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7장18~20절에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에서 "열매"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열매"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여러차례 살펴 본(2015년2월15일자,2014년9월4일자,2013년12월21일자,13년7월7일자) 적이 있었지만 "열매", 즉 사람(인생)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삶을 살아 가는 동안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나름의 소중한 가치와 기준에 입각하여 많은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또한 때가 되면 그 매진하였던 것에 대한 보람과 성과 곧 결과와 결실은 있기 마련이며 특히나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그의 열매로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친백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우리는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하며 어떠한 것이 좋은 열매,아름다운 열매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으니 누가복음 6장40절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하시면서 44~45절에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천국 복음 곧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을 전하시고 가르치시며 또한 말로만 가르치신 것만 아니라 그 가르치심을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하시는 천국 복음을 몸소 지켜 행하셨던 진정한 참 스승이요 선생으로써 우리 또한 그와 같이 온전케 된다면 그 선생과 같으리니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요 우리는 그가 보이신 본(本)을 좇아 행함으로 하나님의 친백성 곧 그의 아들들이 되고자 하기 때문(히브리서 1,2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그러나 그와 같이 온전케 되려면 말과 행실에 실수가 없는 자(야고보서 3장2절)가 되어야 하리니 다시 말해서 그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께로 난 선한 것들(온유,인애,자비,양선,긍휼,화평... 등등등)을 쌓았다면 그 말과 행실에서도 자연스럽게 좋고 너그럽고 선한 것이 배어 나오게 마련이므로 마태복음 21장43절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하는 것처럼 이로써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빼앗기는 자가 있으며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있게 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1~2절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은 태초(창세기)부터 씨(누가복음 8장11절) 곧 그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훈계의 말씀을 사람의 마음과 생각속에 심어 주시고 그 말씀의 씨는 자라서 그리스되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울창한 나무를 이루었으니 그 나무는 요한복음 11장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사셨으니 부활이요 진정한 "생명" 이시니 이는 이런 류(類)가 아니고선, 즉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하심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영원무궁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본으로 보이신 것이며 그런즉 태초에 하나님의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 가 되시니 우리 또한 그 나무에 붙어서 열매(과실)를 맺는다면 그 선생의 제자로써, 하나님의 맏아들과 그의 아들들로써 생명나무 열매(계시록 22장2절)가 되리니 다시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서 10절에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하시면서 12~13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그 (생명)나무에 붙어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그의 계명과 율례를 지켜 행한다는 뜻이요 그 계명은 다름아닌 "서로 사랑하라." 이니 서로 사랑함에 있어 어찌 친구만 있을 수 있을까? 내 주변의 다른 모든 사람 곧 가족,친지,이웃,동료,지인... 등등등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버려야 할, 죽여야 할 목숨이 있다면 "사랑한다." 하면서도 기분이 상하고 언짢아지거나 못마땅해지고 마음에 안 들면 불쑥불쑥 그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함부로하는 사나운 성정이니 바꾸어 말해서 목숨처럼 여기지 않는다면 왜 못 버리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길 바라며.....
그러므로 로마서 8장19절에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하시면서 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하시면 29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어느 누가 패망과 멸망 당하며 사망(죽음)에 이르기를 좋아할 생명들(피조물)이 있을까? 마는 지금껏 그 어느 생명도 이것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니 하나님의 아들들 곧 생명나무 열매요 이제껏 한 번도 맺은 없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나타나기를 잠재속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으니 이는 아들들이 될 자들 또한 기다리는 바 패망과 멸망과 사망의 구속에서 영원무궁한 생명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며 맏아들 되시는 그리스도의 본(本)을 좇아 행하는 자 곧 그 나무에 붙어 열매를 맺는 자라야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