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24장16절에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에서 "산(山)"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그 때" 라 하심은 그 바로 앞 구절 15절에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하고 쓰고 있듯이 이러한 일 곧 멸망의 가증한 것(2016년11월9일자)이 거룩한 곳(2016년11월11일자)에 선 것을 깨달았을 때에 도망하고 도피해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13절)의 단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록하신 것이며 이는 마치 어떤 난리와 소문(6절), 전쟁이나 지진(7절)이 어제 오늘 있어온 일이 아닌 것처럼 15~16절의 말씀도 사실 어느 시대 어느 세대 어느 때에나 있지 않았던 적이 없는 일(사건)이지만 우리의 한 세대가 100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시대의 그 세대 사람들에겐 처음 겪는 일이라서 새 일처럼 생소하고 어색하게 여겼을 뿐이며 다만 우리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이를 일깨우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면 그야말로 그 때 곧 주께서 임하시는 "세상 끝(2016년10월17일자)"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다니엘서 12장27절)을 마태복음에 와서 다시 쓰고 있는 것은 마태복음 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 많은 부분에는 구약에서 기록하신 많은 부분(말씀)들을 갖고 와서 온전한 답 곧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신 것이 변함이 없고 확고하며 동일하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표현되어 있는 방식이나 기록하신 모습(모양)은 달라도 그 속(내면)에서 나타내고자 보이고자 하신 것은 똑같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기록되어 있는 겉모습, 즉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셔야 하며 사람(인생)의 짧고도 찰나와 같은 시간(100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6000년)에 의해서 기록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다니엘서(다니엘서 12장27절)에 기록하신 말씀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기록하신 말씀과 계시록에서 기록하신 말씀은 시계의 시, 분, 초의 톱니가 정확하게 맞아야 시간을 알릴 수 있듯이 정확하게 맞지 않고 따로 놀게(헤아려지고 살펴지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참 형상의 뜻과 완전하신 계명과 또한 그에 따른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희망은 어디에서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그져 "하나님의 능력이시며 사람의 능력 밖이니 하나님의 능력이면 다 되고 다 이루진다." 하면서 아지고 초보적이고 초단(初段)적으로 믿었던 믿음을 계속하여 고수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하며 그런즉 비록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다른 것이 없이 같은 동일한 상황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산(山)"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5년
3월28일자,2013년11월12일,13년2월19일자) 적이 있었지만
"산" 과 "섬" 과 같은 의미로써 세상에서도 자연으로부터 오는 큰 재해를 피하기 위해서 그나마 안전한 피신처가 되어줄 수 있는 곳인 "산" 으로 도망하는 것처럼 또한 위험한 파도에 휩쓸리거나 좌초 되었을 때에도 무인도와 같은 "섬" 에 떠밀려 가거나 망망대해에서 섬을 찾는 것처럼 그러한 것에 비추어서, 그러한 면(面)에 빗대어서 "산"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신 것이며 실제로 모든 성경의 시대적 배경에는 많은 산(에덴 동산,아라랏산,모리아산,시내산,시온산... 등등등)들을 언급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그 도망할 "산" 에 대하여 계시록(14장)에서는 "시온 산" 이라 기록하고 있으며 "시온" 에 관하여도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여러차례 살펴 본(2016년5월8일자,16년4월2일자,2014년8월4일자,14년2월23일자,2013년4월9일자) 적이 있으니 더 많은 내용을 보기를 원하신다면 그 글들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그러나 그러한 "산" 자체를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 어려움(우울,외로움,괴오움,슬픔)이나 사면초과에 이르면 자기만의 동굴(터널)로 숨어 버리거나 피신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써 진정으로 온전하게 도망하고 도피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갖고 있는 마음과 생각(기준,관점)을 달리하여 바꾸는 것을 의미하며 다시 말해서 적어도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서 관심 있어하고 "너희만 알았나니~ (아모스서 3장2절)" 하는 대목의 "알았다." 하는 것은 관심있게 알고자 하시는 부분은 몸이 아니라 심령(스가랴서 12장1절) 곧 마음과 생각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 이기 때문에 마음이 바뀌지 않았고서 생각이 변함 없는데 몸만 도망하고 피신한다고 하여 제대로 도망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일깨우고 깨달아서 돌이켜 고쳐 행하는 것을 "산으로 도망하라." 하고 말씀하신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에스겔 7장7절에 "이 땅 거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하시면서 10~11절에 "몽둥이가 꽃 피며 교만이 싹났도다.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 " 16절에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다 각기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 " 하고 쓰고 있듯이 정한 재앙이 임하게 된 것은 이 땅 거민 곧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하늘의 말씀이 씨로 말미암아 자라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꽃을 피워야 하지만 오히려 육체의 정욕(욕심,욕구,욕망)으로 말미암아 교만하여져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어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다투고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니 이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깨달았다면 도망하여야 하며 피해야 하리니 그렇지 않으면 그 죄악의 까닭에 슬피 울며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