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61장2절에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 에서 "은혜(恩惠)의 해" 와 "신원(伸寃)의 날"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의 해" 와 "신원의 날" 이 반드시 올 것을 미리 약속하신 말씀이며 하지만 전도서 2장15~16절에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하고 쓰고 있듯이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우매한 자나 하나님을 믿어 절제와 제어를 하며 참고 인내하는 지혜자나 그 가는 곳이 일반이며 더욱이 공정하게 재판해야 하는 곳에 악이 있고 정의가 있어야 하는 곳에 악(전도서 3장16~19절)도 함께 있으며 또한 짐승이나 생물이 죽음을 당하는 것처럼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 사람도 동일한 것을 당하니 아직은 해 아래에서 하나님의 온전하고 참된 "은혜의 해" 와 "신원의 날" 은 오지 않은 것이 분명(고린도전서 15장25~28절)하며 오늘 본문의 말씀 앞 구절 1절에 "~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 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러저러한 요지경과 속절없음과 조화속에서 마음이 상한 자가 고침을 받으며,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의 포로된 것에서 자유를 얻으며 놓임을 받게 되는 그 날, 그 때가 진정한 "은혜의 해" 요 "신원의 날"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은혜" 는 잘 알고 계시듯이 받을 수 없는 어떤 혜택이나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심을 받아 베품으로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신원" 은 어떤 억울한 일이나 누명 쓴 것에 대하여 풀어주고 갚아주는 것으로써 되갚아 준다는 의미의 "보수(報讐)" 와 "보응(報應)" 모두가 일맥상통하는 의미이며..... 에베소서 2장3~8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사람의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고 싶어하는 욕심은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로 없는 사람이 없으며 세상은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뜻대로 마음먹은대로 되는 것(문제,상황)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불안한, 조급한, 초라한 마음의 상태(자세)를 탓하며 돌아보아 살펴서 시정하여 고치려 하기보다는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으로 행하기가 더 쉬움으로 하여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말로는 외치고 부르짖지만 실상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본질장 하나님의 자녀이기보다는 진노의 자녀인 것이 지금의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요 현실이니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그러한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종노릇하고 잡혀있던 것에서 맞서 싸우는 고난의 길을 걸으셨으며 마침내 이기신(요한복음 16장33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또한 그와같이 지켜 행할 때에 비로소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시편 140편12절에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당하는 자를 신원하시며 궁핍한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리이다."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지금까지 매여 있었던, 포로되어 종노릇하였던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대하여 마음을 다스리고 제어하하고 절제하려는 많은 노력과 그 노력속에서 있어지는 많은 심적 갈등 곧 고난이 없을 수 없음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본 바요 읽은 바요 아는 바이며 이는 그리스도 자신을, 당신을 위하심이 아니라 우리로 그 길을 좇아오게, 지켜 행하게 하려 함이니 그 고난당한 것에 신원하여 주시고 생명과 안식과 구원으로 보수, 보응하여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니 하지만 신명기 32장15절에 "여수룬(야곱)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하시며 29절에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 41절에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 사람(인생)은 배부르고 등 따시고 타성에 젖으면 능구렁이가 되어서 처음에 가졌던 그 순전하고 순수하였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래로 보며 그 위치(자리)와 지위와 힘을 이용하고 자신의 입에, 기분에 맞맞게 칼자루를 휘두르게 되나니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버리며 경홀히 여기는 행위이며 나중에 모든 것을 끝내시는 때(로마서 9장28절)에 있을 자신의 종말이 어떠함을 알지(깨닫지) 못하는 자이니 데살로니가전서 4장5~6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저 세상 사람들(이방인)과 마찬가지가 되어서 이러한 욕심대로 행하지 말고 좇지 말며 오직 자신을 돌아보아 살펴서 마음 만큼은 말석(末席)에 두어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해로운 것들을 행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러한 제어와 절제가 하나님께서 신워하여 주시는 것임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6장10~11절에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하고 쓰고 있듯이 여기에서 "죽임을 받았다."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종(로마서 8장3절) 되었던 그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대하여 고난을 겪으시고 마침내 못 박으사 죽으신 그 죽으심을 의미하며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외치며 부르짖는다면 다 각기 자신의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대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이기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고난과 못 박음으로 죽어야 하리니 이것이 온전하고 참된 의미의 "순교(殉敎)" 로써 그런즉 로마서 13장3~4절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하는 것처럼 6000년 동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를 통하여 보이신 거울과 경계와 교훈을 삼아서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의 사슬에서 벗어나기를 힘쓰고 노력(훈련,연습)하지 않는다면 신워하여 주심이 아니라 진노하심에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