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59장20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에서 "시온(Zion)"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시온" 에 관하여는 앞서 기재했던 글(2018년4월18일자)에서 살펴 본 적이 있었지만 다윗이 가나안 7족 즉 여부스 토인(역대상 11장4~5절)에게서 빼았았던 "다윗 성" 이 곧 시온산 성으로써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시온" 이 이스라엘안에, 예루살렘안에 있기 때문에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시온" 은 곧 "이스라엘" 이라, "예루살렘" 이라도 하며 하지만 육적인 그 곳이 구속자가 임한 "시온" 이라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은신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우리 사람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것은 그져 죄과에서 떠나고 경건치 않는 것에서 돌이켜서 서로 사랑하기를, 화평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또한 참된 사랑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줄 알 때에 진가를 발휘하며 화평은 서로를 이해하고 헤아려서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 때에 가능하니 어느 부모가, 아버지(하나님)가 형제들(팔레스타인,이스라엘)이 서로 총과 칼을 겨누고서 싸우고 다투며 보복성 테러에 전쟁을 하기를 원하겠는가?
오늘 본문의 말씀은 로마서 11장27절에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 하는 것처럼 로마서에서도 기록하고 있으니 오직 "구속자", "구원자" 는 구약 성경에서 약속하신대로 첫 번에 유대땅(이스라엘)에 오셨던 "그리스도" 이시며 또한 신약성경에서 약속하신대로 두 번째 다시 오시는(임하시는)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며 중요한 것은 구약 성경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율법(히브리서10장1절)은 우리 사람으로 죄와 악을 없이하기 위하여, 제하여 정결케 하기 위하여 제사(예배)와 제물, 예물(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법(禮法)을 기록하고 있는 글로써 다분히 형식을 갖추고 모양을 갖추는 의식(儀式)을 중요시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세례식", "성찬식" 하듯이 그 믿는 믿음이 예의와 형식과 절차를 중요시하는 예식(禮式), 의식(儀式)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이러한 행위(로마서 8장32절)에 의지한 믿음이기 때문에 히브리서 10장2절에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하시면서 11절에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 하고 쓰고 있듯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면서 죄사함 받기를 구하였으면 다시는 죄를 깨달을 일도 없어야하고 제사드리는 일도 그쳐야 하지만 아직도 죄에 대한, 악을 행한 것에 대한 용서와 죄사함 받기만을 구하며 기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형식과 예식과 의식을 고수(固守)하며 취하고 있으니 이러한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로 죄를 없게 하지 못하며 또한 이 표면적이고 지극히 피상적인 형태의 믿음으로는 우리 사람의 양심상(히브리서 9장9절) 온전케 할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을 찾아갈 수도 없으니 더욱이 하나님을 향한 "선민사상(選民思想)" 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으로 상전(上典)이 되게 하며 상좌(上座)에 앉아있게 하여 마음에 안 들고 못마땅한 부분을 보거나 언짢은 것이 생기면 참을 수가 없어서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고 무례히 행하기를 서슴치 않으며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엎어뜨리는 못됐고 나쁜 죄와 악을 범하게 되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아직도, 여전히 우리가 "죄인" 임을 상기시키며 각인시킬뿐 우리를 구속하고 구원할 수 있는 길(방법,지혜)을 제시해줄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시편 53편6절에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4복음서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알리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어느덧 그 사람(유대인들,율법사,서기관,제사장,바리새인,사두개인... 등등등)을 높여 상전이 되게하는, 상좌에 앉게 해주는 도구가 되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수평으로 보지 못하고 수직으로 보며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 못마땅한 것에, 마음에 안드는 것에, 언짢은 것에 이해하고 헤아려 살펴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겨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비판,비난,정죄)하며 눈총을 주고 손가락질하기 바빴으니 이것이 곧 미워하고 비방하고 훼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쁜 죄와 악이며 이를 "사람의 계명(마가복음 7장6~9절)" 이라 기록하고 있으니 이는 오늘날 우리가 거울과 교훈으로 삼아야 할 말씀으로 그 때 그 시대 그 세대 사람들은 이제 죽어서 이 세상에 흔적조차 없으며 지금 살아서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하신 약속을 기다리며 바라고 있는 우리들을 향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며 이처럼 하나님의 최고한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보다 더 사람의 계명을 좋아하고 즐겨하였으며 이러한 형식과 외식(체면)을 중요시 하는 겉사람을 꾸미고 장식할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 숨은 속사람(베드로전서 3장3~4절) 즉 심령으로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기를 전하며 알리시기 위하여 모든 율법, 수없이 많은 율법의 규율과 규례가 있다 할지라도 이를 온전하게 완성(로마서 13장10절)하는 것은 오직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대로 지켜 행하기를 전하신 것이며 말로만 전하시며 입으로만 알리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여 지켜 행하신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의 실체는 바로 "십자가의 도(道)" 이었으며 그 안에 죄사함, 구속(구원)을 위한 모든 것이 들어 있으며 율법 아래에서는 제아무리 크고 높은 자라 할지라도 그 포로된 것이, 종노릇하고 있는 것이, 노예가 된 것이 "죄" 와 "악" 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돌이켜 고쳐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최고한 계명, 완성된 율법으로 행하지 못한다면 "시온" 에 거한다고 할지라도 구원받을 수 없으며 그 "시온" 은 거짓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스가랴 8장3절에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하시면서 16~17절에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실 시대시대마다 "시온" 은 있었으니 아담 때의 "시온" 은 에덴동산이요 노아의 때에 "시온" 은 아라랏산이요 아브라함의 때에 "시온" 은 "모리아산" 이요 모세의 때에 "시온" 은 "시내산" 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시온" 에 관하여 계시록(14장)에서 기록하고 있지만 율법의 형식과 절차에 따른 예식과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죄에 대한, 악에 관한 용서는 구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죄와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것의 포로가 되어서 종노릇하고 노예가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며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첫 째되는 계명, 최고한 법을 지켜 행하신 본보기를 보여 주신대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으로 행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고난과 비우는 못 박히심과 죽이는 죽으심의 자취를 좇아서 우리도 행할 수 있어야 죄과에서 떠나며 경건치 않은 것에 돌이켜 "시온" 으로 돌아오며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되리니 그러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