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51장10절에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나이까." 에서 "바다", "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물"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6년12월18일자,2013년3월6일자,13년1월23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단지 피상적이고 극히 표면적인 우리가 매일같이 마시는 그러한 "물" 을 말하고자 하여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하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보(여론)나 그 세대의 흐름에서 있어지는 문화적 지식을 의미하니 다시 말해서 지금, 오늘날 우리는 손 안에 이 지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 즉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원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건 검색을 하여 우리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게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4차 산업혁명" 이라고 해서 인공지능을 통하여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이러한 문화속에서 얻게 되는 모든 지식과 정보를 통틀어서 "물" 이라 하며 중요한 것은 그 물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갖게 된 지혜로 과연 우리의 생명 연장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기여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셔야 하니 그렇다고 생명 연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여 쓸데없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취하였던 물로 최소한 사람으로 피폐하여지게 되거나 안일하게 안주하게, 머물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물" 은 세상의 그 어떤 "물" 과 다르며 차이가 있어서 사람으로 영혼의 생명이 되게 하며 순서는 먼저 영혼이 살아야 그 영혼을 담고 있는 육신(몸) 또한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에스겔서 47장1~5절에 보면 "그" 라 기록하고 있는 한 사람이 에스겔을 이끌어서 동(東)을 향한 전(殿) 문에 이르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여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흐르더니 이번에는 북문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끄시기로 보니 거기에서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는데 그 물을 건너게 하시기로 물이 발목에 차고,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차더니 이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고 그 물이 창일하여 바다처럼 헤엄할 물이 될 정도였으니.....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에스겔서 1장1절에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에스겔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에게 기록케 하시려고 보이실 때에 실물(참 형상)로 보이신 것이 아니라 실물과 닮은 다른 모양 즉 "이상(異狀)" 으로 하셨으며 "이상(異狀)" 으로 하셨다는 것은 다른 말로 "피상적" 이고 극히 "표면적" 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 이면(異面)에 온전한 것 곧 실물(참 형상)을 숨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부분적" 혹은 "초보적", 또는 "그림자" 이니 "율법 아래에 있다." 라고 표현해야 맞는 것이며 이렇듯 숨겨져 있던 온전한 뜻(실물,참 형상)을 언제까지나 숨기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때가 되면 밝히 이르며 드러내리니 선지자들은 "이상(異狀)" 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비유(比喩)" 로 하신 이유이며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비록 처음에는 "이상(異狀)" 으로 보이셨지만 그 보이신 것으로 하늘의 것(지혜,명철,교훈)들을 알리고자 전하고자 하셨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가 100년도 안되는 하루살이와 같은 생명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으로 인도하며 이끌고자 하심이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피상적이고 표면적으로는 그 온전하신 뜻을 알 수 없고 오직 영적(고린도전서 2장14절)으로라야 밝히 볼 수 있으며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에스겔이 보았던 전(殿)의 문지방에서 시작된 "물" 이 창일하여 건너지 못할 강, 바다와 같이 헤엄칠 "물" 이 되었던 것처럼 땅의 온 지면을 "물" 로 채우고 덮었던 적이 노아의 때(창세기 6~7장)의 "홍수" 도 있으며 그러나 에스겔이 보았던 창일한 "물" 과 노아의 때에 온 지면을 덮었던 "물" 에는 엄청나고도 상반된 차이가 있으니 에스겔이 보았던 "물" 은 그 발원한 곳이 하나님 "전(殿)" 즉 하나님께서 계시는 집은 하나님 나라 천국이며 하나님께서 내리신 물(신명기 32장1~2절)은 에스겔서 47장8~9절에 "~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 하는 것처럼 사람(인생)을 비롯한 모든 생명을 가진 생명체에게 소성(蘇醒) 즉 그 "영혼" 이라고 하는 정신 세계를 일깨워서 되살아나게 하며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으니 썩어짐의 종노릇 하던 것에서 벗어나고자 함은 비록 말은 못하지만 모든 피조물들의 고대하고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며 하지만 노아의 때의 홍수 곧 "물" 은 베드로후서 2장5절에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 하고 쓰고 있듯이 그 물로 소성케하고 살리고자, 살려 하나님의 생명을 주고자 하심이 아니라 그 내리신 물로 멸하고자 하심이니 중요한 것은 어느 부모가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스가랴서 12장1절)을 지으신 부모(아버지)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이 참된 것을 알고 소성함 즉 구원(디모데전서 2장4절)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우리 사람(인생)이 끽해야 100년도 안되는 생명의 삶 동안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육체의 정욕(욕심)의 본능을 마음에서 제하여 버리지 못하고서 하나님과 반대되는 길과 곳으로 감으로 인하여 스스로 파멸(멸망,패망)과 사망을 자초한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21장10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18절에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하시면서 22절에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하는 것처럼 그 성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영적으로라야 깨달으며 분변할 수 있으니..... 에스겔이 보았던 그 "전(殿)" 을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하늘(고린도후서 5장1~2절)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 으로 보았으며 또한 그 성전(聖殿)의 차 올라서 건너지 못할 강, 바다가 되어 창일하였던 "물" 은 맑고 투명하기가 유리 같아서 "유리 바다(계시록 4장6절)" 라고, 수정같이 맑은 물 "생명수 샘물(계시록 22장1~2절)" 이라 기록하고 있으니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이 하늘의 것(요한복음 3장31~33절)을 보았으므로 그 본 그대로 지켜 행하셨으니 그 지켜 행하심은 잘 알고 계시듯이 십자가의 도(고린도전서 1장18절)이며 그 가르침대로 본 받아서 우리가 지켜 행하면 우리 또한 생명의 강(요한복음 7장38절)이 흘러 넘쳐서 소성함을 입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