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오늘은 예레미야 12장1절에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에서 "형통(亨通)"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형통(亨通)" 이라 하심은 사람이 원하고 뜻하며 바라던대로 어떤 일이나 상황이 잘 풀리며 잘 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사람의 하는 어떤 일이 술술 잘 해결되고 잘 풀리면 누가 되었건 기분이 좋고 마음도 편안해지며 사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우며 행복하게 되니 그래서 이를 "안락(安樂)"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시고 있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지만 못됐고 나쁘고 악한 사람이 좀 약하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고 세상 물정 잘 몰라 잘 속고 이용만 당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자가 형통(성공,성취)하는 일 또는 다른 사람을 호리고 꾀며 가스라이팅으로 속여서 등쳐먹는, 조용히 맥이는 패역한 자가 안락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한 삶 속에서 착하고 약하고 바보처럼 순진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헤쳐나기에는 정말 힘들고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짐승도 그런 짐승이 없는 7머리 10뿔 괴물 같은 짐승의 사람들이 속히 징벌되지 않는 것에 화가 많이 치밀어 오르지만 화만 내고 짜증을 내며 분노만 한다고 하여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결될 수 없음은 자명하므로 좋은 방법은 그러한 악한 자들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될 수 있는 의로운, 올바른 삶의 지혜를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며 그러한 기준과 메뉴얼에 관하여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록하여 주고 있으니..... 예레미야 12장5~6절에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믿지 말찌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쉽게 말해서 걷는 놈 위에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 위에는 항상 나는 놈이 될 수 있어야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에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면류관(고전9:25~27)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주어지는 어떤 안락함이나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에만 안주(만족)하지 말며 또 지금의 어떤 잠깐의 형통함을 무사하게 여기기에는 "세상만사 세옹지마", "세상사 요지경" 하는 것처럼 가시덤불이나 어두운 터널들이 너무나 많으므로 인생에서 그래도 40, 50살은 넘어야 차지할 수 있는 범위의 높은 자리 즉 대통령(임금)도, 회장도, 원장도, 학장도, CEO(사장,대표)도, 고위공직자(철가방)도, 또는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듯 부릴 수 있는 위치(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위세(위력)은 길어야 겨우 5년, 10년, 15년 정도 밖에 안되는 "잠깐의 천하(天下)" 를 부러워하지 말기(잠24:19~20)를 또 이러저러한 인맥(혈연,지연,학연)에 기대어 줄을 서거나 뒤 봐주거나 눈 감아주는 약은 세상의 지혜에 의지하지 말거나 믿지 말기를 말씀하고 있으니 그 "잠깐의 천하(天下)" 가 영원할 것 같지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호통하던 40, 50살 뒤에는 금방 기력도 쇠하고 그마저도 이런저런 질병을 인하여, 사고를 인하여, 재해를 인하여 그 년수를 다 못채우고 개죽음 같은 요절을 하거나 또 골골거리며 시들시들 무너져가는 이젠 종이 호랑이에 불과한 70, 80, 90살은 오게 되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때까지도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그 때에서도 형통하며 안락하고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즉 그렇다면 걷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되어서 형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찾아야 할, 찾아내야 할 지혜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시편 14편2~6절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두려움이나 무서움이나 근심걱정염려가 없는 사람이 없고 또 이를 인하여 조급하고 초조하고 서글프지 않는 사람이 없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갑자기 찾아오는 질병(암,바이러스)이나 뜻밖의 사고(폭행,폭력,살인,공갈사기,교통사고... 등등등)나 상상치 못한 재해(전쟁,인재,지진,해일,폭염,혹한,홍수,가뭄,태풍... 등등등) 앞에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내일 일을 기약할 수 없는 캄캄함에서 소경처럼 더듬더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오늘날의 지금은 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산책하는 길에서 동물을 만나는 것보다 사람을 마주치는 것이 더 무섭고 두려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이러한 속에서 무슨 형통을 말할 수 있고 무슨 안락함을 자랑할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진짜 형통함과 안락함은 두렵거나 무섭거나 근심걱정염려가 없으며 개죽음을 당하는 파리목숨 같은 질병이나 사고나 재해 앞에서도 보호함을 받고 있다는 당당함과 용기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선(善)과 의(義) 곧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랑을 행하기에 계산적이지 않는 정직(전7:29)하게 지으셨기 때문에 이러한 순리를 거슬러서 역리로 행한다면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은 불가피한 것이므로 주신 그 지각대로 지켜 행하는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며 그러한 사람과 함께 계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알았고 깨달았다면 잠깐의 형통이나 안락함을 위하여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싸우고 전쟁(경쟁)하던 더러운(추잡한) 곳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리니 잠언서 24장1~2절에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하시면서 13~14절에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못됐고 나쁘고 악한 마음으로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하고 훼방하기도 하며 또한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못마땅해지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는 죄인이요 악인이며 그러한 우리 삶 속에서 잠깐의 형통이나 안락함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러저러한 두려움이나 무서움이나 외로움, 이런저런 슬픔이나 아픔이나 괴로움을 주어서 우울하고 실망스럽다 못해 절망스러울 뿐..... 그러나 이러한 죄와 악에서 벗어나려고, 이겨내려고 노력하면 우리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기준과 메뉴얼이 되어주는 하나님의 율법의 (십)계명의 "섬기라, 공경하라, 사랑하라." 하신 명령에 순종할 수 되며 그 순종함이 피난처가 되어 진짜 형통함과 안락함을 선물할테니 이보다 더 단 꿀이 어디에 있으며 이보다 더 큰 지혜가 어디에 있을까?
그러므로 누가복음 16장25절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하시면서 31절에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은 19절 이하에서부터 기록되어 있는 "부자와 나사로" 에 관한 이야기로써 시간이 되시면 다 읽어보시면 좋으시리라..... 여기에서 "부자(富者)" 하심은 우리 사람이 무엇에 배불러서 부자로 있는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재력이 많건 적건, 학력이 높건 낮건, 나이가 많건 적건, 지위가 높건 낮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에 대하여 배불렀고 사람이 사람을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밟아버리는 악에 대하여 부자가 되어서 이러한 것으로 자신의 뜻(기준,잣대)을 관철시키며 자신의 마음(기분,가치관)을 꼰대처럼 주입시켜서 하게 만들어서 형통하며 안락함을 유지하여 왔지만 이제는 이러한 것으로부터 가난한 자(마5:3)가 되기 위하여 그 무엇보다 피땀눈물의 노력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 필요함은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이며 그 때에 온전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위로와 갚으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미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에 관한 기준과 메뉴얼이 되는 율법의 (십)계명을 주셨고 이를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지켜 행하기 위하여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시고 이기심으로 비로소 부활(생명,안식,구원)에 들어가신 롤모델, 본보기를 보고서도, 읽고서도, 듣고서도 말로만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할 뿐 좇아서 지켜 행하지 못한다면 어찌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으며 율법의 (십)계명을 선포한 모세를 비롯한 그 바탕이 된 시편(잠언,전도)이나 선지서들 곧 성경 66권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선물인지도 모르고 어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