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49장8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에서 "은혜의 때" 와 "구원의 날"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여러 곳에서 약속(언약)하신 이 "은혜의 때" 와 "구원의 날" 이 드러나고 나타나기까지, 있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靈)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 "때" 와 "날" 을 알리며 전하여 줄 사람 즉 그 앞 구절 6절에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지금까지 우리 모두가 그러하였듯 마음에 이는 여러 욕심으로 말미암아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의 종이 되어 있을 때에 참된 하나님의 종이시며 죄의 종 되었던 우리 곧 입으로는 하나님 나라(천국)에 속한 백성(성도,자녀)과 같이 말하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였지만 실상은 하나님 나라의 법과 계명을 지켜 행하지 못하였던 이방과 같이 되어 버린 우리들에게 "빛" 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임하신(내려오신) 후에라야 성립이 될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종(從)"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7년11월6일자)에서 살펴 보았었지만 "종" 이 다 "종" 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써의 조건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모든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흘리신 피, 땀, 눈물 곧 그 고난을 통하여 버리고 비우고 죽여서 마음을 다스릴 줄 알고 생각을 제어할 줄 알며 감정을 조절할 줄 알게 되어 하나님의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교훈의 말씀인 그 계명과 명령대로 오로시 지켜 행하신 그 본과 자취를 좇아 지켜 행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종" 이요 "그리스도의 종" 이라 할 수 있으니 쉽게 말해서 자기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은혜의 해(누가복음 4장18~19절)의 비추임을 받지 못하고서야 어찌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의 때" 을 알릴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이 앞서서 모든 것 곧 모든 육체의 정욕과 그로 말미암은 악한 꾀와 죄에서 헤어나오고 벗어나지 못하여 궁극적인 하나님의 구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구원을 받지 못하고서야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날" 을 전하며 또한 건져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달변(達辯)하여 입으로는, 혀로는 "하나님의 은혜" 와 "구원" 에 대하여 많은 것을 논하며 외치면서도 정작 그 외치는 자의 행실(행동,행위)이 보이는 앞에서 다르고 보이지 않는 뒤에서 다르다고 한다면 그 전하고 알리는 소리(나팔)에 어찌 신뢰를 가질 수 있으며 말만 앞세워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나중엔 앞세웠던 말조차도 흐지부지되어 그 앞세웠던 "은혜" 와 "구원" 과는 상관 없는 자신의 권세(권력,권위,명예,재물)가 하나님의 일 곧 "은혜와 구원" 을 앞질러 버린다면 하나님의 일꾼으로 가장한, 하나님의 종으로 위장한 삯꾼(장사꾼)이요 악한 죄의 종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은혜의 때" 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것을 이루는 때(전도서 3장1절)를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는 아무쪼록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한 마음을 알아(깨달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에베소서 2장4~5절)이며 마치 모세의 때에 지긋지긋하게 길고도 긴 430년간의 애굽의 종살이를 마치고서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쉼과 편안함이 있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때를 뜻하니 그러나 모세의 때에 드러나고 나타났던 "은혜의 때" 곧 "가나안의 안식" 은 참 형상(실물)이 아니라 그림자(초보적,부분적)이었으니 그들은 자신의 배(부,권력,권위,명예)를 불리며 윤택하게 되는 것(신명기 32장14~15절)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 되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구원에는 등을 돌리며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날에 스스로 파멸(패명,멸망)과 사망의 길을 택하여 여호수아와 몇 명 외에는 모두가 모세 조차도 은혜의 땅을 밟지 못하였으니 이는 지금 살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으며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즉 이 모든 것들을 거울과 경계와 교훈으로 삼아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있을 "안식의 날" 곧 그 "은혜의 때" 를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여 오늘 본문의 말씀을 기록하여 주신 것이니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히브리서 4장8~9절) 즉 모세의 때에 가나안에 들어갔던 "여호수아" 를 통하여 온전한 안식의 은혜를 주셨다면 또는 또 다른 말의 "예수(여호수아)" 곧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때에 "은혜의 때" 와 "구원의 날" 을 드러내고 나타내서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시하시고 목적하신 것이 이미 이루었고 지나간 일이라면 굳이, 다시 다른 "날", 다른 "때" 를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씀(약속)하실 필요가 없어으리라.
그러므로 히브리서 2장1~3절에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베푸선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보다도 지금 살아가는 삶이 현실이라 우리 자신의 배(부와 명예와 권위뫄 명성,권력)를 먼저 불리며 살찌우고자 하였던 마음이 앞서서 선한 양심을 팔아버리고 자기의 갈 길을 걸어갔던 것이 어찌 가룟 유다 뿐이며 여수룬 뿐이랴. 우리 또한 죄를 깨닫게 하는 계명 곧 율법에 얽매이고 져서 자신의 모습은 살펴보지 못하고 상대편(남,다른 사람)의 허물만 못마땅해 보이고 잘못만 언짢아 보이고 미련하고 어리석고 부족한 것에 마음이 안 들어서 미워하고 불평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잘못되기를 바람)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면서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 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니 열조(구약)들은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으로 칭찬도 보응(심판)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그 본과 자취가 우리를 은혜의 때와 구원의 날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지 못한다면 그져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