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6장23절에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에서 "눈"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눈" 은 잘 알고 계시듯이 빛의 강약, 즉 빛의 양을 통해 뇌의 시각중추로 전달하는 감각기관으로써 뇌로 전달된 시각으로 사람은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보는 것이며 또한 "눈" 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 것을 토대로 플러스 들은 것을 합하여 사물을 생각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며, 어떤 현상을 파악하여 나름 이해를 하고 결론을 내리게 되며.....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눈" 의 의미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으니 그 이유는 그 바로 앞 구절 22절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하고 쓰고 있듯이 눈을 통하여 몸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 이기 때문이요 사람이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을 때 까지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음식을 먹기 위해서, 학교나 직장을 가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공부를 하거나 업무를 보기 위해, 또 밥을 먹기 위해서, 컴컴한 밤에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탈 때... 등등등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또한 눈으로 보고 무엇을 행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 것(과 들은 것)으로 어떻게 행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니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사람이 없는 곳이 없으며 그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반드시 어떤 일로 부딪히며 일어나는 문제나 벌어지는 상황은 항상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바라보는 것이 눈은 말 할것도 없지만 귀로도 보는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며, 파악하여 결론 짓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그 바라보는 관점이나 기준이나 성향이 있어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은 좀 불편하고 곤란하며 언짢은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좀 온유하고 자상하게 가져서 너그럽고 부드럽게 관용하며 용납하고 배려하고 양보하여 풀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사에 좀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납고 까칠하며 깐깐한 사람은 좀 흐트러지거나 어수선한 것을 보아 넘기기가 힘들어 좋은 분위기나 즐거운 상황에서도 좀 참아서 좋게 보아 주며 넘기는 것이 아니라 못마땅함에 윽박을 지르며 언짢은 것을 견디지 못하여 불평하고 비방하며,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얼굴에서부터 표출하여 으르름짱을 놓으며 함부로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그 사람의 눈, 즉 정신 세계가 얼마나 밝고 어두우냐를 결정하는 것으로써 그 당시, 그 순간은 그러한 말과 행동이 힘 있어 보이고 능력이 커 보이고 권위가 서 보이며 아우라나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지만 길고 긴 안목, 즉 세상 돌아가는 진정한 참 이치나 도리를 분별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마치 어두컴컴하여 앞을 전혀 볼 수 없어서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소경이나 장님처럼 그 사소한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더 낫고 좋은 소망과 희망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그래서 마태복음 18장9절에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하나님 나라-마가복음 9장47절)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는 것처럼 세상에 한 쪽 눈이 범죄케 했다고 빼어 버릴 자가 어디에 있으며 빼어 버릴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니 이는 범죄케 하는 그 마음의 어떤 욕심이나 높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라는 것을 말씀함이며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들이나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의지하고 못하는 저 세상 사람들이나 그동안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은 요한일서 2장9절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하시면서 11절에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이 빛(요한일서 1장5절)이시며 그 영원무궁한 생명의 빛(요한복음 1장4~5절)을 사람들에게 비추어 주신 것(가르치시고 전하여 주심)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요 그 빛은 그리스도께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하심으로 온전히 행하여 본(本)으로 우리에게 보이시고 다시 사신 부활까지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그 자취를 좇아 행하기를 바라신 것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상대편이 밉고 싫고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다스리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고 조절하지 못하여 불평하며 미워하고, 비방하며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윽박지르며 함부로하고 있으니 어두운 가운데 행하여 갈 곳을 잃은 눈이 먼 자요 요한일서 1장10절에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과 상대편을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높은 마음에 이끌려 미운 마음에 죄와 악을 행하고 있으니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그러므로 누가복음 19장38절에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 42절에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평화, 곧 화평하고 화목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하루에도 몇 번은 왔다갔다, 이랬다저랬다, 오락가락, 이쪽저쪽 헤매며 어지러운 우리 자신의 내면(內面)을 어수선하게 만들며 다투며 싸우고 분(노)내며 사나워지는 어둡게 하는 눈을 밝혀야 하리니 그러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화와 화평과 화목함이 있는 좋은 날은 절대로 볼 수도 도래 할 수도 없다는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