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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사도행전 4장2절)

교훈 안에 2018. 5. 23. 18:54

오늘은 사도행전 4장2절에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 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復活)"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부활"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 중에서 살펴 본(2017년8월7일자,2016년8월8일자,2014년9월22일자,14년2월24일자) 적이 있었지만 "부활" 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가장 앞서서 본보기로 "부활은 이렇게 하는거다." 하는 것처럼 앞에서 보여 주셨으니 순서가 먼저는 그리스도 그 살아있는 신령한 영(靈) 곧 성령(누가복음 4장18절)이 임하시고 주의 신(에스겔 3장24절)이 임하시므로 그 육체 또한 그 살아있는 영(靈)으로 말미암아 썩지 않고 죽지 않는 것(고린도전서 15장53~54절)을 입으신 것이며 입으신즉 다시 살아나신 것 곧 부활하신 것으로써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위하심이 아니라 "예수" 는 본보기로써, 이정표(표적)로써, 기호(깃발)로써 이를 보고 믿고 따라오는 자들 곧 우리들로 그와 같이 똑같이 행하게하려 하여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드러내시고 나타내신 것이니.....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인생)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언젠가는 죽게 되고 썪어 없어지고 사라지게 되며 이것이 세상의 이치요 진리로 알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썩어짐 곧 이러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본을 좇아서 따라 행하려하는 자들로 부활에 이르게 하고자 하심이니 부활에 이르는 자들이 나타나는 그 때가 온전하고 장성한 참된 의미의 "추수 때" 이며 그런즉 부활에 이른 자들을 "첫 열매(고린도전서 15장23절,야고보서 1장18절)" 라고 하며 이들은 고린도전서 9장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이러한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인(야고보서 3장14~16절)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 곧 이러한 세상(적인 것)을 이기기 위하여 유대인들처럼, 우리도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으니 사람과 사람, 사람 대 사람으로 더불어 다투고 싸우고 함부로하였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이러한 육체의 죄의 정욕(욕심)과 맞서 싸워서 이기셨으며 이기심으로 모든 죽는 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 하면서 하고 싶은 욕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절제 즉 사람이 말로 늘어(불평,불만,비방)놓기 시작하면 끝이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실(행동,행위)로도 훼방하고 사나움으로 다투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하기를 서슴치 않기 때문에 자기 속에 속사람은 죄의 정욕과 지지고 볶고 싸울지언정 입술은 닫아 잠잠하며 혀에 재갈을 물려서 묵묵히 있는 것이 좋은 것이 좋으니 말이 많음으로 실수(허물,죄,악)를 행하기 되기 때문이며 싸워서 이기고, 싸워서 이기고 하는 이러한 노력(훈련,연습)을 통하여 썩지 아니함, 죽지 아니함 곧 부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은 요한복음 6장38~39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하시면서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58절에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맏아들로써 많은 아들(히브리서 2장10절) 즉 첫 열매를 찾으러 오신 것이며 그들을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고자, 부활에 이르게 하고자 하심이며 하지만 이것이 어느 시대에든 이루졌던 것이 아니라 언약 곧 약속과 예언의 말씀으로써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림 즉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살과 피" 가 본보기로 보셨던 모든 일에 절제하심 곧 "십자가의 도(道)" 이며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道)" 라는 거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5장28~29절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너무도 짧디 짧은 삶(일주일 내외)을 살고 죽는 곤충 중에 "하루살이" 를 생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하고 수(數)에 칠 가치 조차 느끼기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과 그 시간(세월)에 비하면 우리 사람(인생)의 생명도 하루살이처럼 생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하고 수(數)에 칠 가치 조차 어려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얼마(7,80년,100년) 살지 못하고 죽게 되는, 썩게 되는 시한부 생명이므로 때 되면 흙으로 돌아갈 무덤과 다름이 없으며 하지만 그러한 무덤과 같은 우리들에게 주의 음성 곧 살과 피의 말씀, 십자가의 도(道),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道)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 앞서서 본보기로 보이신 자취를 좇아 행할 때에라야 선(善)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착한 일, 의로운 일, 선한 일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땅히 할 일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으며 온전하고 참된 선으로 행할 때에라야 비로소 생명의 부활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고자 하심이 하나님의 뜻이요 마지막 때까지 붙여 온 경륜이며 그 뜻을 행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임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