 21장10~12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 하시는 것처럼 혹자는 사람의 생각으로 "12는 완전 숫자" 라 해석하고 있지만 궁금한 모든 질문(자물쇠)에 대한 해답(열쇠)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 천국은 사람의 육안(肉眼)으로 볼 수 없는 영(靈)의 세계이지만 동일한 속성(성질,성향)이나 같은 맥락의 만물(롬1:20)에 빗대어서, 만물을 들어서 이를 볼 수 있도록, 이해할 수 있도록 말씀 안에서 기록하여 주셨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을 이끌고 인도하는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신부님,수녀님)의 역할이요 사명이지만 어디에서도 제대로 알려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으니 제 갈 길로 뿔뿔이 잘 흩어지는 양 같은 우리 사람들은 낭떠러지(멸망,파멸,사망)를 만나도 제대로 배우지도 듣지도 못하니 속수무책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며 그런즉 첫 번째 여기에서 "크고 높은 산" 이라 하심은 계시록 14장(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시온 산" 이며 이는 이름만 달리 했을 뿐 아담의 때에는 에덴 동산이요 노아의 때에는 아라랏 산이요 아브라함의 때에는 모리아 산이며 모세의 때에는 시내 산이요 2000년 그리스도 예수의 때에는 감람 산이며 이를 문자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면 이름이 다르니 장소도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자의 때가 아담의 때(호6:7)의 때와 같고 노아의 때(눅17:26)와 같고 아브라함의 때(갈4:22~27)와 같고 모세의 때(행3:20~22)와 같고 또 예수께서 가신 그대로, 본 그대(행1:11)로 다시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두 번째 여기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 이라 하심은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영의 세계" 로써 하나님 나라(천국)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에스겔서 1장과 10장, 그리고 계시록 4장에 기록하고 있고 그 성곽의 문이 동서남북으로 각각 세 문(계21:13)씩 있기 때문에 "12" 라는 숫자가 나오게 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열두 사도를 부르고 모으신 것이며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계시록 21장22절에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이므로 사실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상속하듯 분깃으로 나누며 또 큰 의미를 부여하여 진짜로 12지파로 나눈다거나 또 12사도의 이름을 붙이고 하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예수의 이름을 간판으로 걸어서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니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그리스도를 부인(마26:70~75)하였고 수제자가 그러하면 다른 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의심하고 경계하고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거나 은 삼십에 그리스도를 파는 제자까지 나왔으니 중요한 것은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부족하고 연약하여서 실수도 많고 잘못도 저지르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후회하고 통회하며 회개하여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잡아내시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여기에서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 하심은 히브리서 1장5~6절에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 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찌어다 말씀하시며~ " 하시는 것처럼 "천사" 는 "하나님의 부리는 영(히1:7,14)" 이기 때문에 진짜 "천사" 를 말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맏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자 하심이며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본과 자취를 좇아서 지켜 행한 처음 익은 열매가 될 많은 아들(히2:10)이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눈에는 천사처럼 보였던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래서 에스겔 47장14절에 "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 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옛적에 맹세하여 열조에게 주기로 하신 땅" 이라 하심은 창세기 17장7~8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는 것처럼 이는 아브라함의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영원한 언약으로써 사람이 자기 고향을 떠나기가 어디 쉬울까마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복을 향한 믿음 하나로 나고 자란 고향이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갔으니 중요한 것은 "영원한 언약" 이라 하심은 그 약속(언약)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가나안" 은 지도상에서 "팔레스타인 지역" 이며 하지만 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형제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이권 다툼으로 말미암아 끊임없는 분쟁과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보복과 복수와 테러와 전쟁이 난무하고 있는 이 곳을 어찌 "안식과 쉼의 땅 가나안" 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히브리서 4장8~11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실 아브라함과 하신 이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복에 관한 약속(언약)은 아브라함 훨씬 이전 1000년 전에 노아를 통하여 "방주" 로 하셨고 또 노아의 훨씬 이전 1000년 전에 아담을 통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아닌 각종 나무의 실과(창2:16) 그 중에서도 "생명 나무의 열매" 로 하셨고 그 참 형상으로써 아브라함 이후 1000년 후에 모세를 통하여 주신 10가지 계명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신8:1~2) 즉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주신 계명에 순종하느냐 순종치 않느냐에 따라서 어떤 시대에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느냐 혹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음으로 흙(사망)으로 돌아가느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시대에는 방주에 들어가느냐 혹은 홍수로 멸망당하느냐가 되기도 하며 또 어떤 시대에는 가나안에 도착하느냐 혹은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느냐로 표현한 것일 뿐 다 동일한(벧후3:7) 말씀으로 하신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관한 "믿음의 소망" 을 두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며 그러나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이 세상에 없으며 다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고 돌아서 이젠 무엇이 실상(참 형상)이고 무엇이 허상(그림자,껍데기)인지 제대로 구분조차 어려울 정도로 세월이 흐르고 흘러 6000년이나 지나오게 된 것은 지금까지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 약속(언약)에 대한 증거(히11:39~40)만 받았을 뿐이므로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기를 반복했던 것이며 이제는 온전하고 완전하게 그 약속한 모든 것을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루심으로 끝(롬9:28)내시는 세상 끝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러므로 진정한 참 형상의 "지계" 는 누가복음 22장27~30절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음이 다 상석(上席)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꼭 두 번 손이 가게 만들어서 누군가는 뒤치닥거리하게 만들며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지시내리면서 말로만 다하기를 좋아하고 행여 뜻대로 마음대로 안되면 부족한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탓하여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못마땅함에 이러저런 핑계를 대면서 상대방을 함부로(업신여김,무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니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눅10:25~27)은 서로가 서로를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게 하려고 주신 것으로써 이 지계를 넘거나 벗어나지 말아야 하리니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상(말씀)을 제대로 먹고 마신 자는 그림자(허상)인 떡과 포도주만 뗀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르신 말씀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5~10)을 본받아서 지켜 행하는 자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한, 순종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니 그러한 자에게 기촛돌이요 머릿돌이신 그리스도를 필두로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엡2:20~22)으로 함께 지어져 갈 다스리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으로, 이끄는 거룩한 나라로, 참 백성(자녀,성도)으로 삼아주신다는 것을 잊지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