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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넣는 것을 보시고...(누가복음 21장1절)

교훈 안에 2023. 5. 16. 16:38

오늘은 누가복음 21장1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넣는 것을 보시고~ " 에서 연보(捐補) 즉 "헌금(獻金)"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연보궤에 넣은 돈(또는 귀하거나 유용한 물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어떠함" 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가난한 자(과부)와 비교하여 꼬집어서 하신 말씀으로써 그 바로 뒷 구절 4절에 "가라사대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우리 사람은 가진 것이 많게 되면 자연적으로 머리를 굴리거나 계산기를 두들기게 되므로 순수하거나 순전하기가 쉽지 않지만 가진 것이 그리 많지 않거나 없는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온전함(전부)에 있어서는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심에 있어 우리 사람의 온전함(마5:48)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더 떳떳하고 자신있게 설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하면 있어도 없는듯, 없어도 있는듯 유연할 수 있도록 또 그렇게 되도록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연습(훈련)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학력,재력,지위,경륜,나이,성별... 등등등)를 취하지 않으시며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과 의(옳은 행실)를 행하는 사람(행10:34~35)을 받으시기 때문이며 또한 경외함은 악한 모든 모양을 버리는 데(잠8:13)서 시작되기 때문이며.....       

"연보" 라 하심은 말 그대로 자신에게는 없는 샘치거나 또 어떤 보상(댓가)을 바라지 않고서 남을 도와주는 물품 또는 돈을 의미하며 쉽게 말해서 교회(성당,성전)에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각종 헌금(감사 헌금,봉축 헌금,십일조,선교 헌금,절기 헌금,주일 헌금,금식 헌금...등등등)" 이나 "기부" 와 동일한 맥락이라고 보시면 맞을 것이며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포교(전도)하는 하나님의 일, 교회 사업을 위해 거기에 소속된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때에 바치는 돈(또는 유용한 물건)을 말하니 모세의 율법 즉 출애굽기 25장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禮物)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하시면서 35장5절에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 " 22절에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 하시는 것처럼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그 하는 일이나 드리는 것이 좋은 뜻에서 자원하는 마음(벧전5:2)과 자의(몬1:14)로 하는 것이 아닌 억지(강요,강압)가 된다면, 또는 호리고 꾀어 속임으로 드리게 만들었다면, 또는 좋은 뜻에서 시작했더라도 불순한(횡령,배임) 의도로 사용되었다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께 드리고 바친 "연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사람이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나 예물 즉 "연보" 나 "헌금" 을 드림에 있어서는 항상 예배(제사)가 동반되기 때문에 예배(제사)의 취지는 오직 우리 사람이 살아가면서 저질렀던 이런저런 허물이나 잘못, 범하였던 이러저러한 죄나 악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죄 사함" 을 받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며 하지만 "연보" 나 헌금" 이 절대로 우리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대신할 수 없고 면죄부(히10:11~12)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것은 일부분(초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죄 사함(엡1:7)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으려는 노력(롬6:6~11)을 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옳은 행실)로 행하는 사람의 참된 롤모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1장11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하시면서 13~14절에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정기적 예배)과 안식일(주일 예배)과 대회(큰 예배 즉 부활절, 추수감사절,성탄절 예배... 등등등)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부흥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하시면서 16절에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고 쓰고 있듯이 그것이 어디가 되었건 우리 사람은 모여있게 되면 끼리끼리 뭉치게 되고 또 서로 짝이 되어서 수다 곧 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는 작당모의(作黨謨議)를 하게 되는데 그 마음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된 마음이 있고서야, 못됐고 나쁜 악한 마음을 죽이지 않는한 언제 어디서나 계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이 교회(성당,성전)라고 예외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와 취지로 하신 말씀이며 또 그러한 죄되고 악한 마음을 버리거나 비우거나 죽이지 못하면서 드려지는 제물이나 예물(연보,헌금)이 도리어 죄되고 악한 마음을 감추고 숨기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가증히 여기시는 무거운 짐" 이라고 표현하여 기록하신 말씀으로써 이 세상에는 돈(금전)이면 다 될 것 같고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오히려 공의공도, 공정, 공평, 정의에서 출발하게 되는 평화(평강,화목)는 돈(연보,헌금)으로는 불가능한 "사랑(롬13:8~10)" 으로라야 가능하며 또한 "사랑(약2:8~11)" 이야말로 절대로 억지가 될 수 없는 좋은 뜻에서 자원하는 마음, 자의라야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돈(연보,헌금)" 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며 한계가 없고 한계가 있다하여도 뛰어넘어서 초월할 수 있는 "사랑(갈5:13~15)" 으로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께서 돈보다도 더 귀한 그 마음을 받으신다는 것이며 그 마음은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라야 얻을 수 있으며 비로소 죄 사함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9장11~12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하시면서 18~19절에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신령(神靈)" 이라 하심은 초자연적인 기운을 의미하며 그 말 속에는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5,600년 된 나무나 몇 천년을 사는 바오밥 나무를 신령하고 신성하게 보는 이유이지만 하물며 말 못하는 만물의 생물(거북이,나무)도 이러할진데 만물의 영장(靈長)인 우리 사람은 밉다고 미워하고 뜻대로 안된다고 원망하고 마음에 안든다고 비방하고 못마땅하다고 함부로하고 언짢다고 갑질하는 죄와 악으로 말미암아 죽고 썩는(겔18:20) 돌이킬 수 없는 사망(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으니 육신의 것 곧 "연보나 헌금(옛날에는 짐승의 피와 살 또는 곡식이나 과일)" 이 범죄한 영혼을 대신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만 온전한 것이 오기전까지는 이러한 일부분(초보) 아래에서 행하게 하셨으며 (율)법적 효력이 발생하고 먹혔지만 이제는 이러한 것으로는 구제(구원,구속)함에 있어서 도리어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한계에 다다르기도 함으로 인하여 이러한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율법 아래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제 몸(마음)을 희생하고 바치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셨으니 돈(연보,헌금)이 다(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며 오히려 돈(연보,헌금)과 끈끈하게 결탁되어서 끊어지지 않는 체면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죄를 범하게 될 때가 있고 악을 행하게 될 때가 있기 때문에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사서 먹고(사55:1) 마시라(계12:6)고 하신 것이며 이런저런 사람의 힘과 능력 즉 학연, 지연, 혈연 찬스 또는 학력, 재력, 지위 하다못해 나이가 많은 것으로, 성별의 우월성의 찬스를 통하여 앉게 된 마음의 상석(上席)은 사람으로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게 하고 계산기를 두들기게 하므로 스스로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그 마음이 가난하고 종이 된 마음의 말석(눅14:10)에 앉을 줄 알게 될 때에 그 누구보다고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 나라 천국의 백성이 되고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