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59장9절에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함으로~ " 에서 "빛" 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고린도후서 4장6절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어두운데서 빛이 있으라, 비취리라 하신 말씀(창세기 1장3절)에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빛" 은 어떻게 가야할 지 어디가 길인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우리 사람(인생)의 마음과 생각 곧 영혼(靈魂)을 밝히 비추어 선한 양심(베드로전서 3장21절)으로 하나님을 찾아가게 밝혀주는 "빛" 을 의미하며.....
하지만 그 "빛" 이 우리 사람의 마음에, 그 영혼에 온전히 비추어졌었더라면 우리 사람이 파멸(패망,멸망)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요 사망(죽음)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첫 번에 유대(이스라엘) 땅에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에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 곧 영원무궁한 차원의 생명의 빛(요한복음 1장4~5절)을 비추었으나 희미한 불빛(고린도전서 13장12절) 즉 모세의 전한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그림자인 율법에 매여 있어서, 거기에 젖어 물들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몇 천 년만에 찾아온 참 빛(요한일서 2장7~10절)을 몰라보고 소경이 되어 빛보다는 어두움 곧 악(惡)을 더 좋아하고 더욱 사랑(요한복음3장19~21절)하여서 도리어 참 빛으로 오신, 생명의 빛을 갖고 오신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침 밷고 때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았으며 결국엔 십자가 형의 죽음에 넘겼으니 그런즉 그리스도께서도 두 번째 다시 오셔야(임하셔야) 할 이유와 목적은 더욱 분명해졌으며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서 두번 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인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그를 믿으며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부르짖으며 외치는 우리들에게 교훈(로마서 15장4절)으로, 거울과 경계(고린도전서 10장11절)로 기록하여 주신 것으로써 우리 역시 아직도, 여전히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은 육체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못마땅할 때마다 미워하고 비방하며 마음에 안 들때 마다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며 언짢아질 때마다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쁘고 악한 죄 가운데 있다면 율법 아래에 있는 자요 그것에 매여있어서 갈 길을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고서 계속하여 어두운 가운데서 파멸과 사망을 좇아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이사야 9장2절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하는 것처럼 이 예언의, 약속의 말씀이 온전히 이루시는 때는 참 빛, 생명의 빛을 비추었지만 유대(이스라엘)인들이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서 그리스도를 돌로 치며(마태복음 23장37절) 죽였으므로 기회는 다른 이방(로마서 11장17~25절) 곧 그 뜻을 지켜 행하는 자에게로 명의가 이전(예레미야 6장12절)이 되었으니 그리스도께서 그 하나님의 참 빛을, 생명의 빛을 전하고 알리기 위하여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이셨으니 이 세상에 죄짓지 않는 사람(로마서 8장3절) 없고 율법 아래(갈라디아서 4장4~5저)에서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아래에 있어서 한 가닥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지만 비록 많은 고뇌와 번뇌와 애통과 심적 갈등 곧 고난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를 이기고 벗어나서 못 박을 수 있어야, 죽을 수 있어야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올 수 있음을 앞서서 본을 보이신 것은 참 빛이신 그리스도이시니 베드로전서 2장10~11절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들에게 본을 보이신 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전에는 우리들 또한 안다고 하나 잘 알지 못하고 제대로 알지 못하여 허망한 것들을 좇아서 미우면 미워하고 싫으며 싫어하고 마음에 안 들면 사나워져서 싸우고 못마땅하면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언짢으면 함부로(무시,멸시,멸시)하기를 서슴치 않는 실상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저 세상사람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지만 이제는 참 빛을 보게 하시고 생명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려고,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게 하시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기이한 빛에서 비추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선전(홍보)하게 하려 함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5장4~5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하시면서 15절에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참 빛, 생명의 빛 가운데 있는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을 대하여, 서로를 대하여 악(惡)으로 갚지 말고 오직 선(善)으로 바꾸어서 행할 줄 알아야 하며 악(惡)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릴 줄 알아야 하리니 우리들로 이렇게 행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미워하고 때리고 침 밷고 비방하고 함부로하는 어두움에 거하는, 어두움으로 행하는 유대인들을 대하여 똑같이 되어서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비방하고 함부로하였던 것이 아니라 입술로 범죄치 않으며 재갈을 먹여 잠잠하였으며 몸(행동)으로 범죄치 않으려 묵묵히 하나님만을 바라고 걸으셨으니 요한일서 2장9절에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 11절에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기이한 빛을, 아름다운 덕을 선전(전도)하고 알리는 길(방법)은 말에 있지 않고 혀에 있지 않으며 오직 행함에 있으며 행함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