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태복음 26장26절에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 에서 "떡"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19절에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먹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을 기록하여 주신 것이며 이는 고린도전서 11장23~24절에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은 그 "죽으심" 을 기념(2014년3월17일자) 곧 마음에 되새기게 하려하여 떡을 떼어 제자,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고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 사람들에게 먹게 하신 것이니 다시 말해서 마치 "떡" 은 육신을 배불리고 윤택하게 살찌우고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처럼 마음과 생각 곧 "정신 세계" 를 배불리고 살찌워서 건전하고 경건하게 하여 하나님의 장구한 생명으로까지 이어주는 것은 앞서 본(本)을 보이시려 지켜 행하시는 실천하신 그리스도의 그 교훈의 말씀을 늘 항상 마음에 새겨 간직하기를 바라고 원하며 이를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떡" 에 빗대어 하신 말씀이니 마태복음 4장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육신이 소중하고 귀한 만큼 더욱더 마음과 생각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떡"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이미 살펴 본(2014년6월26일자,2013년9월30일자,13년4월28일자) 적이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떡" 에 대하여 말씀하시게 된 계기는 제자들과 유월절을 먹을 때에 "떡" 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모세의 율법(출애굽기 12장)에 "유월절 규례" 에 대하여 기록하신 말씀에서 "무교병" 곧 누룩 없는 떡에 관해서 기록하신 것을 응하게(누가복음 24장44절) 하려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그 어린양(베드로전서 1장19절)은 그리스도시요 그 어린양의 살(몸)의 실체가 "고기" 와 "떡" 이 되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세상 끝 곧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다른 점,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까지는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그림자(피상적,표면적)로 하였기 때문에 예배(제사)할 때에 기념(성찬식) 하려하여 떡과 포도주를 떼었지만 이제는 온전하고 참 형상으로 하는 때에는 그 이면(異面)에 있던 뜻을 일깨우고 알게(깨닫게) 되므로 고쳐서 행함에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며 다시 말해서 기념은 말그대로 어떤 절차(순서)와 형식에 따라서 의문(儀文)에 순종하여 예의를 갖추어 의식(儀式)을 할 뿐 그것으로는 우리를 양심상(히브리서 9장9절)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으 잡아 내셨으면 한다.
또한 모세가 유월절의 한 맥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예처럼 종노릇하던 것에서 출애굽하여 쉼과 평안이 있는 가나안으로 가는 노정에서 광야에 있을 때에 배불렸던 "만나" 에 대하여 요한복음 5장48~51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세상 끝 곧 마지막 때인 오늘날이야말로 "가나안" 이라고 구원의 안식과 평안함이 기다리고 있는 광야의 노정에 있는 것이며 그 "만나" 의 참된 실체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죽으심" 의 본을 우리 또한 좇아서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으로 옮겨갈 수 있는 "산 떡" 이 되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어떠한지 살피고(고린도전서 11장28절), 즉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부르짖으며 외쳤지만 실상은 말로만 혀로만 입술로만 하였을 뿐 순화하고 승화시켜서 참고 인내하지 못하고 못마땅하면 언짢으면 마음에 안 들면 저 잘 모르고 안 믿고 못 믿는 세사 사람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이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사나워져서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궤휼하고 완악하고 패역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떡을 먹을 수 없으며 안식의 가나안에 입성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시편 127편2절에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경외함에 있어서 열심을 내고 충성과 정성을 들여 부지런하였던 것이 그 교훈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본질에 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형식적으로 외식적으로 어떤 간판이나 내미는 명함을 위하여 수고하였던 것이라면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켜 행하기 위해 고난과 죽으심을 마다하지 않으므로 "사랑하시는 자" 라 칭함을 받은 것처럼 우리 또한 온전히 지켜 행함이 생명의 산 떡을 먹는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