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도행전 9장36절에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 에서 "선행(善行)" 과 "구제(救濟)"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야고보서 3장13~14절에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의 지혜와 총명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 증거로써, 확증으로써 "선행" 즉 선(善)을 행함으로 보여야 하리니 여기에서 "선(善)" 이라 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남,타인,상대방)이 잘 볼 수 있는 앞에서나 잘 보야야 하는 곳에는 더 없이 좋고 친절하고 겸손하고 의롭고 착하게 행하다가도 잘 보이지 않는 뒤에서나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이 없는 곳에서는 사람들을 아래로 보면서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들고 언짢은 것에 대하여 돌변하여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그러한 이중적이고 다중적인 모습(자세)이 아니라 이는 말로만, 혀로만, 입으로만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의지한다고 외치며 부르짖는 거짓말장이요 진리를 거스리는 사람이니.....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서의 "선(善)"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마음을 말석(末席)에 둘 줄 알아서 타인의 유익(입장,처지)과 이익(기준,관점)을 존중하며 살피고 이해하여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그것이니 이렇게 "선행" 으로 행하기까지는 물론 불쑥불쑥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못됐고 나쁘고 꼬이고 부정적으로 행한던 악과 죄와 불의와 불법을 제어하고 절제하며 다스릴 줄 알아야 하며 이렇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마음 속 내면에서 있어지는 고뇌와 애통과 많은 심적 갈등 즉 고난은 있기 마련이니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을 이미 앞서서 그리스도께서 겪으셨으며 고난이 없이는 못박아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오직 그 길을 걸으신 것이며 비로소 마침내 하나님의 생명(부활)과 안식과 구원을 얻으심으로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들을 위하심이요 우리로 파멸(멸망,패망)과 사망의 길에서 생명과 안식과 구원의 길로 옮겨주시기 위하여 본보기를 보이신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16~18절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찐대~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하는 것처럼 어떠한 이유가 되었건, 핑계가 되었건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행동은 악한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한 몸에 두 마음(악한 양심,선한 양심)을 품고 있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음행(고린도전서 6장18절)하는 것이요 간음(고린도전서 10장8절)하는 것이니 두 마음을 품고 있고서야 어찌 그 사람에게 선한 양심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으며 온전히 "선행" 으로 행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니 우리 사람(인생)은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 솔직히 칭찬하고 격려하며 박수를 보내는 것에는 상당히 인색하지만 비방(흉보고 욕함)하고 미워하고 훼방(잘못되기를 바람)하고 보복(소심한 복수)하고 함부로(무시,멸시,업신여김)함에는 서슴치 않았던 것이 사실이며 이렇듯 하나님을 잘 몰라 안 믿고 못 믿는 저 세상사람들과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가 별반 차이가 없이 마찬가지로 행하고 있다면 이렇게 참 못났고 부족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난과 못 박히심과 죽으심의 "선행" 을 본으로 보이신 그리스도를 무엇으로, 어떤 것으로 전하며 알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니 우리의 씨름(에베소서 6장12절)과 싸움(전쟁)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하여가 아니라 오직 내면에 숨은 사람의 악한 양심과 선한 양심의 씨름이요 싸움이며 이에서 진 자(베드로후서 2장19절)가 되지 말고 이기는 자(계시록 21장7절)가 되어야 그 종되었던, 사슬에 매였던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으며 이미 앞서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야고보서 3장14~16절)을 이기심으로 본을 보이셨으니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는 것은 우리 또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우리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며 더 나아가서 이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구제" 하는 것이며 이것이 "구제" 의 본질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구제(救濟)" 는 자신이 그 죄와 악과 불의 불법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으면서, 거기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구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이는 여러 죄된 모양(로마서 8장3절), 죄의 종의 형체(빌립보서 2장7~8절)를 벗어버리기 위하여 그 내면으로 씨름하고 싸움하였던 고난으로 말미암아 못박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죄악과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하심으로 죄와 악과 사망의 굴레와 구덩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 사람들을 구제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벗어나야만이, 자유하여야만이 다른 사람들을 구제(구원,구조)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우리로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그리스도(베드로전서 2장9절)처럼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행할 수 있으리니 이것이 진정한 "선행" 이요 "구제" 이며 그런즉 우리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내 코가 석 자" 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닥친 위험이나 환란조차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추스리지 못하며 앞가림도 잘 하지 못하는 부족하고 어리석기는 매 한 가지이기 때문에 구제(구원,구조)와 자유와 생명에 관하여는 어느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으며 믿을 수 없고 오직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성경 곧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그 지혜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심으로 온전히 본보기를 보이신 그리스도의 교훈의 말씀 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