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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교훈 안에 2017. 8. 23. 19:33

오늘은 이사야 48장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옛적에 장래사를 고하였고 내 입에서 내어 보였고 내가 홀연히 그 일을 행하여 이루었느니라." 에서 "장래사(將來事)"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장래사" 의 의미는 앞으로 다가올, 장차 닥쳐올 어떤 일(문제,사건)을 뜻하며 하나님께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고 하루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사람(인생)에게 "장래사" 를 미리 고하여 주시고 보여 주셨으며 그러한 장래사를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마다 이루어 주신 것은 요한복음 14장29절에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말씀하여 주시는 것을 우리는 "약속, "예언", "언약" 이라 하며 이렇게 약속하신대로 장래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서 그러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여 믿고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이며 이를 6000년의 역사책임과 동시에 약속하신대로 그 시대마다 이루어 주시는 예언의 "하나님의 말씀" 들을 우리가 본 바요 배운 바요 읽은 바요 또한 아는 바요 전하여 온 바이니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경외하며 사랑하고 있으며 또한 믿으며 의지하고 있으니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시는 세상 끝, 마지막 때의 우리에게 남은 하나의 "장래사", 단 하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믿게 하려 하심이며 믿고 따라 오게,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하리니.....

그런즉 이사야 45장11~12절에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하는 것처럼 그 있을 장래사의 되어질 일이나 징조를 하나님에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국엔 그 장래사가 모든 만물, 그 중에서도 우리 사람을 창조(됨됨이)하셨고 그러한 창조의 이념(사상,논리)을 온 세상에 펴시며 명하셨기 때문에 그 이르신 말씀 안에서 기록하시고 있으므로 그 안에서 물어 물어 선한 양심으로 찾아가야 하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바로 뒷 구절 4~5절에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악하며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 내가 이 일을 옛적부터 네게 고하였고 성사하기 전에 그것을 네게 보였느니라." 하시면서 8절에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의 아집과 고집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은 완악하며 무쇠와 같이 놋과 같이 단단하여지고 궤휼하며 패역한 자가 되어서 들어도 듣지 못하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눈 뜬 장님(소경)이요 귀머거리가 되어 버렸으니 그 아집과 고집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어하는 육체의 정욕으로 인함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전도서 7장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시면서 20절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하시며 22절에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하시며 26절에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하는 것처럼 결국엔 우리 사람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사람이든 어떤 일(문제,사건)이든 좌지우지 수족 부리듯이 하고 싶은 욕심(정욕)이 아집과 고집을 키웠고 아집과 고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에게 저주(비방,훼방,미워함,함부로 함,사납게 다툼)하는 궤휼하고 완악하고 패역한 죄를 범치 않는 의인을 볼 수 없게 하였으며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일러 주시고 보여주신 "장래사" 를 예측할 수 없게 하였으니 29절에 "내가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마음에서 좋고 곱고 부드럽고 자상한 것들을 내는 것이 아니라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를 내었으니 이제는 이를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선한 양심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9장11~12절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하는 것처럼 좋은 "장래사" 는 처음(창세기)부터 기록하여 주신 바대로 우리 사람의 욕심에서 시작된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선한 양심으로 생명나무 과실 먹게 하시려 첫 사람 "아담" 을 만들어 세우셨지만 결국 사람의 욕심이 그 눈을 감게 하고 귀를 막아서 참 것을, 온전한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더욱더 완악하여지고 궤휼해지며 패역하여져서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을 외치며 부르짖으면서도 실상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우상) 곧 나 자신의 뜻과 욕심대로 믿어 좇아가는 두 마음을 품은 행음하는 자요 음행하는 자이며 거짓말장이요 가식과 외식하는 자가 되었으며 이러한 우리 사람의 죄와 악을 대신하여 죽어줄 수 있는, 희생할 수 있는 희생양이 옛날에는 동물(짐승)의 피나 제물이었으며 오늘날에는 그 제물이 헌납하는 "돈" 으로 바뀌었을 뿐...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 어찌 마음으로 지어 몸(행동,행실,행위)과 말로 나오게 되는 죄와 악을 씻어 없앨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한 사람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본과 자취 곧 자기 피 즉 사람 자신의 육체의 정욕을 못 박아 버리리고 비우고 죽이려는 노력의 피가 아니고선 그 어떤 것도 죄를 속할 수 없다는 것을 고하여 주시고 보여 주시며 이를 몸소 실천하여 이루어 주시므로 하나님의 생명(부활)으로 나아가심으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니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 사람에게 나아가게 하려 하신 장래 좋은 일 곧 "장래사" 하나님의 생명에 참예하려면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그 본과 자취를 좇아 행하여야 한다는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