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오늘은 예레미야 3장16절에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 에서 "언약궤(言約櫃)"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언약궤" 에 관하여 살펴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자녀,성도)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홍해를 건너고 시내 광야로 나오게 된 모세의 시대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으며 또 그 후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행3:20~22)가 드러나고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출애굽에서부터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마냥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사실과 사건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거울과 경계(고전10:11)과 교훈(롬15:4)의 말씀이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의 진짜 참 뜻, 참 형상(실물,실체)은 과연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또한 왜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귀한 하나님의 언약궤에 대하여 다시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기억하지도 찾지도 만들지도 않게 될 것이라는 말씀의 약속(언약)을 하신 것일까? 하는 것이니..... 열왕기상 8장6절에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하시면서 9절에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때에 버젓이 우리나라 국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지물이 되어서 일본의 법 아래에 있었던 것처럼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를 할 때에는 애굽의 법 아래에 있다가 탈출하였으니 그들에게 법이라는 것이 존재할리 없음은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며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하나님의 법 아래에 두게 하시려고 시내 광야에 있는 시내(호렙)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 을 주셨고 또 율법의 핵심 계명들(십 계명)을 기록하고 있는 두 돌판을 주셨으며 그 두 돌판에 기록된대로 지켜 행하는 자에게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신 영원한 언약(창17:7~8)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신8:1~2)이 있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조각목으로 만든 궤짝(나무 상자)이기 때문에 "언약궤(출25:10)" 라 하시는 것이며 또한 그 두 돌판을 "증거판" 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증거궤(출25:21~22)" 라고도 하며 나라마다 국가마다 다 헌법이 있고 법률이 있고 규율(규칙)이 있는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친 백성이 되기 위한, 천국의 시민이 되기 위한 법이기 때문에 "법궤(레16:2)" 라고도 하며 그 언약궤(증거궤) 위 그룹들의 날개 사이에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시고 거기에서 모세와 같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만나서 백성(성도,자녀)들의 그 죄와 악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때문에 언약궤가 있는 그 곳을 "속죄소" 라고 하며 또 광야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는 계속 옮겨(움직여) 다녀야 하기 때문에 언약궤를 보호하는 장막(회막,성막)을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식양과 기구대로(출25:8) 만들게 하셨으므로 이를 "증거 장막(행7:44)" 이라고도 하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곳이므로 "지성소" 라고도 하며 이것이 사울, 다윗을 거쳐 솔로몬의 때를 지나면서 "(예루살렘)성전" 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교회" 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서 부르고 있으니.....
중요한 것은 35년간 일제치하에 있었던 우리나라도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맞은지 올해로 벌써 78주년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강제징용이나 일본 위안부 문제나 대량 학살... 등등등 일제의 잔재(殘滓)들이 남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데 430년간 애굽이 법 아래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쉽게 애굽의 법 아래에서, 그 틀 안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주신 율법의 계명(언약궤)을 지켜 행하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하고 노력을 하는 모습(자세) 즉 그러한 마음 중심이 하나님의 눈에 보였더라면 순조롭게 40일이면 광야를 벗어나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으련만 결국 40년을 광야에서 헤매었고 40년이란 세월은 100세 인생 아니 100살도 이런저런 각종 질병이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뜻밖의 사고(문제,사건)나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상상조차 안되는 자연 재해(지진,쓰나미,가뭄,홍수,폭우,폭설,폭염,혹한... 등등등)를 만나면 의미가 없고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어쨌든 40년이란 시간은 멸망과 파멸과 사망에 이르기에는 아주 충분한 시간이므로 결국 생명과 안식(쉼)과 구원이 있는 가나안을 코 앞에 두고서 다 광야에서 죽었으니..... 히브리서 9장3~5절에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하시면서 9~10절에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언약궤 안에는 언약의 비석(두 돌판)들 외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까지 들어있으며 하지만 이제 이러한 것들에 관하여 낱낱이 말할 수 없음은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기억하지도 찾지도 만들지도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이렇듯 다시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기억하지도 찾지도 만들지도 않아도 되는 이유는 알고보니 이러한 것들이 참 형상(실물,실체)이 아니라 비유(比喩)와 같은 다른 모양(이상)으로 숨기고 감추어 놓은 모형과 그림자(히8:5) 곧 껍데기에 불과하여서 이에 의지하여 드려지는 예물(헌금)과 제사(예배)가 온전한 것이 아닌 일부분(초보)으로만 하는 것이므로 양심상 즉 죄와 악에 대한 구속력(속죄)이나 효력(구원)이 제대로 발동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래서 사도행전 7장48~50절에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하시는 것처럼 이 말씀은 선지자의 글 즉 이사야 66장1~2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항상, 늘, 언제나 동일하심(벧후3:7)을 알리고자 하심이며 또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장막,성전,교회)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 곧 만물(롬8:19~21)을 비롯한 사람(마음과 생각)을 집으로, 성전으로, 교회로 삼아서 거기에 깃들고자, 덧입고자(고후5:1~4) 하시는 것이니 그러나 한 집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 한 몸에 두 마음(간음,행음)을 품을 수 없듯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애굽의 법 아래에 있고서야, 다시 말해서 "죄와 악의 법(롬7:21~23)" 이 있고서야 어찌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언약궤)들을 지켜 행할 수 있으며 그런즉 율법의 핵심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눅10:25~28)" 하신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못하면서 그 드리는 예물(헌금)과 각종 제사(새벽예배,수요예배,주일예배,부활절,추수감사절,성탄절예배,금식예배,부흥성회,성령집회... 등등등)가 온전치 못한 일부분(초보)으로 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구속력도, 효력도 없으니 가나안(생명,안식,구원)을 코 앞에 두고서 다 죽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성도,자녀)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8장9~11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이미 있었던 일(모세 때의 일)을 후에 다시(전1:9) 하시며 또한 장래에 있을 일(두 번째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을 이미 지나간 옛 일에서 다시 찾으시는 것(전3:15)은 시대만 바뀌었을 뿐, 그 세대만 바뀌었을 뿐 결국 사람 살아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별반 다르지 않는 사람 살아가는 일 중심에는 "죄와 악" 이 항상 자리를 잡고 있어서 언제나 멸망과 파멸과 사망의 길로 이끌고 있기 때문에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주시려고 모세를 보내주신 것이며 그러나 모세를 통하여 보여주신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관한 언약궤와 언약궤가 있는 장막(성전,교회)은 온전한 참 형상(실물,실체)이 아닌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였고 모형과 그림자라고 할지라도 어쨌거나 그 마음 중심으로 계명을 지켜 행하는지, 안지켜 행하는지 알려하심(신8:1~2)이 본질이요 핵심이므로 지켜 행하기 위한 죄와 악에 대한 마음은 가위로 싹둑 자르듯 끊어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을 인하여 결국 멸망과 파멸과 사망에 이른 역사적 사실은 흠이 있는 첫 언약(히8:7)으로써의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와 교훈이며 이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하고 완전하게 이루시기 위하여 보내 주셨으므로 참 형상의 언약궤(장막,성전,교회)는 "사람" 이며 진짜 돌판이 아닌 "마음 심비(고후3:3)" 이기 때문에 마치 컴퓨터나 로보트에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칩(USB)을 입력하듯 그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하고 새기는 것이 참 형상의 둘째 언약 곧 새 언약으로 주신 것이며 그러나 지금까지 숨기고 감취었으므로 그것이 진짜 소중하고 귀한 것인줄은 알지만 죄와 악에 가로막혀서 보아도 못 보고 들어도 못 듣고 말해줘도 깨닫지 못하는 밤 속에서 잠들어 있었음으로 실천(실행)으로 옮겨 행하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밝히 참 뜻, 참 형상으로 마침내 드러내고 나타내고서야 뼛속까지 저리도록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보게 되고 듣게 되고 깨닫게 되니 지켜 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지켜 행하게 됨으로 물도, 음식도, 집도 생명도 없는 광야에서 벗어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니 모세의 때에 보이신 "언약궤" 가 껍데기(모형과 그림자)인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다시는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기억하지도 찾지도 만들지도 않게 되는 즉 이 약속의 말씀을 응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