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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이사야 62장2절)

교훈 안에 2019. 8. 21. 19:24

오늘은 이사야 62장2절에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 에서 "이름"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요엘서 2장3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 하고 쓰고 있듯이 "여호와의 이름" 을 부른다는 것은 마치 자녀가 그 부모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그 이름을 욕되게(잠언서 30장9절)하지 않기 위하여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조심하며 그 부모가 이르신 것들을 지켜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외치는 자라면 마땅히 그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마태복음 7장21절)대로 행하여야 하리니 그 뜻은 다름아닌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법(로마서 13장10절)에 기록하고 있으며 이것이 율법의 본질이며 그런즉 말라기서 2장2절에 "~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에스겔서 20장44절)을 돌리는 것임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영(요한복음 4장24절)이시기 때문에 영(靈) 곧 성령(聖靈)이 함께 하시는(이사야 7장14절)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그런즉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예레미야 15장16절)라면 어느 누구보다 앞서서 온전히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지켜 행할 줄 알아야 하며 그래야 하나님의 뜻인 법과 계명을 전하며 가르치는 선생(로마서 2장20~21절)된 자로, 하나님을 뜻을 맡은 스승(디모데전서 2장7~10절)된 자로서 본보기가 되며 떳떳하고 자신있게 전달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서 많은 사람(누가복음 19장10절)들로 하여금 따라오게 하리니 요한복음 5장43절에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 는 하나님의 신(이사야서 61장1절)이 임하신, 하나님의 영(누가복음 4장18절)이 내리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자" 로서 다만 그 시대 그 당대에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이 "그리스도" 이신 한 사람 "예수" 를 영접하기 힘들고 믿기 어려웠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지혜의 말씀인 계명과 법 자체가 지켜 행함에 있어서 그 목소리를 거리로 들리지 않게 높이지 말아야 하고 크게 외치지(주장하지) 않아서 잠잠하여야 하며 또한 상한 갈대(이사야 42장2~3절)라 할지라도 꺾지 않아야 하며 꺼져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끄지 않아야 하고 다만 자신의 유익(입장,처지)이나 이익(기준,관점)은 접어두고 하나님의 공의(정의,공평)로 베풀며 행야여야 하는데 우리 사람은 상하고(부족하고 어리석음) 보잘 것 없이 꺼져가는,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면 가차없이 잘라버리고 꺾어버리고 꺼트려버리기가 더 쉽고 편하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기를 선택함으로 하여 사실상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모습(자세)은 약해 보이고 없어보이고 미련스러워 보이는 면이 없잖아 있으니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끊임없이 우리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육체의 여러 욕심과 그 소욕(갈라디아서 5장17~24절)을 버리고 비우기를 말씀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버리고 비우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심적 갈등)을 겪게 되며 하지만 고난으로 말미암아 못 박아 죽게되는 것이 "십자가의 도(道)이기 때문에 약해(고린도전서 1장21~27절)보이고 미련스러워 보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를 알아보지 못하는 소경이 되고 그 계명과 법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어 각색 병든 자가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사도행전 1장11절)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 즉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39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는 것처럼 첫 번에 유대(이스라엘)땅에 오셨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이(마태복음 21장9절)로서 하나님의 뜻인 계명과 법을 전하고 가르치시고 앞선 선생된 자로, 스승된 자로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과 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심(히브리서 10장7절)으로 하나님 우편(마태복음 26장24절)에 앉아 계시며 다시 오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영(領) 곧 성령(聖靈)이시므로 한 사람 "예수" 에게 그 영(靈)과 신(神)이 임하심으로 "그리스도" 가 되신 것처럼 두 번째 다시 오실 때에는 그리스도의 영(로마서 8장9절)이 임한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주의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가 되리니 이전과 다른 것이 있고 차이가 있다면 세상 끝, 마지막 때에는 추수 때(마태복음 13장39절)이기 때문에 한 사람 곧 맏 아들(그리스도)로 하여금 많은 아들(히브리서 2장10절) 곧 처음 익은 열매(로마서 8장23절)가 "주의 새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가 되며 그 속에 숨은 (속)사람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가르침 즉 그 교훈으로 옷 입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로마서 8장9절)이 되리니 "그리스도의 영(요한복음 6장63절)" 이라 하심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하시면서 전하고 알리시며 가르치시고 몸소 실천하여 행하신 "그리스도의 교훈(요한이서 1장9절)" 의 말씀을 의미하며 이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성령(요한복음 14장26절)이기 때문에 "보혜사" 라 하시는 것이니 다시 말해서 첫 번에 오셨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도(道)" 를 온전히 이루셨다면(요한복음 19장30절) 두 번째 다시 오실 이유와 목적은 없었을 것이며 하지만 두 번째 다시 오실 때에는 그 말씀하시고 전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요한복음 15장26절)" 이시며 그런즉 그 영(靈)이 임하였다면 당연히, 마땅히 그 전하심과 가르침대로 지켜 행할 것이며 지켜 행하여야만이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 즉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리니 말로만, 입으로만, 혀로만 주의 이름을 외치고 부르짖는다고 하여 주의 새 이름(계시록 2장17절)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행함이라는 것을 기억 하셨으면 한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2장19절에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 하고 쓰고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고 말로는 입으로는 혀로는 외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사람임을,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자신있게 말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삶 속에서는 못마땅함에, 언짢음에, 마음에 안 듦에 참지 못하고 견딜 수 없어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사나워져서 다투고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아직도, 여전히, 지금도 하나님의 뜻인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기보다 좋아하고 즐겨 행하고 있으니 어찌 그리스도의 영(靈)이 임한,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로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 되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하시면서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을 행하게 만드는 육체의 욕심과 소욕을 버리고 비우는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보이셨으니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잔인하고 신랄한 죽임은 없겠지만 마음을 찢어 죽기까지 힘쓰고 애쓰고 노력(훈련,연습)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이름을 새길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