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
오늘은 로마서 1장7절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에서 "하나님의 사랑"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이 세상에 "사랑" 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또 사랑이 없이는 "평화(평강,화평,화목)" 를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사람은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사랑합니다.", "화목(안녕)하세요." 라고 내밷지만 정작 뜻대로 안되거나 마음에 안들거나 못마땅하거나 언짢은 이러한 불편한 상황(입장,처지)을 마주하게 되면 이성간의 사랑이 되었건, 부모 자식(자녀)간의 사랑이 되었건, 스승과 제자간의 사랑이 되었건 모든 "사랑" 의 기본인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되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비방하며 훼방하고 함부로하며 갑질하는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의 죄를 범하면서 결국엔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싸우는 못됐고 나쁜 악대로 행하는 막다른 골목에까지 다다르게 되니 이것이 어찌 비단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세상 사람들 곧 이방인들에게 국한된 얘기라고 할 수 있을까? 믿는 사람들도 자신의 유익(체면,자존심)이나 이익(입장,처지) 앞에서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며..... 중요한 것은 로마서 5장12~13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러한 모습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현인류(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가 출현한 2, 30만년 전부터 있어 온 현인류의 흑역사이며 하지만 이것이 죄(罪)라는 것을, 악(惡)이라는 것을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정립을 시키고서 제제(절제,제어,다스림)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 불과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주신 모세 오경(창,출,레,민,신)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러한 상징적인 한 사람 "아담과 하와" 를 상징적인 한 장소였던 "에덴 동산" 에 세우심으로써 우리 사람 자신의 모습(태도)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하신 것이 바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요한이서 1:5~6절에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내려주셨던 율법과 율법의 계명은 온통 "(거짓말)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욕심)하지 말라.", "살인(미워)하지 말라.", "간음(두 마음으로)하지 말라." 하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내용들이었고 이대로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웃(가족,친구,동료,지인... 등등등)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19:18)" 하신 최고한 계명(약2:8~11)을 지켜 행할 수 밖에 없고 미워하고서야, 비방하고서야, 함부로하고서야, 갑질하고서야 절대로 율법의 계명들을 지켜 행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계명들을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마음과 생각을 항상, 언제나 절제(고전9:25)하고 제어(벧전2:11)하고 다스리려는(창4:7)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겪을 수 밖에 없으니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견뎌내지 못하고서 옛 뱀(마귀,사단,용-계20:2)의 꼬임에 넘어가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이 바로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서 행하였던 바로 아담과 하와의 모습(자세)이었고 그의 후손(아들)이었던 가인(요일3:11~15) 역시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악한 자에 속하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서 그 동생 아벨을 쳐 죽이기에 이르렀으니 그러나 이러한 일이 어찌 새삼스러운 일인가? 시대시대마다, 그 세대세대마다 있어 왔고 이로써 인류가 있은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고 그야말로 "사랑과 평화" 는 항상 허울 좋은 말 뿐이었던 것을.....
하지만 요한일서 4장8~9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랑합니다.", "사랑한다." 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보다는 표현하는 것이 더 낫고 그러나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으니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자녀)을 사지(死地)로 몰겠는가? 마는 하나님께서는 마치 아브라함(히11:17~19)이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듯 사랑하는 그 지으신 우리 사람들의 죄와 악(요일2:1)을 깨닫게 하시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게 함으로 생명(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더욱더 사랑하시는 독생자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주셨으니 그 사랑(욥11:7~9)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와 크기를 어디에 비길 수 있으랴. 이는 누가 되었건 희생이 없이는 절대로 "사랑" 을 이룰 수 없음을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며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비방하던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요 그 미운 마음에 때리고 침밷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고 결국엔 십자가(극형)에 못 박도록 주문을 했던 사람은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세상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던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아담의 후손들답게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였던 것에 똑같이 되어서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보통 우리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곧 그 율법의 계명들을 몸소 지켜 행하기 위하여 그저 잠잠히(시39:1~2), 묵묵히 버릴 것(죄)은 버리고 비울 것(악)은 비우며 죽일 것(사나운 심성)은 죽이는 십자가의 길(고난,죽으심)을 걸으셨으니 이렇게 하심은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역시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사랑" 을 외치고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루어야 살 수 있음을, 생명(구원)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몸으로 실천하여 가르쳐 주신 것이니.....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19~20절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 거짓말이요 이를 율법의 계명에서 "(거짓말)하지 말라, 간음(두 마음으로)하지 말라, 살인(미워)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며 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득불 죄와 악을 절제하고 제어하고 다스려야만 하며 죄와 악에서 벗어난 후에야 비로소 최고한 율법의 계명인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게 되며 사랑으로 행하는 그 모든 행동의 길이 다이렉트로 생명(구원)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