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50장7절에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에서 주 여호와의 "도우심"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바로 앞 구절 5~6절에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앞서서 귀를 열으사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을 학자와 같이 알아듣게(4절) 하여 그 발을 죄악에서 돌아오게(욥기서 36장9~10절) 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시니 예수님도 어렸을(갈라디아서 4장1~5절) 동안에는 죄가 있는 사람의 모양(빌립보서 2장7~8절)으로 오셨기 때문에 죄 아래에서 육체의 정욕의 노예가 되어 종노릇을 하였으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눈과 귀, 즉 마음의 문을 열어주심으로 말미암아 교만한 눈과 아기죽거리는 입으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고 함부로 하는 육체의 정욕(욕심) 곧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불법을 행하였으니 이를 깨달은 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에는 사도 바울이 자신을 율법의 의(빌립보서 3장5~12절)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귀를 열어주심 곧 계시(갈라디아서 1장12절)를 보이시므로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고 하였으니 그 이전의 교만하고 뻣뻣하였던 자신을 생각하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금할 길이 없지만 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마음을 굳게 다 잡아 그 교훈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며 이렇게 돌이켜서 고쳐 행하려 애쓰며 노력(훈련,연습)하는 중에 심적 갈등과 고생과 고뇌와 눈물과 애통이 없을 수 없으며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요 그 고난을 통하여 육체의 정욕(욕심,욕구,욕망)을 못 박을 수 있었으며 기꺼이 죽으심에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었으며 이 길은 선한 양심으로 바뀌고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더 나아가서 다시 사는 "부활" 에 참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지혜)이기도 하니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심은, 이렇게 되심은 그리스도를 위하심도 아니요 죄 있는 모양도 아니라 진짜 죄와 악의 굴레에 갇혀서 벗어나지도 헤어나오지도 못하는 우리들에게 귀를 열으사 하나님의 생명(부활)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지식)을 보이시며 찾아가게 하시려고 앞서서 본을 보이신 것이며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행함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 이 없이는 결코 나갈 수도 행할 수도 없는 길이며 또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는 명언도 있지만 그 도우심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119편85~86절에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하고 쓰고 있듯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의 글 곧 성경 곧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응하며 이루어질(누가복음 24장44절) 말씀이며 더 나아가서 두 번째 다시 오시며(임하시며) 나타나실 때에 온전히 이루어질 말씀으로써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게 그 당대의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이었던 유대인들은 무고히 즉 아무 이유없이 때리며 수욕과 침 밷음과 미워하고 비방하며 사나워져서 멸시하였던 것은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하여 함정(웅덩이)을 판 것이며 핍박을 한 것이니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과 똑같이 되어서 싸우고 다투고 비방하고 멸시하며 때리고 똑같이 핍박으로 갚아주지 못하였던 것은 그리스도 또한 어렸을 때(시편 25편7절)에는 육체의 사욕을 좇으며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불법을 좇아서 행하였기 때문이며 유대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요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어 그러한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을 모르기 때문에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누가복음 23장34절)." 하신 것처럼 온유와 인애(자비,긍휼)와 관용과 용서 곧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신, "일곱 번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신 최고한 법(계명)을 지켜 행하시기 위해서이며 이것이 진정한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며 죽으심으로 부활에 참예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이를 좇아 행하려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24~26절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으로써 소망이 있다면 자꾸만 죄와 악에 이끌리며 구속을 당해서 허우적대고 있는 곳에서 건짐(구원)을 받아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하나님의 생명에 이르는 것이니 그 길(지혜) 곧 그 본과 자취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과 부활로써 보여주셨으며 우리는 그 길을 좇아 가는 것만 남았으니 비록 눈 앞에 보이는 어떤 결과나 증거가 나타나지 않아서 긴가민가 할 수도 있지만 보이는 현재의 것을 "소망" 이라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먼 미래의 그 무언가를 바라므로 소망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며 진정 바란다면 그 본과 자취를 좇아서 지켜 행하며 인내로써 기다릴찌니 그러나 육신이 연약하여 때로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어 미워하고 불평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함부로하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고서 죄되고 악한 것에 마음이 상하여 애통해 하며 슬퍼하고 고치려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성령(聖靈)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아시므로 도와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