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은 이사야 54장4절에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 에서 "수치" 와 "부끄러움" 즉 "치욕(恥辱)"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수치" 를 당하지 않고 "부끄러움" 을 보지 아니하는 즉 다시는 "치욕" 을 기억함을 없게 되는 것은 그러할 때가 있으니 그 앞 구절 2절에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하고 쓰고 있듯이 장막터를 넓히고 줄을 길게 하며 그 말뚝을 견고히 할 때이며 바로 앞서 기재했던 글에서 "장막(2018년8월8일자)" 에 관하여 살펴 보았었지만 모세의 율법(히브리서 10장1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장막(성막,초막)" 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장막 곧 "성전" 이나 "교회", "성당", "예배당" 과 같은 건물의 집을 말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이러한 것은 초보적이고 부분적인 그림자 즉 지극히 피상적이 표면적인 것으로써 이러한 것에 빗대어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히브리서 9장11절), 사람의 손으로 창조하지 않은 더 크고 온전한 참 장막으로써 하나님께서 지으신, 지어주신 곧 우리 사람으로 "장막" 을 삼아서 그 곳에 거처를 함께(요한복음 14장23절) 하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지만 하나님이 거하시는 온전한 참 장막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과 법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지어져야 하며 이를 위하여 앞서서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질 수 있는 방법(지혜)을 몸소 순종의 본(로마서 6장16절)보기로 보여 주신 것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니.....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속에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육체의 정욕(욕심)을 버리고 비우고 죽이지 않는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사람의 장막이 지어질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요 못 박히심이요 죽으심이며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같은 영원무궁한 생명(부활)을 얻으셨으니 지금 우리의 시한부 생명(100년)을 갖고서는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의 생명과 발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며 온전한 참 장막으로 지어신 후에야 비로소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부끄러움을 보지 않는 "치욕" 을 기억함이 없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서론이 많이 길어졌는데 "치욕" 이라 함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우며 욕(명예롭지 못함)이 되는 것은 뜻하며 우리 사람(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치욕" 스러운 것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못났는지를 보지 못하며 못난 것을 알지(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예레미야 3장3절에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시면서 8절에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하는 것처럼 한 집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 우리 사람은 진정, 진심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참으로 믿으며 의지하였는지, 아니면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할 뿐 실상 행실(행위,행동)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마음에 뜻대로 마음대로 안되면 못마땅해지고 언짢아져서 남 탓을 하고 다른 사람을 핑계대면서 미워하고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훼방(잘못되기를 바람,보복,복수)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양심의 꾀와 죄를 행하고 있었는지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돌아보아야 하리니 하지만 우리 모든 사람(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육체의 욕심에 휩쓸리고 얽매여서 하루에도 몇 번은 죄와 과오와 실수와 허물을 오가며 육체를 쫓아서 본능으로 행할 때 많으니 간음하고 행음하는 여인(창녀)에 빗대어 기록하여 주신 말씀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우며 치욕스러울 따름이며 전에는 이를 알지 못하게 하던 시대에 있었음으로 치욕스러운 줄 모르고 있었으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알려주시고 보여주시는 때(사도행전 17장30절)이므로 우리의 행위를 돌이켜서 고쳐 행하여야 하며 하나님을 사랑함에는 보이지 않는 신(神)곧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기에 앞서 보이는 사람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요한일서 4장20절)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함(잠언서 8장13절)에 있어서는 우리 자신의 못됐고 나쁘고 악한 양심에서 비롯된 꾀와 죄를 미워하여 이를 행하지 않으려 애쓰며 노력(훈련,연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31장19절에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처음(창세기)부터 그 지으신 우리 사람(인생)들과 거처를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남편이 되셨어도 우리 사람이 언약을 파하고 각기 제 길, 제 곳으로 가서 간음하고 행음하는 창녀가 되었으며 각기 제 길, 제 곳으로 간 그 끝에는 파멸(멸망,패망)과 사망의 길이었으며 이는 우리 사람 스스로가 자초하였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을 사랑하사 새롭게 언약(약속,예언)하시고 그 언약을 지켜 행하면 다시 한 번 살 길,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으며 그 언약(예레마애 31장31~33절)은 하나님의 법과 그 계명을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는 것이며 기록하였다는 것은 그것대로 지켜 행할 줄 안다는 것이며 지켜 행하는 본(히브리서 10장7절)을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보여주셨으니 우리의 못난 모습을 보았다면 깨달았다면 돌이키고 뉘우쳐서 지난날 행하였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육체의 욕심에서 비롯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윽박지르고 함부로하던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대로 행하지 말아서 하나님의 온전한 참 장막으로 지어져서 수치와 부끄러움과 치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