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행전 6장10절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 에서 "지혜(智慧)"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지혜"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8년12월1일자,2017년3월9일자,2015년9월20일자,15년1월1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신(神)을 통하여 아니면 굳이 신(神)을 통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할 수만 있다면, 될 수만 있다면 조금은 덜 고생하면서 쉽고 편하게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며 그러한 이유로 "인생은 한 방" 하듯이 경험해 보고 싶은, 누리며 만끽해보고 싶어하는 요행(僥倖) 즉 부(재력)와 명예와 권세(권력,권위) 그리고 이에 끝까지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긴 수명(장수)까지 주어질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인 것처럼 이렇게 될 수 있는 방법 곧 지혜나 요령을 바라고 기대하여 구하지만.....
그러나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상 3장11~12절에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장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富)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 하는 것처럼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에게서 우리가 본으로 삼아야 할 말씀으로써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유익과 이익 즉 이러한 욕심(욕구,욕망)을 구하며 그 원하는대로 이루어주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으며 그러할 때에 얼마나 선한 양심(베드로전서 3장21절)에 기반한, 입각하여 행하는가 하는 모든 송사(판단,결론)의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는 "지혜서(智慧書)" 이기 때문에 믿는 자라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진심으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와 의(마태복음 6장33절)" 즉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선한 양심의 편에 서서 선(善)으로 행함(누가복음 6장45~46절)을 마음과 생각에 품으며 지녀야 할 지혜의 근본이며 "선한 양심" 은 나의 유익과 이익과 욕심의 기준을 내세워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며 송사(판단,결론,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남,다른사람,상대방)의 입장과 기준과 처지와 상황을 먼저 고려하며 헤아려 살펴서 배려하고 양보하려 함에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하고 있는 여러 수많은 역사의 지식적인 부분 또한 하나님의 지혜 곧 하늘 위로부터(요한복음 3장31~32절 오는 지혜을 얻게하기 위하여, 찾게하기 위하여 기록하여 주신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 24장44절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하는 것처럼 성경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글과 시편의 글에 기록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이루시려고(요한복음 19장30절)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며 이루신다는 것은 그 말씀 그대로 지켜 행한다는 것을 뜻하며 히브리서 10장8~9절에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인생)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은 제사(예배)와 예물(헌금)이 아니라 이러한 것은 육체의 예법(히브리서 9장10절) 즉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외모만 거룩해보이고 고상해보이고 겸손해보이고 간절해 보일 뿐 속사람, 속마음을 깨끗케 하며 경견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오직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일러주신 지혜대로 지켜 행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며 이 지혜의 구체적인 행함은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의 도(道)" 즉 죄와 악의 형체를 이루고 있는 육신의 모양을 하나님의 선한 지혜대로 변화되고 바꾸시기 위하여 겪으신 많은 심적 갈등(고난)과 그 고난을 통하여 유일하게 죄와 악을 못 박을 수 있으며 못 박았음을 증명하는 길은 오직 죄와 악에 대하여 죽으심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 곧 하늘의 지혜의 길로만이 갈 수 있는 구원에 도달 할 수 있음을 본(베드로전서 2장21절)으로 보이신 것이며 우리 또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바뀌어야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신 그리스도를 좇아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하나님께로 받은 지혜보다 예수님의 증거(지혜)가 더 큰 것은 부분적이며 초보적이며 그림자가 아니라 온전하고 장성하여 솔로몬이, 솔로몬의 시대와 세대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으며 온전히 행할 수 없었던 십자가의 도(道)의 실물(실체)을 보이시고 보이시기만한 것이 말과 행실로 행하기까지 하여 그 자취를 따르는 자들의 거울과 본(本)이 되셨기 때문이요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 즉 그리스도의 지혜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로마서 12장16~18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하고 쓰고 있듯이 진정한 지혜는 마음을 높은 데 두지 않고 낮은 데 처하며 악으로 갚지 않고 선한 일을 도모하며 두루 평화하고 화목할 수 있도록 방법과 지혜를 모으며 찾을 줄 아는 것이며 고린도전서 1장17~18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세례를 주는 의식(예식과 형식의 절차)도 아니요 말로 혀로써 고귀하고 겸손하며 거룩하게 하는 것(좋은 말로 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기에...)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즉 버리고 비우고 죽이기 위해 부단히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제어하고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는 행함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