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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는 세대여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교훈 안에 2024. 11. 9. 04:28

오늘은 마가복음 9장19절에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에서 "믿음"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믿음" 이라 하심은 어떤 것(신,사람,사물,동물,식물..등등)에 관하여 그렇다고 여기고서 믿게 되는 마음을 의미하며 동일한 순우리말로는 "미쁨" 도 있으며 한자(漢字)로는 "신뢰(信賴)" 가 있으며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우리 사람이 그 믿는 믿음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이고 현실적인 목적은 오직 어떤 옭아매는 사슬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며 어떤 구렁텅이에서 건짐을 받고자 함이니... 중요한 것은 우리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떠한 계기로 믿음과 신뢰 즉 신앙심이 생기면 그것을 모시고 받들며 복종하고 순종하게 되며 또 모시고 받들고 복종하고 순종한다는 의미와 증거로써 돈(곡식,귀금속,귀중품..등등)을 비롯한 공물(곡식,과일,물건)을 바치게 되며 또한 믿음과 신뢰를 받거나 얻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그 신(神)의 이름을 빌어 뭐든 바치고 헌금하고 헌물하도록 이런저런 모양으로 부추기게 되기 때문에 뭘 잘 모르는 성도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부추기는 그 부추김대로 맹신(盲信)하게 되므로 무분별한 헌금과 헌물로 인하여 한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풍비박산이 나는 것을 매체(뉴스,유튜브..등등)를 통해 많이 보았으리라..... 이 시점에서 바로 잡고 바로 짚어야 할 것은 성경적으로 "주의 성령이 임하였다(눅4:18), 주의 신이 임하셨다(사61:1)" 라고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고 그러한 예언의 말씀대로 응하고 이루어져서 그렇게 드러나고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높은 하늘의 계신 신(神)께서 낮은 땅에 있는 사람에게 내려오는, 임하는 모든 형태는 엄연히 다 "신내림(행8:16)" 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당(무속인)만 신내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또한 그러한 특별하고 별다른(히7:11,15) 신성한 임무(사명)를 띠고 신내림을 받은 사람은 이미 신내림 그 자체로 나실인(삿13:5~7) 즉 거룩하고 경건함으로 구별이 되어졌고 또 그 감사하고 좋은 것을 신(神)께로 돈 없이, 값 없이 받았으므로 마땅히 당연히 사람들에게, 성도들에게도 돈 없이(사55:1) 값 없이(계21:6,22:17) 주어야 합당하며 다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돈은 있어야 하고 벌어야 하며 또 돈을 벌려면 일(직업,직장)을 해야 하지만 사지(四肢)가 멀쩡하다면 어디가서 밥빌어 먹지 못할까? 그저 먹고 사는 일은 그 사람 개개인의 몫이며 또한 신내림을 받은 사람이 되었건, 믿고 따르는 사람들(성도)이 되었건 그 각사람에게 일한대로 갚아주시는(계22:11~12) 것은 일을 마친 후, 일을 다 한 후, 끝난 후에 신내림을 받은 신(神)께, 믿고 있는 신(神)께 받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며 이치적이고 윤리적인 절차와 순서이지만 지금(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살펴보면 돈 없이, 값 없이 어디 "믿음" 을 가질 수나 있는가? 하는 것으로써 그런즉 먹고 사는 일 외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기대하시고 요구하시는 "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또 몰랐을 때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거나 모르쇠로 넘어갈 수 있었고 신(神)께서도 책하거나 허물치(행17:30) 않으셨지만 이제는 전하시고 다시 가르쳐서(히5:12) 알려주시는 때가 이르렀다면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다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회개(悔改)" 가 있어야 하리니 다른 여느 신(神)들은 이생 곧 현세(현재,현실)의 어떤 요행(좋은 집,좋은 직장,좋은 학교,성공,일확천금..등등)을 쫓아가기 위한 "믿음" 이고 이러한 것들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다른 여느 신(神)을 믿는 것이 더 빠를 것이며 반면 하나님은 내세 즉 유쾌(행3:19)하고 좋은 날(벧전3:10)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성도)이 쫓아가도록 주신 "믿음" 이기 때문에 거기에 걸맞는, 부합하는 신점(방법,길,교훈..등등)을 값 없이, 돈 없이 쳐줘야 제대로 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길(벧전3:21)이니 아직도 지금도 여전히 헌금, 헌물을 내거나 강요한다면 하나님께 이제는 거짓사기공갈협박조작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15장2~4절에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하고 쓰고 있듯이 무조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구원(롬10:13)을 얻으며 무조건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롬10:9)을 얻는다는 말씀만 부추겨서 믿음을 강요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으니 만약에 그렇다면, 그러하다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런 범죄, 저런 악행을 저지르며 허랑방탕하게, 내일은 없는 것처럼 막 마시고 막 살다가 죽기 직전에 믿는다고 외치며 그 이름을 부르짖으면 될 일 아닌가?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에 누(累)가 되거나 먹칠하지 않는 어떤 행실을 행하여야 하는가? 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이유와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전해주고 가르쳐 줘서 사람들(성도)이 그리 지켜 행하도록 이끌어주고 안내해줄 줄 아는 것이 신내림을 받은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라면 순전하고 신실하며 막중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이니..... 다시 말해서 사실 표현 방법이 달라서 이 말씀 다르고 저 말씀 구절이 다르다고 알고 있고 배워 왔고 그렇게 가르쳐 왔지만 6000년의 역사를 가진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서 척추 같이 관통하고 있는 말씀은 오직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생명 곧 "부활" 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요나의 표적(눅11:29)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고 말씀하신 것이며 그리스도께 계시(啓示)를 받은 사도 바울(갈1:11)도 히브리서 11장을 빌어 미쁘신 하나님께서 의로운 아벨(히11:4)의 죽음 후에 준비하신 생명 셋(창4:25)을, 죽음(둘째 사망)을 맛보지 않고 생명으로 옮기운 에녹(히11:5)을, 홍수로 다 죽음의 멸망 앞에 서 있을 때에 생명으로 구원하신 노아(히11:7)와 그 식구(벧전3:20)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고 아들 이삭을 바치려(죽이려) 했던 아브라함(히11:17~19)을, 형들의 시기질투를 인하여 죽음뿐인 도살장(애굽)에 팔려가는 양의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애굽의 총리까지 되었던 요셉(히11:22,창37장~50장)을, 애굽에 430년간 종노릇하면서 실상은 죽은 자나 다름없었던 암울하고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켜 생명(자유,행복)으로 안내하던 모세(히11:24~28)를, 그리고 그 외에 죽을것만 같은 사지(死地)로 내몰렸을 때에 생명의 보호하심을 받았던 수많은 선지자와 사람들(히11:32~38)... 등등등 성경 66권 전체를 다 훑으면서 "부활" 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죽었다 다시 살아나게 되니까 또다시 죽는 일 즉 둘째 사망(계20:6)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며 둘째 사망이 없으니 영원무궁한, 무한한 생명에게 삼킨바(고후5:2~4)가 되어 생명을 옷처럼 덧입었으므로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 과 한 몸을 이루는 혼인잔치(눅14:8~11)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니..... 중요한 것은 사람이 뭔가를 믿는다면 믿기 때문에 그 믿음에 걸맞는 행동(약2:17,26), 행실,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므로 그 무수히 많은 성경속 인물들(선지자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믿음" 을 위하여 과연 어떤 행동(행실,행위), 어떤 일을 했을까? 하는 것으로써 히브리서 10장7~8절에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제사(예배)와 예물(헌금)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 16~17절에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두루마리 책)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라고, 상대방에게 눈총을 주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나" 자신을 가리켜서 더럽고 추한 모습을 거울 같이 들여다 보라고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볼 줄 안다면, 들을 줄 안다면, 깨달을 줄 알게 되었다면 이제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의 법 즉 하지 말라고 하는 죄악(살인,간음,도적질,거짓말,탐욕)과 지켜 행하라는 선의(거룩함,섬김,공경,사랑)인 "십 계명(출20장,신5장)" 을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여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짓밟아버리는 죄되고 악한 것들을 버리고(절제) 비우고(제어) 죽이는(다스림) 노력 곧 그리스도(요16:33)께서 그러하셨듯 "십자가의 고난" 을 동일한 마음으로 생활 속에서 겪어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기대하고 바라시는 "율법(말씀)의 요구" 이며 이로써 죄와 악을 이기고 벗어나야 하리니 그동안 생명(부활)의 보호하심(잠6:20~22)을 받지 못하였던 이유가 죄와 악이기 때문이며 또한 죄와 악이 정조준하여 활시위를 당겨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질병)저러(사고)그러(재해)한 이유로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이기 때문에 이제는 누군가가 "이 세상을 왜 사는가?", 물으며 또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당당하고 자신있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할 수 있어야 하리니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14~15절에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하시면서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하시는 것처럼 불확실한 미래(내세)를 더욱 불확실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다른 경서(經書)들, 경전(經典)들은 몰라도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고 아주 명확하게 앞으로 올 유쾌하고 좋은 영광의 날(롬8:17~23)을 위하여 겪어야 할 그 어떤 것보다도 쉽고 가벼운 수고(요일5:2~4) 즉 고난이 "십자가의 고난" 이며 그 고난을 통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비울 것을 비우며 죽일 것은 죽임으로 인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부활)으로 들어가시고 또 구원의 근원(히5:7~9)이 되신 그리스도를 앞서서 본보기로 보이신 것은 "너도 하는데 내가 왜 못해?!" 하듯이 모세도, 그리스도께서도 하는데 너희들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하심이며 또한 이 쉽고 가벼운 것도 못하면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설득을 하기 위하심이니 이보다 더 큰 요행(행복,축복)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으로써 하지만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여 서로 치고 박고 물고 헐뜯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을 계속하여 한다면 "정말 안하니만 못한 가장 불쌍한 믿음" 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