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25장46절에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에서 "영생(永生)" 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영생"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6년4월16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그의미는 잘 알고 계시듯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영원히 살아있는 것을 뜻하며 사람(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 온 이후로 동서고금(東西古今)를 막론하고 죽지 않는 삶, 죽지 않은 생명은 없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죽지 않고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방법이나 명약을 찾으면서 죽지 않는 생명을 갈망하며 염원하였지만 어느누구도 찾지 못하였으며 알지 못하였으며 알 수도 없었으니 과연 "영원무궁한 생명" 과 "장구한 생명" 이라고 하는 "영생" 은 추상적인 말에 불과한 것일까? 그래서 이러한 말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은 그져 불편한 감이 있고 왠지 부담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하는 것이니 그러나 전도서 3장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드러날 것은 드러나고 나타날 것은 나타나며 이룰 것은 반드시 그리 되기 마련이지만 사람의 생명의 시간(년수)은 길어야 7,80이고 사고나 질병이나 재해와 같은 불행하고도 불미스러운 일에 부딪히면 이 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한부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 생전에 드러나고 나타나고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기쁘고 좋은 날 곧 하나님의 생명의 날(때)을 보지 못하고 죽음(사망)에 이를까? 하는 불안함과 서글픔이 앞서니 앞서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던 그 열조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보아 온 바요 아는 바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디도서 2장1~2절에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 하는 것처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본(本)을 보이신 그 자취를 좇아 지켜 행하기 위하여 육체의 모든 정욕을 배설물(빌립보서 3장8저)처럼 여기고 버리려 비우려 죽이려 하신 그리스도의 흔적(갈라디아서 6장17절)을 가진 자로써 그리스도 다음으로 우리가 본받아서 그와같이 행하여야 하리니 그래야 그리스도를 믿는 사도로써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렇게함은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영원토록 계심과 같이 우리 또한 지금은 죽음(사망)과 공존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와 같이 영원무궁한, 장구한 생명 곧 영생의 소망을 인하여 그리하여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결국 시편 103편15~18절에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언약)하신 모든 것에 종지부를 찍는 시점으로써 지금까지 언젠가는 죽을지 모른다는, 죽게된다는 조바심이나 조급증으로 인하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욕구,욕망)을 좇아 행하였고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높은 마음을 세워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는 함부로하기에 거침이 없었으며 맹수처럼, 맹견처럼 사나워져서 인면수심(人面獸心)으로 행하기에 서슴치 않았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아무런 쓸모없이 여기고 그 약속하신 계명과 법도의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3장19~21절에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못됐고 나쁘고 악한 짓(죄)을 저질렀고 자신의 유익과 이익만을 위해서 상대편의 입장이나 처지나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때로는 함부로 때로는 거침없이 행하며 서슴치 않았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한 것도 원하신 것도 아니니 다만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할 뿐 그 마음에는 하늘을 경외함이 없었으며 하지만 이러한 모습으로는 순서 중에 먼저는 만유 중에 만유인 사람을 회복할 수 없으며 더욱이 유쾌하고 좋은 날인 생명의 날(베드로전서 3장10절) 곧 영원무궁한 "영생" 은 살아 생전에 볼 수도 맛볼 수도 없게 되리니 고쳐 행하여 죄 없이 함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