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로마서 3장16절)
오늘은 로마서 3장16~18절에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에서 "파멸과 고생의 길", "평강의 길"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살아오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고생과 갖은 수고와 실패와 시행착오의 아쉬움으로 말미암아 책 두 세권은 썼을법한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고 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어렵고 힘든 고비를 겪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거기에 자연재해(홍수,지진,폭염,혹한..등등)를 비롯해서 각종 질병과 사고(교통사고,붕괴사고..등등)와 재난(테러,전쟁..등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우리 자신 앞에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니 이는 우리 사람에게 멸망과 파멸과 사망(죽음)으로 달음질하게 하는 실로 저주와 재앙이 아닐 수 없으며 또한 그러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한 치 앞을 볼 수 없고 내일 일을 알 수 없음을 인하여 불안함과 초조함에서 오는 조바심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으니..... 그러나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자그마치 6000년 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사건을 통하여 이러한 "파멸과 고생의 길" 에서 벗어나는 희망적인 방법이나 대안을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해 주셨고 또 벗어나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안식과 구원 곧 "평강의 길" 도 함께 드러내고 나타내서 보여주셨으니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이라면 인생 최대의 숙제와 목표가 물론 잘 먹고 잘 살고 잘 놀고 잘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병행하여 어떻게 하면 지옥 같은 "파멸과 고생의 길" 에서 벗어나 "평강의 길" 을 걸을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 살펴보아야 하며 그 길 위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이 진짜 잘 먹고 잘 살고 잘 놀고 잘 자는 행복이요 기쁨이요 즐거움이며 현실에서 느껴보는 "천국(하나님 나라)" 이 아닐 수 없으니 여기(세상,땅)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천국을 어찌 거기(하나님 나라,하늘)에서 느끼고 바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들여다 보고자 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59장2~7절에서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니~ " 20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지으셨음의 그 중심에는 점(죄)도 흠(악)도 없는 "정직(전7:29)함" 이지만 우리 사람은 살다보면 성취하고 쟁취하게 되는 힘(재력,학력,위력,지위,나이,성별..등등)을 인하여 줄 세우고 뒤 봐주고 눈 감아주는 세상(땅)의 이치를 터득하게 되고 이로써 또 살아가면서 저절로 쌓이게 되는 체면과 자존심을 인하여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미워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게 되며 또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지면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것도 배우게 되기 때문에 정직 곧 솔직하지 못하고 순전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한 그 마음을 말이암아 멀리(좋은 날,유쾌하게 되는 날)를 내다보지 못하는 조급함과 초조함과 불안함과 근심걱정염려 속에서 헤매다니는 부작용(오류)을 겪게 되리니 이것이 바로 "죄악의 사상" 으로써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자유의지를 통하여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휘두를 수 있는 권리(권한)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죄와 벌,선과 복)이 따른다는 단순한 이치를 잊어버린 처사이며 이것이 생명과 안식과 구원 곧 평강의 길을 보여주시고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철벽이요 뛰어넘을 수 없는 높은 담이므로 무엇보다 빨리 이러저러그러한 죄과에서 떠나려고, 벗어나려고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노력하여야 하리니..... 로마서 9장6~8절에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하시면서 27절에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 하시는 것처럼 교회(성당,예배당,성전..등등)에 다니고 성경을 들고 다니고 열심으로 충성봉사하며 "믿습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그 이름만 외친다고 하여서 이스라엘(믿는 자들을 일컫는 통칭)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아무런 노력(절제,제어,다스림)도 하지 않고 그저 미우면 미워하고 뜻대로 안되면 비방하고 마음에 안들면 함부로하고 못마땅하면 갑질하고 언짢아지면 짓밟아버리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를 범하고 있다면 이는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일(갈5:19~21)을 도모하여 쫓아가는 "육신의 자녀" 에 불과하며 무늬만 이스라엘일 뿐이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자녀" 는 입(말)으로 범죄치 않으려 늘 잠잠(시39:1~2)하며 몸(행동)으로 범죄치 않으려 그저 묵묵히 있으며 또 다투지도(마12:18~21) 들레지도(너무 어수선하고 시끄럽게 싸우거나 떠드는 것) 않으려, 짓밟아버리지도 않으려 그 마음에 있는 죄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겪으신 그리스도(갈3:16)이시며 또한 그러한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 속한 자(계14:5), 옷 입은 자(갈3:27)이 죄과에서 떠나 남은 자가 되리니 비로소 마침내 파멸과 고생의 길에서 벗어나 평강의 길에 서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3장12~15절에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으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평강의 길" 을 걷게 하실 택하심의 기준과 메뉴얼은 그 마음을 항상 말석(겸손,낮은 자)에 두고서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헤아려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랑(긍휼,자비,온유,용서)" 에서 비롯되며 이를 위하여 이미 6000년 전 모세를 통하여 율법의 (십)계명을 주셨으며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물고 뜯고 치고 박고 짓밟아버리고 피터지는 테러와 전쟁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몸소 실천하여 지켜 행하는 본보기를 비로소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 드러내고 나타내셨으며 마침내 생명(부활)과 안식(쉼)과 구원(구속) 곧 평강의 길을 열어 보이셨으니 이 길이 아니고선 절대로 나아갈 수 없음이요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신 이 "평강의 길" 이 우리 마음을 항상 주장하게 하여야 파멸과 고생과 재앙과 저주의 길에서 벗어나 삶의 어려움이나 힘듦은 있을지언정 그 마음은 늘 하나님 나라 천국에 있으리니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떠들어대는 "사랑" 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