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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교훈 안에 2025. 5. 6. 16:07

오늘은 예레미야 38장2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에서 "항복(降伏)"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항복(降伏)" 이라 하심은 상대편의 어떤 힘(재력,학력,위력,나이,성별..등등)에 억눌려서 사람이 굽혀 굴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손(힘)에 의해 우리 사람이 "항복(降伏)" 할 것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나 이 외에도 나쁜 의미로 상대방이 자신의 어떤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성공,성취,욕심)을 위하여 사람을 현란하고 교묘한 교란의 입놀림(거짓공갈협박조작)으로 현혹(가스라이팅)하여 복종하게 만드는 것도 "항복(降伏)" 이 되기 때문에 구분(분별)하여야 하며 그런즉 하나님께서 말하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항복(降伏)" 이 무엇인지를 똑바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니.....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이 성(예루살렘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하는 예루살렘 성(오늘날에는 교회,성당,예배당,성전,사원..등등)에 머무는 것이 왜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는 재앙과 저주가 될까? 하는 것으로써 에스겔 6장11~12절에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마침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하되 먼 데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어떤 부모(아버지 하나님)가 자식(자녀,성도,백성)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길 바라며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과 저주를 받기를 바랄까? 마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지으실 때에 선(善)과 의(옳은 행실)를 행하기에 정직(전7:29)하기를, 사랑으로 행하기에 솔직하기를 바라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 메뉴얼과 기준이 되는 율법의 핵심인 "십 계명(살인,간음,도적질,거짓말,탐심욕심을 하지 말라. 대신에 거룩,공경,섬김,사랑으로 행하라.)" 도 주어 계명대로 지켜 행하기를 바셨지만 우리 사람은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과 이런저런 욕심을 인하여 자꾸만 미워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고 갑질하는 죄를 범하였고 또 계속하여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악대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파멸당한 소돔과 고모라(마11:23~24)보다 못한 유다 예루살렘(믿는 자들이 있는 곳)이 되었으며 이는 시대불문, 장소불문, 사람불문 어느 시대 어느 세대에서나 마찬가지이므로 그 악행을 인하여 오히려 거기(예루살렘 성)에 있다가는 멸망하고 파멸 당하고 사망(개죽음)의 재앙과 저주가 있을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차라리 이방 족속인 갈대아(바벨론)에게 "항복(降伏)" 하는 자는 살게 될 것임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신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2장6절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하시면서 11~12절에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항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의 관심사는 오직 "죄악(罪惡)" 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들(자녀,성도)에게 가득하였던 동방 풍속과 또 그로 인하여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던 것들은 바로 "죄악의 사상(풍속)과 또 그러한 죄악의 사상(풍속)에서 비롯된 죄악의 행실(사59:1~7)" 밖에 없으며 또한 사람이 행하는 모든 죄악의 근원지는 바로 사람의 체면과 자존심과 이런저런 욕심에서 시작되어 높아질대로 높아져서 마치 무슨 주인인 양, 상전인 양, 벼슬인 양 행하게 만드는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마음,심령,영혼)이기 때문에 이를 버리고 비우고 죽이게 할 고난의 몽둥이(사10:5~6), 막대기로 삼은 것이 바로 "애굽이나 앗수르나 바벨론(갈대아)과 같은 이방 족속" 이었으며 하지만 본질은 하나님께 항복시키고 굴복케 하여 살리고자 하심,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려 하심이므로 물론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울 때에는 감사해 하며 감사하다면 불평불만원망이 없어야 하며 또 실망절망한탄을 하지 말아야 하며 하지만 항상 기쁠 수 없고 마냥 행복할 수 없고 그저 즐거울 수 만은 없는 것이 또 삶(생활)이기 때문에 그러할 때에는 근심걱정불안, 우울두려움스트레스가 우리 자신의 고난의 몽둥이, 막대기가 되어 걸어 온 삶의 길을 되돌아보아(전7:14) 고칠 것은 고쳐서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하며 그 기간은 짧으면 잛을수록 좋으리니 왜냐하면 항복, 굴복케 하는 그 기간이 모세의 때에는 애굽에 430년간 종노릇하게 하셨고 분열 왕국 시대에는 바벨론에 70년간 사로잡혀 노예로 살게 하신 것으로써 예레미야 27장21~22절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성전과 유다의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내가 이것을 돌보는 날까지 거기에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올려 와 이 곳에 그것들을 되돌려 두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물론 430년이란, 70년이란 시간(세월)은 나고죽고, 나고죽고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그 때 그 시대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어지게 되겠지만 다시 태어나 시대 교체,세대 교체가 된 사람들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사건사고를 통하여 분명 하나님의 뜻(취지,목적)을 헤아려 이해하려 할 것이며 또 일깨우고 깨달아서 비로소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서로 섬기려 할 것이며 이렇게 하나님께 굴복항복하여 살아남은 자들(사10:22,겔6:8~9)은, 돌아오는 자들(사51:11)은 가나안(히4:8~11-생명,안식,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므로 나 자신이 살아있을 때에 봄으로, 들음(마13:16)으로, 경험함(히11:39~40)으로 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5~7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시는 것처럼 우리 사람이 하나님 곧 그 법(율법의 핵심인 십 계명)에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기 때문이며 하지만 육신의 일 즉 살아가다 보면 나이 만큼이나 쌓이게 되는 체면과 자존심과 이런저런 욕심을 인하여 자꾸만 상석(벼슬인 양, 상전인 양)에 앉아서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으로 행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육신의 생각 곧 죄와 악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믿습니다. 주여주여!!" 입으로 말로 혀로 외치고 부르짖어도 하나님과 원수가 될 뿐이며 또한 결국 이스라엘의 흑역사를 통하여 보았던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를 면하기 어렵게 되므로 반드시 영의 일 곧 영의 생각으로 마음에 새길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법(율법의 핵심인 십 계명)대로 지켜 행하여야 하며 이 모든 것을 알리고 전하고 가르치신 것이 4복음서를 비롯한 바울 서신서 즉 신약 27권이며 가르치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앞서서 몸소 실천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기 때문에 믿는다면, 사랑한다면 그 본과 자취와 흔적을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는 자 곧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라야 하나님 곧 그 법에 굴복하는 자로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으며 또한 이런 허무한 데(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의 재앙과 저주)에 항복하고 굴복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만물)도 마찬가지이고 이에서 해방(롬8:20~21)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으므로 정말 만물의 영장(靈長)으로서의 자격과 명분과 조건을 갖춘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 즉 하나님의 참 아들들(히2:10)을 찾고자 얻고자 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