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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교훈 안에 2024. 11. 16. 05:25

오늘은 로마서 5장1절에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에서 "화평(和平)"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화평(和平)" 이라 하심은 거기가 어디가 되었건 가정이건, 직장이건, 학교이건, 어떤 모임(단체,동아리,동호회..등등)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갈등이나 대립이나 언쟁이나 충돌이 없어서 그저 내적(심적)으로나 외적(분위기)으로나 아주 평화롭고 화목하고 화기애애하며 무탈한 상태를 의미하며 그런데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냥 화평하고 화목하고 무탈할 수만은 없으니 우리 사람은 살아 온 나이(세월) 만큼이나 비례하여 환경적, 시대적인 영향을 받아 생각하는 기준과 관점도 다 다르고 또 성격과 성향(가치관,철학)이나 신념(사상,이념)도 제각각이며 기본적으로 우리 사람은 살면서 성공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욕구,욗심)이 없는 사람이 없으므로 욕심 앞에 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이중(다중)인격적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부갈등(눅12:49~51)과 같은 대립과 충돌, 미움, 원망은 항상 있게 되는 어제 오늘 일인가?... 중요한 것은 나이가 많던 적던, 학력이 높던 낮던, 재력이 많던 적던, 위력이 있건 없건, 여자건 남자건 상관 없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해야만이 얻어지는 것이 "화평(和平)" 이므로 그러나 우리 사람 자신의 뜻이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재력,학력,위력,나이,성별..등등)을 내세워 치고 박고 물고 헐뜯고 짓밟아버리고 피 터지는 전쟁이라도 하려는 짐승(유다서1:10~11) 같은, 괴물 같은 본능을 인하여 고성이 오가는 미움, 분노, 비방, 무시, 갑질의 죄악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앞장서서 우리 주변을 화평하고 화목하고 화기애애하도록 빛과 소금(막9:50)의 역할을 일당백으로 해야 곳이, 해줘야 할 곳이 교회(성당,성전,예배당,사원..등등)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협화음을 조장하거나 부추기고 되레 민폐와 해(害)를 주며 또한 "뭣이 중헌디~ " 하는 것처럼 무엇이 중요해서 한 발짝씩 물러나고 양보하는 묘책을 찾아주고 도와주기보다는 도리어 한치의 양보 없는 여론에 두 손, 두 발을 걷어 붙이고 싸움(다툼,대립,갈등..등등)에 동참하는 것일까? 하는 것으로써 그렇다면 우리 사람으로 화평과 화목과 평강과 화목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실천하여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과연 믿으며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성도들)이 뭘 알겠는가? 부추기는 부추김에 춤추도록 만드는 지도자(목사,전도사,선교사,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의 자리가 무겁고 엄중하며 그래서 이제는 누가 되었건, 어디가 되었건 정말로, 진심으로, 진짜로, 진정으로 "화평(和平)" 을 원하고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또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 시간 가감없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니.....        

먼저 시편 37편1~1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시편 37편 뿐만아니라 전체 시편(150편)의 말씀은 비록 다윗이 기록하였고 마치 다윗이 당하였던 일(사건사고문제) 같이 표현하고 있지만 이 말씀 역시 다윗의 흑역사를 기록한 역사책이 아니라(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지식적으로만 알려주거나 가르쳐 주어서는 안됨) 엄연히 응하고 이루어져야 할 약속(언약,예언)의 말씀이며 또 다윗에게만 국한(제한)된 말씀이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것은 시대불문, 장소불분, 사람불문 다 똑같고 마찬가지이므로 물론 1차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응하고 이루실 말씀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응하여야 할, 이루어야 할 말씀으로써 시간이 되시면 시편 37편을 다 읽어보시면 좋으시리라..... 우리 사람은 "죄?", "악?" 하만 사람을 죽이고(살인) 때리고(폭행,성폭행,학대..등등) 등쳐(사기공갈협박조작)먹어서 구치소나 교도소에 가는 범죄와 악행만을 생각하지만 이러한 죄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하듯이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 천국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법(율법)이고 그 안에는 우리 사람이 아주 사소하게 여겨 거리낌없이 행동하고 있는 미움, 원망, 불평불만, 분노, 비방, 훼방, 무시, 갑질과 같은 죄를 사형(롬1:29~32)에 해당하는 악행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니 그러한 차원에서 "행악자, 불의를 행하는 자" 라 하시는 것으로써 살다보면 왜 이런저런 이유로 불평불만이, 미움이, 분노가 생기지 않을까? 마는 그럴때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처럼, 분노유발자처럼 자제력(절제,다스림)과 인내력을 잃어버리며 참지 못하고 상대방을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들어 화풀이하는 불의를 행한다면 그리고 또 똑같이 되어서 더 크게 더 높게 미워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무시하고 갑질하는 불의를 똑같이 행동한다면 사람이 사랑(이해,존중,배려,양보..등등)을 행하기에 솔직하고 정직(전7:29)하도록 만드시고 그러한 속에서 화평을 누리도록 우리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부모(아버지 하나님) 입장에서 상당히 절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그래서 필요한 것이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우선 자기 자신의 내면 곧 온유(따뜻함)하고 인자(너그럽고 자비로움)하고 화평(화목,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필요하며 중요하니 내 속(심적)이 시끄러운데 다른 곳(분위기)이 시끄럽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며 그러니 야고보서 4장1~2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저마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은 상전(벼슬) 같은 욕심(정욕)이 없는 사람이 없으며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가? 그럼에도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마음에 안들면 비방(흉보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못마땅해지면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며 언짢아지면 짓밟아버리고 갑질하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니 이는 어느 한 쪽만 망하고 부서지고 죽는 길이 아니라 양쪽 다, 모두다, 전부다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길임을 인류의 흑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므로 반드시 마음에서 절제(고전9:25)하고 제어(벧전2:11)하고 다스려야(창4:17) 할 정욕(욕심)이며 그런후에야 비로소 흔들림이 없는, 무너지지 않는 "화평과 화목과 평안과 무탈" 을 누릴 수 있게 되며 이를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시고 생명과 안식과 구원에 먼저 들어가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롬6:6~11)" 이며 이를 본받아 지켜 행할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고전15:23)들과 함께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완성하기 위하여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스가랴서 8장16~19절에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오직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은 기분이 좋고 마음에 들고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그렇게 온유하고 부드럽고 너그럽고 착할 수가 없지만 체면, 자존심이 상하거나 밉고 싫고 마음에 안들고 못마땅한 사람에게는 야멸차게 차갑고 송곳이고 모질고 못됐게 대하니 만약에 외계인이 있다면 그러한 우리 사람(인류)를 착하다고 말할까? 악하다가 말할까? 마치 은에 찌기(사1:21~22,25)가 낀듯이, 순도 100%가 아니면 금, 다이아몬드라 말할 수 없듯이 이랬다저랬다, 왔다갔다, 오락가락하고서야 온전한 화평과 화목과 평안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며 걱정근심염려 없는 재판(판단,결정,결론..등등)도 할 수 없으리니 "가왕 조용필, 유느님 유재석" 이라는 타이틀(자격)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평강의 왕(히7:1~3), 왕 중 왕 역시 뼈를 깍는, 죽기까지의 노력과 수고를 하고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이로써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들어가는 유쾌하고 좋은 날(벧전3:10~11)이 우리 앞에 있게 되리니 갈등, 대립, 전쟁이 아닌 오직 "화평" 만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