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16장5절에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에서 "장막(帳幕)"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장막"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오래전에 살펴 본(2013년12월13일자,13년2월14일자,13년1월30일자) 적이 있었으니 더 많은 내용을 보기를 원하신다면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장막" 은 쉽게 말해서 모세가 처음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명하시는대로 하나님이 거하시며 하나님을 모실 "천막" 을 만든 것이며 그 안(지성소 곧 증거장막)의 언약궤 위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율법대로 하나님께 제사와 번제를 올렸으니 사도행전 7장44~47절에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 "장막" 은 다윗 때까지 이어졌으며 솔로몬 때에 이르러서야 옮겨 다니는 천막의 "장막" 이 아닌 집 곧 (예루살렘)성전으로 지어졌으니 오늘날의 "교회","성당", "예배당" 을 말하고 있으며 그러즉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다윗의 장막의 왕위(王位)" 는 그 앞 구절 1절에 "너희는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셀라에서부터 광야를 지나 딸 시온산으로 보낼지니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 즉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말씀의 꼴로 먹이고 자라게 하며 다스리는 그 곳의 "통치자" 를 뜻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7장11절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하시면서 14절에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관리, 감독, 통치하는 자들은 율법대로 레위 계통(지파)에서 난 자라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서 난 자이니 이는 16절에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 하는 것처럼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은 말 그대로 온유하고 인애하며 관용하고 용납하여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기 보다는 정죄(비판)하고 판단(비방)하여 서로 화목하고 화평하기 보다는 서로에게 분노하며 다투고 사납게 함부로하게 되기 때문에 무궁한 생명의 능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화(온유와 양선으로 받아들임)하여 승화(악을 변하여 선으로 바꾸는 것)시키는 "사랑(고린도전서 13장)" 에 있으므로 중요한 것은 이제는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그 시대, 그 세대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살아서 지금 믿고 의지하고 있는 우리들이 과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 나 자신의 유익이나 이익은 잠시 접어두고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이나 상황을 헤아리고 이해하여서 온유하고 너그럽게 관용하고 용납하며 늘 화목하고 화평하기 위해 실과 바늘처럼 배려하고 양보하기 먼저 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야 하니 만일 아직도 상대편의 못마땅하고 언짢고 마음에 안 드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며 미워하고 노(怒)하여 비방하며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육체의 상관된 계명의 법 곧 율법 아래에 머물러 그 아래에서 통치(관리,감독)함을 받고 있는 것이며 28절에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런즉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은 너나 할 것 없이 연약하며 약점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도 연약에 싸여 있고 약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가 건져주며 누가 누구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이끌며 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나 율법 뿐만아니라 약속(언약)의 말씀에서도 "다윗의 장막" 에 관하여 사도행전 2장29~30절에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 하는 것처럼 다윗의 자손 곧 유다 자손 중에 다윗과 같은 "유대인의 왕" 이 될 한 사람이 그 위(位)에 앉을 것이라 하였지만 누가복음 20장41~44절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뇨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다시 오늘 본문의 말씀의 "다윗의 장막의 왕위" 는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무궁한 생명의 법으로 좇아나는 "그리스도" 이신 예수님의 말씀 곧 하늘의 지혜와 지식과 명철과 교훈의 말씀인 죽기까지 하시며 지켜 행하신 십자가의 본(本) 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