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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마태복음 26장75절)

교훈 안에 2017. 5. 12. 19:04

오늘은 마태복름 26장75절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에서 "부인(否認)"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가장 아꼈던 수제자(首弟子)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잡히심을 보고서 세 번이나 부인하는 말씀을 기록하신 것으로써 중요한 것은 이제는 죽어서 이 세상에 없는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 거울과 경계(고린도전서 10장11절)와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 하신 말씀이니 다시 말해서 마가복음 14장29절에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찌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하면서 31절에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는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백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고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부르짖으며 외치면서도 현실적인 삶에서는 보이는 앞에서와 보이지 않는 뒤에서의 모습(태도,자세)에 차이가 있으니 그 행실(행동,행위)은 말과는 다르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온전히 알리고 보이시려 "죽으심" 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으심(버리고 비움)을 몸소 행하심과 같이 그 교훈의 말씀의 본과 자취를 지켜 행하지 못하는 부정하고 부인한 것이 어찌 세 번 뿐이랴? 하는 것이며 또한 입으로는 혀로는 말로는 누가 못하는가? 마음에는 없어도 얼마든지 다짐하고 맹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계명과 교훈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는 못 박음 곧 버리고 비우는 노력(훈련,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부인"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7년3월24일자.2016년1월25일자,2014년11월28일자,14년3월31일자) 적이 있었지만 말로는 인정하고 시인할지언정 돌아서서 보이지 않는 곳이나 편한 곳에서는 말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인" 이요 "부정" 이며 그래서 요한일서 2장22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 24절에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믿음의 사람들 중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대로 그 뜻과 계명을 지켜 행하심(히브리서 10장7절)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또한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제 아무리 입으로는 혀로는 말로는 맹세코 인정하고 시인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여 그 본과 자취와 흔적을 좇아서 지켜 행하려 하지 않고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부정하고 부인하는 자요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이 온전히 거하지 않는 것이니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은 처음부터 들었던 계명의 말씀, 교훈의 말씀 곧 "서로 사랑하라.(요한일서 3장11절)",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마태복음 5장44절)", "이른 번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누가복음 17장4절)" 하고 쓰고 있듯이 이와같이 행하여야 하리니 즉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서 남의 유익(입장,처지,사연,상황)을 먼저 구하여 배려하고 양보하며 온유하고 인애하며 자비하고 긍휼하며 관용하는 이 모든 것이 "사랑" 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들로써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버리고 비울 때에라야 사랑으로 행할 수 있으며 이와같이 행하지 못한다면 행하려 애쓰며 노력(훈련,연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자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9장23절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는 것처럼 우리 사람(인생)은 저마다 집착하고 집중하며 지향하고 치중하는 어떤 가치관이나 성향이나 신념이나 신의나 기준과 관점이 있으며 이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돌파하려 하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려 하며 누가 뭐라해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기도 하니 하지만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살 수도 없거니와 그것이 누가 되었건 가족이 되었건 이웃이 되었건 직장 동료가 되었건 어떤 모임에서의 지인이 되었건 다른 사람들과 함깨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 것의 그 무엇이 소중하고 귀하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의 그 무엇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서 존중하며 귀 기울여 들어줄 줄도, 받아들여줄 줄도 알아야 하지만 하찮게 여기거나 사사롭게 여기고 자신의 뜻(마음)과 기준과 입장(견해)에 반(反)하면 이내 마음에 안 들어 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며 언짢게 받아들여서 불평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잘못되기를 바람)하고 미워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무시하고 멸시하기를 서슴치 않으면서 굴욕감과 모욕감을 안겨주기도 하니 이러한 마음의 자세(태도)로 이미 행동으로는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부인하면서 어찌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인정한다, 시인한다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며 그런즉 이러한 육체의 정욕(욕심,욕구,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어야 온전히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이니 지난날 입으로만 혀로만 말로만 하였던 것을 이제는 행실로 보일 때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