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25장6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에서 "포도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만민을 위하여 베푸신 "연회(宴會)" 는 잘 알고 계시듯이 "혼인잔치(마태복음 22장2절)" 이며 그 곳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들을 신부로 삼을 신랑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이며 그리고 연회에는 당연히 베푸는 음식이 있으니 그것을 "포도주" 라 기록하고 있으며 그 혼인잔치가 배설된 집, 즉 그 곳은 "산(山)" 이며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여러 곳에서 그 이름을 "시온(Zion)" 으로 기록(계시록14장)하여 쓰고 있으며 그러나 "우리가 시온산이다.", "아니다 우리가 시온산이다" 한다고 하여 그 "산" 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랑되시는 그리스도와 혼인(계시록 19장7~9절)을 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알리시는 말씀 곧 "포도주" 가 나오는 곳이라야 그 "산" 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 베푸신 연회로 말미암아 8절에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망을 영원히 멸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옛(창세기)부터 정하신 뜻(1절)이며.....
이는 바꾸어 말하자면 사망을 영원히 멸하니 장구한 생명 곧 영원무궁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사망을 멸함에 있어서 눈물(아픔,슬픔,괴로움,고생,외로움... 등등등)을 씻기지 못한다면 사망을 멸하는 의미는 없게 되는 것이며 조금 비하(卑下)하여 표현하자면 "인생(人生)" 의 시간이 길어야 100년이요 짧으면 7,80년이지만 행여 큰 병(암)이라도 걸려 몇 년, 아니 몇 개월도 못 사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면 정말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시간과 세월 속에서 인생의 그 짧은 삶의 시간(100년)은 큰 병에 걸려 몇 개월도 못 사는 시한부와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그런즉 하나님이 포도주로 베푸신 연회로 인하여 패망과 멸망과 사망에 굴복하고 종처럼 끌려 다니던 것에서 생명을 연장하여 장구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면 무엇을 망설일 것이 있을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화평(야고보서 3장17~18절)을 비롯한 관용과 인애와 양선을 좇아 행하기 위해서는 실과 바늘처럼 따라가야 하는 것이 곱고 너그럽고 좋은 마음에서 시작된 배려와 양보이듯이 "포도주" 가 있는 곳에는 실과 바늘처럼 "떡" 이 꼭 필요하니 창세기 14장18~19절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하고 쓰고 있듯이 "멜기세덱" 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써 아브람에게 빌어 주었던 "복(福)" 은 사람(인생)이 살아가면서 얻고자 하는 요행이나 행운과 같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으로써 장구한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빈 것이며 "멜기세덱" 에 관하여는 히브리서 5,6,7장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지만 그는 그리스도로 드러나고 나타나셨으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그 살과 피를 떡과 포도주(요한복음 6장)에 빗대어 말씀하셨으니 곧 "포도주" 는 그리스도께서 전하시고 가르치신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요한복음 3장31~32절)이며 또한 그 가르치신 말씀을 몸소 직접 행동으로 옮겨서 지켜 행하셨으니 곧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하신 죽으심(갈라디아서 5장24절)이며 "죽으심" 이 없이는 절대로 다시 사는 "부활" 이 없으니 더 정확히 "포도주" 를 표현하자면 "죽으심과 부활" 에 이르는 방법을 알리시고 지켜 행하신 말씀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나누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즉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실 때까지는 정말로 우리가 육신으로 먹는 떡과 포도주로 기념(누가복음 22장15~20절)게 하셨으니 이는 다시 말해서 때가 이르면 육신으로 떼고 마시던 떡과 포도주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뜻하니 참 형상의 떡과 포도주를 알게(깨닫게) 된다면 더 이상 그림자(초보적,부분적)로 행하던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本)과 자취를 좇아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31장2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하시면서 12절에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하는 것처럼 "칼" 이라 함은 사람(인생)이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과 높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악을 행함으로 패망과 멸망과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을 뜻하며 그러한 바다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와서 광야에서 해야 할 일은 욕심을 버리고 높은 마음을 비우고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올라오는 꼬이고 부정적이고 사나운 심성을 죽이는 것이며 이로써 안식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연회로 모일 것이니 곡식(떡)과 새 포도주로 할 것이며 새 포도주 곧 새 언약은 3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새기고 기록하는 것이며 새기고 기록하였으니 몸과 마음에 배어 그대로 지켜 행할 것이니 그 때서야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친 백성이요 아들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