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
오늘은 로마서 6장10~11절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와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라 하심은 앞서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여 본과 자취(벧전2:21)와 흔적(갈6:17)을 보이셨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에 근거하여 하신 말씀이고 이로써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 임을 밝히 이르며 말하고자 하시는 말씀이며 또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 라 하심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수 천년 전 모세의 때에 사람이라면 항상 지켜 행하여야 할 율법의 핵심인 "십 계명(죄악-살인,간음,거짓말,도적질,탐욕을 행하지 말라, 선의-거룩,섬김,공경,사랑을 행하라.)" 을 주셨고 그 계명대로 지켜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악에 대하여는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수고) 곧 "십자가의 고난과 죽이는 것" 을 하는 선행(앞선 행동)이 있어야 하지만 시대시대마다 그 세대세대마다 지켜 행하기는 커녕 죄대로 악대로 행하기에만 손과 발이 빨랐기 때문에 결국 "생명(산 자)" 과는 점점 멀어질수 밖에 없었고 도리어 사망의 쳇바퀴만 무한 반복 돌고 돌고 또 도는 인생(윤회,환생)만 되풀이하고 있었으며 그러다 수 천년이 흐른 후 그리스도께서 수면 위로 드러내고 나타내서 온전히 실천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며 그런 연후에라야 비로소 선의(착하고 옳은 행실)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행할 수 있는 선한 양심으로 바뀌게 되고 그 선한 양심(영혼,심령,마음)이 있어야 마침내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 가 되어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을 얻을 후사(히1:2,14)요 아들들(히2:10)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으로써.....
이 시점에서 꼭 똑바로 짚어야 할 것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사람의 육안(肉眼)으로 보이는 문자(구절) 그대로의 표면(초보,일부분)적인 모습과 또 우리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면(속뜻-완전,참 형상)의 영(靈) 곧 성령(聖靈)이신 하나님 나라(천국)의 모습을 통한 가장 중요한 이런 하나님 나라(천국)의 모습이 우리 사람의 마음(심령,영혼)에 어떻게 적용이 되고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이 두 가지가 겹쳐져서 오버랩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설득력있고 신뢰(이해)할만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짝(사34:16)을 찾아서 사람들(성도)에게 알려주어야 하리니 하지만 그 짝 역시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볼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으며 그러니 사람들(성도,백성)에게 가르쳐줄 수도, 또 배울 수도 없는 논리가 성립이 되므로 보았다면, 받았다면 이를 "계시(열어서 보여 줌)" 라 하는 것이며 왜 아직도 지금도 제대로 알려주거나 전해주거나 가르쳐주지 못하고서 그저 "예수(믿음)천국 불신지옥" 을 외치기만 하며 또한 "하나님 이름만, 예수님 이름만 부르짖으면 구원 받습니다." 하는 맹목적인 믿음과 또 죄사함에 관한 면죄부(예배,헌금)를 강조하면서 열심충성기도봉사만을 요구(강요)하고 단속(관리,통제)하기 바쁘며 때(부활절,성탄절,부흥성회..등등)가 되면 말로는 누가 못하겠는가? 하기 좋은 말(말씀)로 "하늘에는 영광과 축복, 땅에는 평화와 기쁨" 을 항상 외치고 있는데 왜 이 지구상에는 여전히 피(비방훼방보복복)터지는 테러와 전쟁이 끊임이 없는 것일까? 하는 것으로써 또한 전함을 받고 배워야 할 사람들(성도,백성) 입장에서는 지도자들(목사,전도사,선교사,교황,신부님,수녀님,선생..등등)에 비하면 뭘 알겠는가? 그냥 그 부추기는 부추김대로, 호리고 꾀면 또 꾀는대로 "아멘 아멘 믿습니다. 주여주여!!" 하면서 쫓아갈 뿐이기 때문에 똑바로 알려주거나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그 도착하는 종착지는 시대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몇 천년 전 모세의 때와 판박이로 믿음의 소망인 가나안(생명과 안식과 구원)은 구경조차 못하고서 매마른 광야(마음,영혼,심령)와 같은 세상에서 이런(질병-염증,암,바이러스,박테리아..등등) 저런(사고-교통,살인,붕괴,인재..등등) 그런(재해-홍수,지진,혹한,폭염) 일들에 노출이 되어 생명의 안심 보호막(잠6:20~22) 아래에 있지 못하고 결국 개죽음을 당하는, 모두다 멸망하고 파멸하고 사망하는 재앙과 저주의 표적과 과녁(고전15:55~56)만 될 뿐임을 불보듯 뻔한 거울과 경계(고전10:11)와 교훈(롬15:4)의 말씀을 주셨고 그러한 말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59장1~3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이 아니요 오직 너희 죄악이 하나님과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하시면서 6~7절에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요~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구원의 궁극적인 모습은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죽었다가 다시 살아남)과 또 그러한 그리스도를 본받아 좇아서 따라 지켜 행하는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 속한 자, 옷 입은 자들을 찾고 얻어서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영원무궁한 생명(요일5:11~13)을 영위(유지)하게 하는 것" 이며 또한 "이러한 사람들(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격과 명분(갈4:1~5)을 갖춘 하나님의 후사(後嗣)로서 마침내 만물의 영장(靈長)이 되어 생육번성충만하고 비로소 모든 만물을 정복, 다스리게(창1:26~28) 하려는 것" 이 하나님의 모든 뜻과 계획의 끝(롬9:28)이 되며 이것이 말 못하는 만물 역시 썩어짐(사망)에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나 영광의 자유(생명)에 이르고자 바라고 기대하는 일(롬8:20~22)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 지으심의 목적과 취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으로 선의(착하고 옳은 행실) 곧 사랑(헤아려 이해,존중,배려,양보,긍휼..등등)으로 행하기에 솔직정직담백(전7:29)하게 만드셨고 거기에 자유 의지를 부여하셨지만 우리 사람은 보암직(안목의 정욕)한, 먹음직(육신의 정욕)한, 지혜로움직(이생의 자랑)한 이런저런그런 여러 욕심(성욕,식탐욕,물욕,재물욕,성취욕,권력욕..등등)에 홀리고 또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칼자루를 휘두르고 싶은 교만(상전인 양,벼슬인 양)에 이끌려서 뜻대로 안되면 미워하고 원망하며 마음에 안들면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보복,복수)하며 못마땅하면 함부로하고 갑질하며 언짢으면 꺾어버리고 짓밟아버리는 죄대로 악대로 행하였으니 그 마음(영혼,심령) 속에 하나님의 사상(사랑)과 그 행위(착하고 옳은 행실)가 있었더라면 절대로 죄대로 악대로 행하지 않았으리라. 어쨌거나 자유 의지대로 선택하게 된 죄악의 길은 너무나 가혹하고도 혹독한 책임(댓가)을 지불해야 했으니 바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3:17~19)" 하는 사망의 재앙과 저주의 쳇바퀴를 무한반복 돌게(윤회,환생) 되었고 이는 바꾸어 말해서 집(육체,육신몸)이 폐가(흙,사망)가 되었다는 것은 그 집에 살면서 보호를 받고 있던 영혼(심령,마음-겔18:20) 역시 사라지고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에 죄대로 악대로 행하려는 몸(말과 행실)보다 우선 앞서 그 주체가 되는 영혼(겔18:21~24)에 스며들어 있는 "죄악의 사상과 그 사상을 인한 죄악의 행실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일" 을 그 무엇보다 열심충성으로 하며 또 죽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 하며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에 범사(요삼1:2) 역시 형통하고 잘되게 되는 이치요 원리가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14장8~10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하시는 것처럼 물론 2000년 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시고 죽으신 일" 은 힘겹게 십자가를 매고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고 또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철철 흘리다 못해 서서히 죽어가시던 모습을 한 편의 영화로 보았던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우리 자신이 못 박히는 것 같은 아픔의 서사였으며 그러나 이제는 때와 시대를 분별(눅12:56~57)하여 오늘날에는 육체(몸)가 있는 상태에서 구원(마24:22)을 받는 즉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 사람을 처소(집,성전-고전3:16)로 삼아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하시는 것이요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영원무궁한, 무한한 생명" 인 것이며 또한 우리 사람 입장에서는 생명 그 자체이신 그러한 하나님의 영(靈)을 옷처럼 덧입게(고후5:1~5) 되니 더는 사망 아래에 있지 않게 되는 논리와 이치가 되므로 믿음의 참 소망인 생명과 안식과 구원 얻기를 원하고 바란다면 어찌되었거나 뭐가 되었건 한 번은 죽어야 하는데, 죽여야 한다면 육체(몸)가 죽는 것(사망)은 더 이상 "순교, 순교자" 가 아니라 오늘날에는 사망의 재앙과 저주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또한 육체(몸)가 죽는다는 것(사망)은 그 육체(몸)를 집으로 삼고 있는 영혼(심령,마음) 역시 물거품 같이 사라지고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상(사랑)과 그 사상이 바탕이 된 행위(착하고 옳은 행실)가 없는 영혼의 집(육체)에는 결단코 하나님께서 처소로, 거처(요14:23)로 삼을 수 없으므로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죄에 대하여 악에 대하여 죽어야 하며 살아도 하나님의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통한 선의(착하고 옳은 행실)에 대하여 살아야 하리니 그래야 왔다갔다, 오락가락, 이랬다저랬다 하는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악한 양심이 아니라 항상 언제나 한결 같은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될 때에 저절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이 있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벧전3:21) 위에 서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