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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

교훈 안에 2018. 6. 16. 09:11

오늘은 사도행전 4장9절에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 에서 "착한 일"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착하다." 의미가 사람의 마음이 곱고 좋아서 친절한 것을 뜻하므로 그러한 곱고 어질고 친절한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착한 일" 이라 하며 우리가 착한 마음으로 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들 즉 자원봉사나 기부(돈,옷,재능,음식... 등등등)와 같은 것이 이에 속하며 그러나 이렇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행하여야 하는 것은 사람(인생)이라면 당연히, 마땅히 할 일이지 자랑(갈라디아서 6장14절)할 것이 없으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요구 즉 바라고 원하시는 "착한 일" 은 그 이상을 뛰어넘는 것으로써 이 또한 앞서서 우리에게 본(本)을 보이신 이가 있으니.....

빌립보서 1장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시면서 10~11절에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첫 번에 오셨을 때에 오신 곳은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저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소위 전도(傳道) 즉 알리고 전하시며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열심으로 충성으로 믿고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에 오셨으니 혈통(혈육)만, 족보(계보)만, 겉(표면)만 아브라함으로 자손이요 그 자긍심이 자만(교만,오만,경만)으로 변하여 자신보다 못하고 부족하고 없는 사람들을 아래로 보고 함부로 하였으며 그러한 마음은 고스란히 그러한 사람들을 못마땅하고 언짢게 여겨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때리고 훼방하고 침 밷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행실(행동,행위)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렇게 이방(異邦)과 같이 되어버린 "이방 갈릴리(마태복음 4장15절)" 그리고 이방(異邦) 곧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예루살렘(마태복음 23장37절)" 이 그것이며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알리고 전하시며 가르치신 하나님의 복음 즉 하나님의 그 뜻과 계명을 말로 가르치는 것(로마서 2장21~24절)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오로시 몸(행실)으로 본(本)을 보이셨으니 다시말해서 육신(몸)이 있는 우리 사람(인생)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의 안위(안정,안녕,행복) 즉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위하다 보면 본의아니게, 또는 본의 즉 악의로 상대편을 꺾어버리고 잘라버리고 넘어(엎어)뜨리게 되니 그 행실이 바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시기(질투)의 마음으로 훼방(잘못되기를 바람)하고 때로는 자신의 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사납게 다투고 싸우기도 하며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 하는 것이며 이러한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심(정욕)은 사람이라면 다 있는 마음이며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으며 이것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으며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모양(빌립보서 2장6~8절)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람들과 달라서 가르치시려 알리고 전하려 하신 것은 똑같이 되어서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보복,복수)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을 기꺼이 행실의 본(本)으로 보이셨으며 버리고 비우고 죽이는 이 고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 이 없이는 절대로 행할 수 없으니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마음으로 행하였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다시 사는 부활로 드러내고 나타내 보이셨으며 항상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지켜 행하게(히브리서 10장7절) 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 사람 즉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입으로는, 혀로는, 말로는 외치고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무엇을 믿으며 어떠한 마음으로 의지하여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우리들을 위하여 아들 독생자(요한복음 3장16절)를 보내시고 본(本)을 보여 이를 따라오는 자들로 그리스도와 같은 자격과 권리 즉 하나님께 있는 생명(부활)과 구원과 안식으로 갚고자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신 "착한 일" 이며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열매 곧 첫 열매(야고보서 1장18절)를 맺게 하여 모든 것을 온전히 다 이루시는(요한복음 19장30절)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로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 함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전서 1장15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하시면서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으로는 혀로는 말로는 잘 하지만 정작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고 언짢아지면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하고 싶은 육체의 정욕이 발동하여 상대편을 미워하고 공격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 하는 못됐고 나쁜 악(惡)를, 죄(罪)를 서슴치 않고 거침 없이 행하여 왔던 죄인 중에 괴수들이며 또 한편으로는 온전치 못한 소경된, 병자된 병인(病人)들이며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일절 오래 참으시는 것은 우리 또한 우리와 똑같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래 참음으로 변화되기를, 바뀌기를 기다려 주라는 것이며 이렇게 기다려주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 즉 착한 양심으로, 선한 양심으로 바뀌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며 비로소 이렇게 착한 양심, 선한 양심이 변화되고 바뀐 후에야 우리의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 "착한 일" 이 될 수 있으며 하지만 지금까지의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모습(자세)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임하실) 때에 우리가 설 곳은 없게 되며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한 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