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로마서 3장4절)
오늘은 로마서 3장4절에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이기려 하심"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편 51편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하신 것으로써 시편은 지금(2024년)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즉 기원전 1000년대에 기록되었고 또한 신약 성경(27권) 여러곳 특히나 로마서에서 이 시편을 많이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는 목적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일(문제,사건)들을 기록한 역사책이 아니라 그 때를 빙자(호12:10), 비유(요10:6)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마지막 때 즉 오늘날에 이루실 약속의 말씀, 에둘러서 표현하신 언약의 말씀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그렇게 이해를 한다면 하나님의 의중(뜻과 마음)을 한참 오해(마22:29)하거나 왜곡(막12:27)하여 결국엔 곡해하게 되어 전함을 받고 배우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성도,자녀,백성)을 전혀 엉뚱한 길(낭떠러지)로 인도하고 또 부추겨서 맹신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리니 그런즉 여기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 함은 무엇이고 또 "이기려 하심" 은 어떤 것인지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살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시는 뜻과 취지를 분명히 알아야 우리의 믿음의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첫 번째로 "의롭다." 하시는 것은 옳은 행실(계19:7~8) 즉 올바르게 행할 기개와 의지를 뜻하여서 중요한 것은 우리 사람은 저마다 살아 온 시대적, 환경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인하여 다분히 주관적인 관점(성향,가치관)이나 기준(이념,신념)들이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올바르게 행한다는 것, 의롭다는 것의 객관적이고 공식적인 정의 역시 자기중심적이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다시 말해서 베드로전서 3장8~12절에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시는 것처럼 주(하나님,그리스도)께서 그 눈으로 의인을 향하심은 주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이 오직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기 때문이며 또 그 낯으로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심은 어찌하든지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우리 사람으로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게 하려 하심이며 또한 우리 사람이 이런 교과서적인 선(善)과 의(義)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어느 누구랄 것 없이 그 마음이 상석(上席)에 있음을 인하여 할 수만 있다면 재력이나 학력이나 지위(위력)나 위치(자리)나 나이 많음이나 성별의 우월성을 내세워서 상대방을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게 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게 되고 못마땅하면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게 되며 언짢으면 갑질하는 죄를 범하게 되며 또한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체면과 자존심이 있음을 인하여 체면구김을 당하거나 자존심의 상처를 입으면 그 분노를 참지 못하여 상대방을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악독한 짓(일)을 서슴치 않게 되니 이 세상에 어느 누구더러 "의롭다, 의인이다."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그래서 로마서 3장10~15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속임을 베풀며 독사의 독이 있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이 말씀 역시 시편(14:1~3)을 인용하여 기록하신 것으로써 예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르지 않아서 사람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고 다 마찬가지이니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분에 넘치도록 선(善)과 의(義)를 베푸는데 무에 어려울까? 이를 "선(善)과 의(義)" 라 표현하지 않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할 일" 이라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다만 상대방이 나를 좀 어렵고 힘들고 곤란하게 만들어도, 나를 좀 미워하고 싫어하고 마음에 안들어 하면서 함부로 하여도 항상 언제나 늘 체휼하며 사랑하며 말석(겸손한 마음)에 두어서 그(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려 할 때에 진정한 선(善)과 의(義)의 효력이 발생하며 비로소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보시기에 "의롭다, 의인이다." 칭함을 받을 수 있으니 몰라서 당하는 것과 알면서도 당해주는 것의 차이는 바보스러움과 명철(명석)함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두 번째 이기려 하심의 "이김"이 있어야 하리니 이 세상에 노력없이, 수고 없이 되는 일이 있을까? 하다못대 갓난쟁이들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두 발로 일어서려고, 걸어보려고 넘어졌다, 엎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노력과 수고를 하는데 하물며 우리 사람에게 놓여있는 질병(염증,암,바이러스..등등)이나 사고(교통,붕괴,테러,전쟁..등등)나 재해(홍수,혹한,폭염,지진..등등)를 인한 사망의 재앙 앞에서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구속)으로 옮겨 주신다면, 그리 약속(언약)하셨는데 노력(요4:36~38)과 수고(요일5:3)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는 것으로써 고린도전서 15장55~57절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하시는 것처럼 현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있은 이래로 한 번이라도 이러저러그러한 여러 이유로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던 적이 있던가? 늘 져서 종처럼, 노예처럼 끌려다녔으며 또한 어떻게 하면 "불로장생, 무병장수 할 수 있을까?" 하는 숙제와 질문 앞에서 항상 멍청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류의 흑역사였으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발단이 바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면서 물고 뜯고 치고 박고 피 터지는 전쟁을 하게 만드는 "죄(罪)와 악(惡)" 이었으니 무엇보다 죄와 악을 이겨내며 또한 그 죄와 악에게 권능(권한과 능력)을 준 것이 바로 "모세의 율법(롬7:7~9)" 이었지만 또 그 권능을 힘빠지게 만들고 무색하게 만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율법(고전9:21)" 이니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출애굽기 20장,신명기5장)에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죄악(罪惡) 5가지와 또 사람이라면 무조건(목숨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해야 할 선의(善義) 5가지를 기록하고 있어서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으면 되는데 청개구리 심보가 있어서 그 때도 지금도, 거기도 여기도 여전히 지금까지도 아직까지도 행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선(善)과 의(義)에 대해서는 보이는 앞에서만 착한 척, 의로운 척, 겸손한 척, 고상한 척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뒤에서는 전쟁(미움,비방,훼방,갑질..등등)을 꿈꾸며 멀어질 수 밖에 없으니 생명의 보호하심(잠6:20~22) 아래에 있을 수 없고 항상 사망의 재앙 앞에 노출되게 되므로 무엇보다 죄(罪)와 악(惡)을 이겨내야 하며 이 모든 것을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 이며 또한 이러한 세상을 이겨내심(요6:33)으로 먼저 앞서서 생명(부활)과 안식(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쉼)과 구원(생명의 구속)의 근원이 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 사람 자신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성공,성취), 체면과 자존심을 위하여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결정)하고 말하고 행하는 중에 죄와 악조차도 마다하지 않고 거침없이 행함을 인하여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것에서 돌이켜서 선(善)과 의(義)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사망이 이김의 삼킴 바(고전15:54) 즉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킴 바(고후5:2~4)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