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오늘은 로마서 2장10절에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선(善)" 이라 함은 사람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도의적인 기준에 맞도록 옳게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동일한 맥락에 "의(義)" 가 있으며 이렇게 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착한 사람이다.", "의인이다." 라는 표현을 쓰며 그러나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중요한 것은 우리 사람이 이렇듯 착하고 의롭게 행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기분에 의해서, 입장(처지)에 따라서, 관점(잣대,고정관념,선입견)에 의해서, 성향(가치관,신념)에 따라서 그 마음이 동전 뒤집듯 뒤집히고 변질이 되어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인하여 속 시끄러워지고 머리 시끄러워지면 상대방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또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못됐고 나쁜 죄(罪)와 악(惡)도 행하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사람을 마냥 "선을 행하는, 의를 행하는 사람" 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선한 사람" 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악한 사람"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것이니.....
그래서 고린도후서 13장7~9절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찌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아담(창3:17)이 그러하였고 아담의 아들 가인(창4:1~8)이 그러하였으며 노아의 때에 노아의 아들 함과 그 후손(가나안)이 그러하였으며 아브라함의 때에 그 조카 롯의 후손(모압,암몬)이 그러하였으며 모세(신32:48~52)가 그러하였고 다윗(행2:34,13:36)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우리 사람은 처음에 가졌던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고 순전하였던 마음은 세월이 쌓이고 나이가 쌓이면서 점점 순수하고 순전했던 열정의 마음보다 체면과 자존심이 더 앞서게 되고 구렁이 담 넘듯 스리슬쩍 담 너머로 그 열정들을 던져버리게 되기 때문에 가장 경계 해야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으로써 그 변한, 변질된 마음을 인하여 이 세상에 의인은, 선인은 없나니(롬3:10~15) 아주 없으며 (전7:20) 그런즉 다 죄인이요 악인이며 이는 들추어내고자 함이 아니라 이를 인지하고 인정하며 자각할 줄 알아야 돌이켜서 고쳐 행할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생기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소위 "선민(選民)" 이라고 할지라도, "선민의 할아버지" 라 할지라도 죄와 악에서 온전히 떠나지 못한다면, 벗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심(전7:29)의 취지와 목적에서 떠나있으므로 "온전한(마5:48) 선을 행하는 사람" 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마가복음 3장4~5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 하시는 것처럼 지금(오늘날)의 종파간, 계파간의 차이에 의해서 "안식일" 이라고 하여 쉬고 있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장차 올 온전하고 완전한 참 형상(실물,실체)의 안식일(히4:8~11)에 대한 그림자(히10:1)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의 움직이는 최소한의 모든 것(먹고 자고 싸고 놀고 보고 듣고... 등등등)까지도 일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이를 안식일이라고 하여 안할 수 없지 않는가? 하는 것으로써... 다시 말해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쉬고 하지 말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이 언제 어디서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오직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죽이는 것이니 꼭 사람을 칼이나 총이나 무기 같은 것으로 찌르거나 쏘거나 때리는 것만이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훼방(보복,복수)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되고 악한 모든 일련의 행동(행실)들이 서로가 서로를 시들어 죽이게 하는 몸짓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하지 말기를, 이제는 좀 쉬기를 말씀하신 것이며 대신에 서로가 서로에게 선과 의를 끼치며 생명을 구하는 몸짓들 즉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일을 해야 하리니 이는 수고로운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당연히 할 몸짓이지만 우리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우리의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또 그 부모의 부모가 그러하여서 대대손손 유전처럼 이러한 악을 행하는, 생명을 죽이는 망령된 행실(벧전1:18)을 해왔음을 인하여 선과 의를 행하며 생명을 구하는 것이 노력해야 하고 애쓰는 수고로운 일이 되어 버렸지만 온전한 (선을 행하는)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하고 마땅한 몸짓들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전도서 3장11~13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시간이 되시면 전도서 3장 전장을 다 읽어보시면 좋으시리라..... 우리 사람은 범사(매사)에 기한(정한 시기)과 끝(이룰 때)이 있어서 태어났으면 쭈욱 살아가면면 좋으련만 죽을 때가 있고 심었으면 실하고 꽉찬 열매만 얻으면 좋으련만 어느새 잡초나 쭉정이가 올라와서 열매가 먹을 양분을 빼앗아가니 뽑거나 거둘 때가 있으며 또한 사랑할 때가 있으면 쭈욱 사랑만 하면 좋으련만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을 통하여 서로가 모든 것을 잃고나서야 비로소 평화할 때가 오니 이러한 일(전3:9)의 수고를 통하여 사람이 얻을 이익(유익)이 무엇이 있으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생의 일(전3:18) 아래에 두시고 우리 사람을 시험하심은 먹이(재력,권력,학력,위력,지위... 등등등) 앞에 서슬퍼런 이빨을 드러내어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싸우고 전쟁하는 짐승과 다름이 없고 결국 그러한 짐승들처럼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개죽음을 당하는 파리목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 하심(전3:19)이요 깨달았다면 이제는 죄되고 악한 일에서 벗어나 이제는 선하고 의로운 일로 먹고 마시고 자고 싸고 놀고 보고 듣고 하는 수고로움을 통하여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낙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이요 은혜요 선물이니 하나님(토기장이)께서 사람(그릇) 지으심의 그 심오한 시작과 그 끝을 어찌 알랴. 사람(그릇)은 사람(그릇)일 뿐 다만 귀히 쓸 그릇(영원)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하며 그 사모하는 마음은 선하고 의로운 말과 행동(행실)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