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교훈 안에 2023. 12. 19. 16:44

오늘은 누가복음 24장7절에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에서 "다시 살아나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다시 살아나다." 라 하심은 죽었던 생명이 살아나서 다시 살게 되는 것 즉 "부활" 을 의미하며 다시 살아나서 부활에 이르게 되면 다시는 죽음을 맛보지 않게(계20:5~6) 되므로 그 자체를 진짜 "생명" 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이니 100세 인생에서 하루살이의 생명을 생명으로 볼까? 영원한 시간(생명)에서 100세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아주 하찮은 것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 이 지구상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 을 경험한 일은 없었으며 비록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부활한 사람" 곧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몇몇 사람들(나사로,엘리사가 다시 살린 사람)에 관하여 기록은 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들조차도 살아서 존재하고 있지 않음을 인하여 그저 믿기 어려운 추상적 의미로 다가오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의미" 는 어떤 경연(대회,오디션)에서 탈락하거나 탈락할 위기에 있을 때에 건져주거나 살려주는 상징적인 의미 또는 잊혀졌거나 사라졌던 그 무엇이 다시 되살아나 효력이나 효능이 발생하는 역주행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니... 그러나 생명의 시작도 끝도, 밑도 끝도 없는 생명의 하나님(히7:3)께서 그러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능력과 권세)을 말씀(text)을 통하여 그리스도(요11:25~26)에게 주셔서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게 하셨고 또한 이 모든 날을 세상 끝, 마지막 때를 정조준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러한 말씀의 뜻을 좇아서 지켜 행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이래서(질병,바이러스) 죽고 저래서(살해 사건,교통 사고) 죽고 그래서(자연 재해-지진,홍수,쓰나미,폭염,혹한,가뭄...등등등) 죽는 이런 개 죽음을 당하는 파리 목숨 같은 생명에서 벗어나 썩지 않고 죽지 않는(고전15:53~54) 그 생명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하심, 보호하려 하심이 참된, 참 형상의 "구원" 이므로 이 세상에 죽고 싶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면서도 "죽어서 가는 천국?, 죽으면 하나님 나라에 간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은 검증되거나 확증된 것이 없이 망자를 잃은 가족들에게 최선의 위로로 건네는 말일 뿐이지 그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죽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지 슬퍼하고 원망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죽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끝이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불로장생, 무병장수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슬픔,아픔,우울,공포,두려움,괴로움,근심걱정염려,초조,조급... 등등등) 없이 진짜 천국 같은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하여 그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들을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기록하고 있으므로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벧전3:10~11)이라면, 그러한 유쾌하게 되는 날(행3:19)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무엇보다 찾아가야 하는 것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急先務)이니..... 

요한복음 6장38~40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늘의 하나님로서 내려온 것 즉 신(하나님)내림을 받았다면 어떤 아비(부모)가 자식(자녀)에게 댓가를 바랄까? 주고 받는 관계는 이미 머리 굴려 계산하고 따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장사꾼에게서나 있는 일이고 그 받음(내림)에 아무런 조건이 있지 않기 때문에 신(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알리고 가르침에 있어서도 반드시 돈없이(사55:1), 값없이(계21:6) 주는 것이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이요 또한 누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처음 익은 열매)인지 알 수는 없지만 믿는다면 그 믿음에 합당한, 부합하는 행동(행실)도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주신 율법의 (십)계명들을 마음(무조건)과 정성(무슨 일이 있어도)과 목숨(목에 칼이 들어와도)을 다하여 지켜 행하는 일이며 이러한 자로 살아나게(눅10:25~28) 하심을 하나님의 모든 뜻과 계획이 끝나는 세상 끝(롬9:28), 마지막 때에 이루려 하심이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17장24~25절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殿)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하시면서 30~31절에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시는 것처럼 다른 신(神)들은 몰라도 우주와 그 가운데 만유(만물과 그 이치)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어찌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교회,성당)에만 계실까? 그 지으신 만유에 숨쉬는 공기처럼 깃들어 계시기 때문에 안 계시는 곳이 없으시며 또한 무엇이 아쉽고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에게서 섬김(헌금,헌물,조공,공양)을 받으실까? 받고자 하심이 아니라 오직 참된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 것 뿐이지만 그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사람의 짧디짧은 생각(지식,지혜)으로 살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밟아버리는 피바다, 피전쟁의 악순환을 반복하여 왔으며 이러한 범죄와 악행으로 물든 인류의 흑역사에서 이제는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회개를 통하여 공정하고 공평하고 공의로운 선(善)과 의(義)로 행할 때에만이 다시 살리는 부활 곧 참된 생명을 받을 수 있고 얻을 수 있음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 돈 없이 받아서 값 없이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셨으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으심(롬6:6~11))" 을 통하여 몸소 실천하심으로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생명으로 구속)에 들어가신 확실한 증거와 본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으니 몰랐으면 모를까 이제는 알았다면 깨달았다면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에 미련이 있을 수 있겠는가? 바로 행실 있는 믿음(약2:14~18)으로 보일 때요 지체하지 말고 행할 세상 끝, 마지막 때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장1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하시면서 12~13절에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하고 쓰고 있듯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지식,지혜)은 오직 화평을 도모하기 때문에 미움이나 원망이나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는 일이 없으며 또한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하여 상대방의 입장이나 처지나 사연에 귀 기울여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며 편벽과 거짓(약3:17)이 없으므로 배려하고 양보함에 있어서 정직할 따름이니 이 자체가 서로가 서로를 살리고 살려주기 때문에 어찌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에 노출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유(만물의 이치)이며 이를 우리는 "사랑" 이라 표현하는 것이며 그런즉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시는 자라면 서로가 서로를 살피고 헤아리고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서 긍휼이 필요하면 긍휼로, 자비가 필요하면 자비로, 겸손이 필요하면 겸손으로, 온유와 오래 참음(인내)가 필요하면 따뜻한 마음으로 참아 기다려주며, 용서(용납)가 필요하면 용서로 안아줄 줄 아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요 그리스도로 옷 입었으며 "모두가 보살, 모두가 부처" 하는 것처럼 모두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 곧 하나님의 아들들(히2:10)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면수심의 짐승 옷을 벗어버리고 또 짐승보다 더 한 괴물 옷을 벗어버려야만이 다시 살리심 곧 참된 생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