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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이사야 53장9절)

교훈 안에 2018. 7. 20. 18:44

오늘은 이사야 53장9절에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에서 "강포(强暴)" 와 "궤사(

詭辭

)"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강포" 의 의미는 몹시 사납고 우악스러움을 뜻하며 "궤사" 의 의미는 그러한 사납고 우악스러운 마음로 간사하게 남을 속이는 말을 뜻하니.....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인생)치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러한 욕심을 쟁취하고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앞세우다 보면 한 가락 포학하고 우악스러우며 사나운 성질(성정)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강포를 행하여 온 허물이 있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며 그런즉 그러한 마음으로 사람이 사람을 속임에 있어서 "나는 남을 속이는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다만 장소(곳)에 따라, 기분(못마땅,언짢음)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자신의 유익(기준,관점)이나 이익(가치관,신념)에 따라서 보이는 앞에서나 잘 보여야 하는 곳에서는 모든 겸손과 관용과 온유와 너그러움과 사랑으로 행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뒤에서나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이면적이고 이중적인 자아가 나와서 마음에 안 들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이러한 강포와 궤사로 행하는 것이 우리 사람(인생)의 모습(자세)이니 아니라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장10~18절)~ " 하는 것처럼 이미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록하고 있듯이 죄 없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기록하고 있지만 그리스도로 오시는(임하시는) 예수님은 강포를 행하지 않으셨고 그 입에 궤사도 없었으니 강포를 행하지 않으며 궤사가 없으려면 "묵언수행(默言修行)" 즉 못됐고 나쁘고 악한 강포와 완악한 마음에서 오는 궤휼과 궤사와 같은 입으로 범죄케 하는 말에 대하여 입에 자갈을 먹여서 잠잠하는 것(시편 39편1~2절)이며 이를 표현하고 있는 말씀으로 그 앞 구절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이 세상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뜻이 아닌, 못마땅하고 언짢은 길이나 방향으로 누군가가 끌고 간다면 이를 참고 잠잠히 있으면서 욕 한 마디 퍼붓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삶은 현실이라서 육체의 안위를 생각하여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다른 사람의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사연,상황)을 구하여 헤아리고 이해하며 배려하고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것이니 자신을 곤란하게, 어렵게, 힘들게 만들며 또는 미움과 비방과 훼방과 강포와 함부로 함(무시,멸시,업신여김)과 같은 곤욕으로 대하는 사람 앞에서도 똑같이 되어서 강포를 행하지 않고 궤사가 없기 위해서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육체의 정욕(갈라디아서 5장24절)을 버려야 하며 이것이 우리 모든 사람이 짊어져야 할, 이겨내야 할 십자가이며 이겨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 이라 하는 것이며 하지만 반드시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기 때문에 "못 박는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며 이것이 없이는 죄에 대하여 죽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생명으로 가는 "부활" 또한 있을 수 없으니 이러한 믿을 수 없는 일을 앞서서 그리스도께서 본보기로 보여주신 것이며 이렇게 될 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이며 그리스도께서 앞서서 이러한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여 온 이러한 강포와 궤사 곧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로 죄로 말미암아 파멸(멸망,패망)과 사망의 길 외에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아서 절망과 두려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이 있게 하려 함이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호세아서 4장1~2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하는 것처럼 이것이 어찌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으며 의지한다고 부르짖으며 외치는 사람들에게 국한된 말씀일까? 우리 모든 사람(인생)이 그러하여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다면, 아는 지식이 있었더라면 진솔(진실)함이나 진정성이 없이, 사랑(인애)과 긍휼(자비)함이 없이 오직 마음에 안 들면 흉보고 욕하며 못마땅하면 미운 마음에 훼방(잘못되기를 바람,보복,복수)하며 언짢으면 사나워져서 다투며 함부로 하기를 서슴치 않는 강포와 궤사를 행하기에 손과 발이 빨랐으니 그러한 결국으로 어떤 희망이나 소망을 기대할 수 없으며 다만 두려움(멸망)과 무서움(패망)과 절망(사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 잘 보여야 하며 보이는 앞에서, 사랑하고 좋아하고 존경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 사랑과 인애와 관용과 온유와 너그러움과 겸손으로 행하는 것을 "사랑(인애,자비,긍휼,관용)" 이라, 진실됨이라, 의인이라, 선인이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당연히 할 일" 이라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서 상대편의 입장과 처지와 상황을 헤아려 이해하려 노력(훈련,연습)하면서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아 그 있는 곳에 화평(평화,화목,화기애애,평강)이 있기를 힘쓰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자요 지식이 있는 자이니 "히나님은 사랑(God is Love)" 이기 때문에 사랑을 온전히 행하며 실천할 줄 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며 그러한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미가서 6장8~9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완전한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 하시면서 12절에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거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궤사하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으로써 하나님 앞에 가장 의롭고 선한 것은 자신의 유익이나 이익과 같은 욕심에 치우쳐서 올바른 판단(결정)을 그릇되게 하지 않는 공의를 행하는 것이며 차별을 두지 않고서 모든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인애와 자비와 온유와 겸손과 관용과 같은 사람으로 행하는 것이니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강포를 행하고 궤사를 말하던 몸(입)과 마음을 잠잠히 하는 악을 미워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참되고도 온전한 지식이요 지혜이며 아직도 마음을 제재하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려워서 쉽게 강포를 행하며 궤사로 한다면 그 사람은 못됐고 나쁘고 악한 꾀와 죄에 대하여 부한 부자이며 그러한 자는 두 마음을 품은 간음하는 자요 강포와 궤사한 말의 칼로 사람의 마음을 베는 살인하는 자요 못마땅하고 언짢음에 참지 못하고 비방(흉보고 욕함)으로 남을 저주하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