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교훈 안에 2017. 2. 25. 10:59

오늘은 이사야 44장24절에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 에서 "만물(萬物)"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만물" 은 "삼라만상(森羅萬像)" 하는 것처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비롯하여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을 뜻하며 이는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셨으니 "피조물(被造物)" 이라 표현하는 것도 맞는 것이며 그리고 한 차원 더 올라가서 이러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때로는 불협화음의 갈등이 있을 때에 생겨나는 여러 현상들까지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니 다시 말해서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육안(肉眼)의 만물의 세계를 넘어서 우리가 어떤 어이없는 일(사건,문제)이나 황당무계한 상황이 앞에 놓였을 때에 "이게 무슨 조화속이야?!" 라는 표현을 쓰듯이 이러한 조화속은 육안으로 보이는 만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의 플러스, 마이너스, 알파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분히 육의 세계를 넘어서 어떤 보이지 않는 영(靈)의 세계까지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여 주신 것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이며 그런즉 지금까지 육의 세계의 만물에 집중하며 치중하였던 것을 이제는 육의 세계의 만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잘 알고 있으며 배워왔으며 봐 왔기 때문에 이러한 것만 논하기에는 초보적이며 피상적이니 이러한 것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그 이상을 넘어서 이로 말미암아 있어지는, 벌어지는, 생겨나는, 드러나고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만물의 세계에까지 눈(관심,고민)을 돌려서 집중하며 치중하는 때와 시대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골로새서 1장20~22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과 계명의 지켜 행하심(히브리서 10장7절), 즉 그 십자가의 피 곧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버리고자 비우고자 죽이고자 할 때에 동반되는 많은 고난(마음의 갈등들과 어려움)을 통하여 드러내고 나타내서 이루고자 하셨던 것은 만물의 으뜸이요 만물의 영장(우두머리,대표)인 우리 사람(인생)이 마음에서 들끓는 욕심(탐욕,욕구,욕망,정욕) 때문에 궤휼하고 완악하고 패역한 악한 행실을 용납하였고 이를 통하여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아버지,부모님)과 원수가 되었으니 바꾸어 말하자면 이 원수 되었던 것을 다시, 새롭게 화목하고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길은 그 여러 형태의 욕심을 버리고 비우고 죽일 때에라야 가능하며 이 방법(지혜)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앞서서 본(本)으로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이며 이러한 류(類)가 아니고선 방법(지혜)이 없으니 이것이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야고보서 3장17절)이며 이것을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오랜 시간과 세월 동안 보이신 것은 우리 사람(인생)만 이렇게 하나님 앞에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고자 하심이 아니라 전도서 1장8절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하는 것처럼 만족함이 없고 성에 차지 않기는 사람 뿐만아니라 다른 생명들도 마찬가지이니 자리 다툼(서열)이나 먹이(배,성공) 앞에서 맹수처럼 사납게 싸우고 훼방하고 물고 뜯으며 취약하고 병들고 나약(장애)한 것은 도태하는(시키는) 것이 어느덧 만물의 이치(진리)처럼 되어버린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로마서 8장19~22절에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욕심을 내어서 성취하고 끌어안으며 억지로 이룰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내 마음 같지 않네!" 하는 것처럼 욕심을 내어도 되지 않는 것이 더욱 많은 것이 인생사이지만 이러한 것조차도 만족하고자 성취하고자 하여 자신에게 합당한(합리적인) 이유를 찾아서 상대편을 밟아버리고 잘라버리고 무너뜨리고 엎어뜨리려 할 때가 있으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감언이설이나 중상모략으로 훼방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니 이렇게까지 하면서 누리고자 하는 시간이 길어야 인생에서 천 년, 만 년도 아니고 고작 3,40년 밖에 되고 죽으면 썩으면 어느것 하나도 웅켜 잡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허무한 것임에도 이에 굴복하여 놓지 못하고 풀지 못하는 것이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우리 사람의 모습이며 이러한 우리 사람으로 말미암아 본의아니게 이러한 허무한데 굴복하며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는 만물도 있으니 비록 말은 할 순 없어도 이에 굴복하여 고통하고 애통하며 괴로워하고 있음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므로 빌립보서 3장10~1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하시면서 21절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목적과 이유는 지금까지 허무한데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릇하던 것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하고자 함이며 이를 앞서서 본으로 보이신 것이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행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부활" 이며 다시 말해서 부활에 이르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허무한데 굴복하고 썩어짐에 종노릇하는 멸망과 패망과 사망의 재앙의 쳇바퀴에서 돌고 도는 나고죽고, 나고죽고를 반복할 뿐이니 사도 바울 또한 그 온전한 부활에 참예하고자 염원하고 소망하였지만 다른 믿음의 열조들과 더불어 죽어서 이 세상에 없으니 아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만물 중에 (깃)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며 이제는 살아서 믿고 의지하며 그리스도의 교훈의 본을 본받아 그 자취를 좇아 지켜 행하려 버리고 비우고 죽이려 노력(훈련,연습)하는 우리들에게 바통은 넘겨졌으니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을 좇아 몸과 마음을 코가 바닥에 닿도록 낮추는 때요 때가 이르면 그리스도께서 변한 몸의 형체와 같이 우리들도 변케하여 주실 것이며 이는 모든 만물이 기대하고 고대하는 바로써 내일 쉴 것을 생각하면 오늘 고통과 고난과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이 지금 우리가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수고와 고난은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참고 인내하여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