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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교훈 안에 2016. 8. 26. 20:09

오늘은 이사야 40장1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에서 "위로(慰勞)"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위로" 의 의미는 잘 알고 계시듯이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 외로움이나 괴로움, 고닮음이나 곤고함을 달래 주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 곧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신 그 위로는 그 바로 뒷 구절 2절에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복역(服役)의 때" 라고 하는 것은 어떤 죄에 대한 징역살이를 의미하며 모세의 때에는 애굽에 종노릇하고 노예와 같은 삶(복역)을 살기를 자그마치 430년동안 하였으니 여수룬 곧 야곱족속(이스라엘)이 배부르고 등이 따시매 살이 쪄서 부대하고 윤택하여지니 그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발로 찼기 때문이며 그러나 이 430년이란 시간은 사람의 년수를 7,80년(시편 90편10절)으로 본다면 사람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기를 6세대나 지나가게 되니 이 세월(시간)은 뼈속까지 종의 근성의 노예의 근성이 박히고도 남을 시간이며 분열왕국시대 또한 모세의 때 보다는 그 복역의 날수를 많이 감하였지만 바벨론에 70년동안 에워싸이고 사로잡혀서 바벨론 왕을 섬겼으니(예레미야 25장8~11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으로 자식(이스라엘)을양육(이사야 1장2절)하였지만 백성(성도,자녀)은 알지(깨닫지) 못하고 그 지으신 하나님을 만홀히(경홀히) 여기고 멀리 물러가서 자기 갈 길을 갔기 때문으니 이러한 죄와 악으로 말미암아 남의 나라 곧 이방의 포로가 되어 그들의 종으로 노예로 살아가던 그 "복역의 때" 가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을 모세의 때에는 가나안으로 또는 왕국시대에는 시온으로 들이시는 것이며 종으로 노예로 있을 때의 그 고생과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을 씻어주시며 위로하여 주심이 배나 되게하여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위로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비록 이방 나라 애굽이나 바벨론, 앗수르에 빗대어 기록하여 주셨지만 사람의 육체를 종으로 노예로 삼아 혹사 당하는 것보다 더 한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정욕(욕심,욕구, 욕망)으로 말미암아 죄의 사슬에 매이고 악의 고리에 걸려서 그것에 종노릇하고 노예와 같이 끌려다니는 것이며 하지만 이를 혹사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우리는 이미 못마땅하면 상대편을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며 언짢으면 훼방(상대편이 잘못되기를 바람)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윽박,버럭) 마음에 안 들면 자신에게 있는 능력(나이,성별,지위,부... 등등등)으로 상대편을 함부로(갑질,무시,멸시,업신여김)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며 이러한 종노릇과 노예생활을 한 것이 어찌 430년, 70년 밖에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빗대어 우리 내면(마음과 생각)의 모습을 비추어 보이고자 알리고자 하신 것이니 "그 죄악의 사하심" 곧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손에서 배나 받은 위로는 모세의 때에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꿈에도 그리던 안식(평안)의 땅에 들어가는 것임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온전히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루신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을 것이요 또한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의 때에 그 때 그 당대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명의 말씀을 만홀히(가볍게)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시고 전하여 주셨던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을 지켜 행하였더라면 두 번째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약속(언약)이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있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래서 누가복음 21장20절에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하시면서 24절에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하는 것처럼 이는 마가복음 13장14절(마태복음 24장15절)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으로써 마치 모세의 때에, 분열왕국시대에 있었던 일과 같이 복역의 때를 말씀하여 기록하신 것이며 하지만 마가복음 13장20절에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애굽 왕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바벨론의 치하에서 풀려나는 것이 위로 곧 구원의 날이며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있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맛보는 것이며 다시 말해서 히브리서 4장8~9절에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하는 것처럼 그것이 모세의 때에 여호수아가 되었건, 첫 번에 오셨던 예수님의 때가 되었건 안식의 날(때)를 주었다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니 이는 온전한 복역의 때 곧 안식할 날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에워싸이고 사로잡혀(2016년8월22일자) 있었으며 어떤 것에 종노릇하며 노예와 같이 끌려다디고 있는지를 알아야(깨달아야) 하니 그런즉 이사야 51절1절에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찌어다." 하시면서 3절에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의 진정한, 온전한 의(義)는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야고보서 3장17~18절)이며 이를 지켜 행하시려(히브리서 10장7절) 그리스도께서 본(本)으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죽기까지 하신 "죽으심" 을 보여주셨으며 이는 그동안 종노릇하였던 노예와 같이 끌려다니게 하였던 죄와 악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길,지혜)이며 이런 연후에라야 온전한 안식 곧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화답)하는 소리가 있게 되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