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10장10절에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에서 "일군(일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일꾼" 의 의미는 어떤 일을 맡아서 일정 부분을 하는 사람을 뜻하며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저 먹을 것을 받는 것" 하고 기록하고 있듯이 일을 한 댓가(삯)를 받게 된다면 그 일꾼은 "품꾼" 이요 "삯꾼" 이 되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이러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게 된 것은 신명기 25장4절에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하는 것처럼 모세의 율법에 입각하여 하신 말씀이며 이는 또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9장9~10절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일꾼을 "소" 라고 하는 짐승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으로써 디모데전서 5장18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하는 것처럼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은 이렇게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며..... 그러나 이러한 것은 표면적, 즉 초보적이고 부분적인 것이니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은 장차 우리 앞에 드러나고 나타날 좋은 날과 좋은 일에 대한 참 형상을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그림자(히브리서 10장1절)이기 때문이며 오늘 본문의 말씀의 앞 구절 8절에서도 예수님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신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 삯(댓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거저 주는 것이며 하나님도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 곧 부모된 입장에서 어느 부모가 자식(자녀)에게 돈을 바라고 요구하실까? 하는 것이며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을 할 일꾼으로써 우리의 일 할 바(요한복음 5장17~29절)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본(本)을 보이신 것으로 알려 주셨고 그 일을 한 댓가 곧 삯은 모든 것이 드러나고 나타나서 이루신 후에야 안식처 가나안 곧 "장구한 생명" 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갚아 주시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시면서 3~10절에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억지가 아닌 자의)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으로써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억지가 되어서는 안되며 또한 억지로 누가 하라고 한다고 하여 되는 일도 아니며 순수히 자신의 의지로라야 가능한 일이니 여기에서 노파심에 다시 한 번 짚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여 열심으로 예(예배)와 제(헌금)를 올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며 충성으로 봉사와 집회(부흥성회,기도회,강해집회... 등등등)에 참여하기 위해 세상의 일은 뒤로 미루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위한다고 아예 등지거나 하셨다면 이는 "하나님의 일" 이 아니니 다만 믿는 자로써 믿는 신(神) 곧 하나님에 대한 예의요 도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니며 우리 사람(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연약(히브리서 5장1~3절)에 싸여 있어 선하고 너그럽고 좋은 것으로 그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제어하며 감정을 조절해야 하지만 순간 올라오는 못됐고 나쁘고 악하며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성정을 거침없어 서슴없이 쏟아내었으니 이는 예외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 하셔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틀어 믿고 의지한다고 하는 그 백성들이 본향(안식처)이라고 하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오늘날(히브리서 4장5~11절)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그들의 그 욕심과 높은 마음에서 비롯된 궤휼과 완악함과 강퍅함을 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그로 인하여 그들은 "장구한 생명" 의 복(福)에서는 점점더 멀어지고 패망과 멸망과 사망(죽음)에 가까와 죽어 이 세상에 없고 이러한 것은 그져 우리에게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교훈" 으로만 남게 되었으니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은 전차를 밟지 않으려면 열심으로 그리스도가 보이신 본(本), 즉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해야 하며 그래야 생명의 부활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있어지는 환난(마음 고생)이나 (버리게 되니)궁핍함이나 (화도 성질도 못내니)곤난한 것을 많이 견디고 그리스도가 보이신 사랑(고린도전서 13장)으로 우리도 항상 사랑으로 기쁘게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2장2~6절에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는 것처럼 좋은 일꾼이 되었건 좋은 군사가 되었건 좋은 운동선수가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 모집된 자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알려 주시고 전하여 주신 법 곧 뜻과 계명대로 행하여야 하며 행함에 있어서 우리를 옭아 매고 얽매이게 했던 것(생활)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자리 잡고 왕 노릇을 하며 우리를 부리며 종노릇 시켰던 욕심과 높은 마음과 사나운 성정(심성)이었으니 이러한 것에 계속하여 매여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모집된 자로 좋은 자가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하며 이 모든 일을 잘 마쳤을 때 그 댓가(삯)는 우리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와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