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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교훈 안에 2015. 6. 6. 08:11

오늘은 마태복음 6장25절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에서 "목숨"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목숨"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에서 이미 살펴 본(2014년7월14일자,2013년6월5일자) 적이 있었지만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며 숨을 쉬게 하는 힘이나 기운을 뜻하며 또한 그 힘과 기운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양소가 풍부하며 균형 잡힌 식단의 음식을 먹어야 하며 그러나 사람(인생)은 먹고 사는 것에만 만족해 하며 행복해 하는 생명체가 아니라 그 힘과 기운으로 함께 더 많은 즐거움과 더 많은 행복감과 더 질 좋은 생활 방식 곧 더불어 부(富)와 명예와 권위와 권세를 얻고자 누리고자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러한 것을 동경하고 갈구하며 그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며 무엇을 하고 있으니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무슨 집(아파트, 정원 딸린 대주택, 최고급 빌라... 등등등)에 살고 무슨 차를 몰며 무슨 학벌,학교를 다녔고 무슨 회사에 다니느냐." 하는 무슨 배경보다는 먼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니, 즉 우리는 맛있는 음식(아침)을 먹고 충분히 얻은 에너지(목숨)를 갖고 제각기 학교로, 직장으로 가서 사람들(친구,동료,선후배,상사,스승... 등등등)을 만나며 그 안에 섞여서 부대끼는 가운데서 무슨 문제도 생기고 어떤 일도 벌어지며 생각지 못한 어려운 상황도 발생하기 마련이며 그러한 속에서 어떤 사람은 문제나 일이나 상황을 좋고 너그럽게 순화하여 관용하며 해결해 나가보려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매사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윽박지르고 불평하면서 으르름짱을 놓고 사납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해결해 나가는 이도 있기 때문에 제 아무리 무슨 좋은 집에,무슨 좋은 학벌에,무슨 좋은 차에, 무슨 좋은 명예와 권위가 있다고 한들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배경으로 그 마음을 어떻게 하지 못하여 자기 자신만 알아서 불평만 하고 꼬여서 미워하고 비방하며 함부로 한다면 그 사람이 가치있어 하는, 소중히 여기는 목숨은 어느 것일까?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욱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숨 쉬게 하는 힘과 기운 곧 "목숨"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시는 "목숨" 의 의미는 마태복음 4장1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3~4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인생)에게 진정한 생명력, 즉 목숨처럼 여겨야 할 것은 100년도 채 안되는 육신의 삶을 위해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즉 무엇을 할까? 를 위해 오늘도 달리고 뛰는 것 보다는 영원무궁한 생명(삶)력이 있는 영혼 곧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 가 하늘의 지식 곧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으로 어떻게 하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하리니, 즉 살면서 (다른)사람으로 인해 불편하고 곤란하며 어려워지고 힘들어지지 않는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제어하며 조절하여 온유하고 너그럽고 부드럽게 관용하며 용납하고 화평과 화목한 곳이 되도록 나 자신이 먼저 상대편을 배려하며 양보하느냐 아니면 아직도 그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땅의 지혜로 불평하며 미워하고, 비방하며 다투고, 사나워져서 함부로하는 죄와 악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니 바꾸어 말하자면 그 마음의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왜 버리지 못하는가? 혹시 이러한 것들을 목숨처럼 여기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있는 마태복음 6장으로 다시 가서 26~27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처럼 물론 살아가면서 그 힘과 기운으로 소위 성공이라고 하는 좋은 스팩도 쌓고 여러가지 부(富)를 창출하며 더불어 명예와 권세까지 얻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육신의 목숨의 성공이 길어야 2,30년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누리려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밟아야 하고 때로는 상대편을 무너뜨려야 하고 때로는 타인을 넘어 뜨려야 하며 또 때로는 눈 감아주고 뒤 봐주며 줄 세워주는 것에 우리 자신의 힘과 기운 곧 목숨에 가치를 둔다면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사람이 제 아무리 마음으로 자기의 길에서 무언가를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기르시며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잠언서 16장9절)이시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라며 29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솔로몬은 사람으로써 누릴 수 있는 모든 부와 명예와 권세와 권력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며 진두지휘하는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살았지만 결국 그 짧디 짧은 삶(목숨)이 피었다 지는 순간에서의 고백은 피곤하고 수고로웠던 삶에 대하여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였으니 그럴거면서 차라리 모든 것을 바람에,햇빛에,비에,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피고 지는 한 송이 꽃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으니..... 그런즉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육신의 목숨은 길어야 한 세대도 못 살고 죽는 목숨이며 또한 육신의 욕망과 욕구와 욕심으로 부와 명예와 권위와 권세를 누린다 해도 고작 2,30년 밖에 안되지만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야고보서 3장17~18절)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생각 곧 영혼의 목숨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하고 생각하여 행하면 나머지 모든 것은 저절로 좇아 오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