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야 62장4절에 "~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 한바가 될 것임이라." 에서 "결혼(結婚)"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결혼", "혼인" 다 같은 의미로써 오늘 본문의 말씀에 하나님께서 "너" 를 기뻐하심으로 결혼한, 혼인한 바가 될 자는 잘 알고 계시듯이 "그리스도(마태복음 3장17절)" 이시며 하나님의 그 기뻐하심에 충족(흡족,만족)되었을 때에 비로소 한 사람 "예수" 께서 그리스도(사도행전 2장36절)가 되시는 것이며 이는 마치 영(靈)이신 하나님께 신랑, 남편(예레미야 3장14절)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있는 지혜의 말씀(누가복음 8장11절) 곧 계명과 (율)법을 받아서 이를 반드시 지켜 행하여야(히브리서 10장7절) 할 육신(몸,신체)을 갖고 있는 우리 사람을 "신부(이사야 62장5절)에 빗대어 하신 말씀으로써 그렇기 때문에 그 자격조건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지켜 행함에 있으니 하지만 그 시대, 그 당대에 하나님의 백성(자녀,성도)들 "이스라엘(유대인)" 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받아서 이를 온전히 지켜 행하심으로 다시 사는 부활 즉 하니님께 속한 생명에 참예하시고 구원의 근원(히브리서 5장7~9절)이 되신 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되신 한 사람 "예수" 밖에 없었으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 계획하신, 뜻하신 모든 것에 관하여 다음을 기약(약속,언약,예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며 그런즉 이는 그리스도를 위하심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고 나타내서 보이신 하나의 표적으로써 먼 훗날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고 하신 세상 끝, 마지막 때 즉 오늘날에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 본과 자취(베드로전서 2장21절)를 좇아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인 그 계명(마가복음 12장31절)과 법(로마서 13장10절)을 지켜 행하는 자들로 모든 것을 갖춘 "신부" 가 되는 것이며 이를 "예복" 이라며 "신부" 를 다른 곳에서는 "처음 익은 열매(로마서 8장23절)", "왕 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장9절)" 이라 표현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며 그 예복을 갖추어 입은 자가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 자(로마서 13장13~14절)"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로마서 8장9절)이 육신(몸,신체)을 갖고 있는 우리 사람에게 임하신 것이요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시는 것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한다.
그래서 처음(첫 언약)에는 영(靈)이신 하나님께서 신랑(남편)으로 오셔서 육신(몸,신체)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결혼한 바, 혼인한 바가 된 것은 오직 그리스도가 되신 한 사람 "예수" 밖에 없었으며 그런즉 새 언약임과 동시에 마지막 남은 약속이 된 둘째 언약(히브리서 8장7~10절)에는 그리스도께서 신랑(남편)이 되어 그리스도께서 신부의 입장과 위치에 있을 때에 본과 자취를 보이신대로 그 신랑이 기뻐하심에 충족되는 신부를 찾아서 결혼(혼인)하고자 하시는 것이니 누가복음 12장36절에 "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다시 오신다(임하신다)고 약속하셨으니 돌아오기 전에 우리 사람(인생)들은 신부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준비하고 예비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 자격요건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앞서서 십자가의 도(道)로써 본보기를 보이셨으며 누가복음 14장8~11절에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고 쓰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가복음 10장45절)고 하신 것처럼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지켜 행하기 위한 기본 자세이기 때문이고 지금 우리 자신이 처한 위치(자리)가 어디에 있든 마음에 숨은 속사람 만큼은 항상 말석(末席)에 두어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빌립보서 2장3~5절)으로 바뀌려, 품으려 부단한 노력(훈련,연습)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道)를 본받아 이에 동참하는 것이 되리니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를 구원하심(시편 149편4절)에 기뻐하신다는 것을 잡아 내셨으면 한다.그러므로 마태복음 22장2~3절에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 하거늘..." 하는 것처럼 여기에서 "자기 아들" 은 세상 끝, 마지막 때에 신랑(남편)되시는 "그리스도" 이시며 그 "어떤 임금" 은 "하나님" 이시며 "그 종들" 은 "천사(계시록 1장1절)들" 이며 "그 청한 사람들" 은 영(靈)이신 신랑(남편)을 맞이하여 깃들게 될 육신(몸,신체)을 갖고 있는 "우리들" 이 되리니 지금까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신랑(남편)이 되어 그 백성(자녀,성도)들을 부르고 모으려(마태복음 23장37절) 한 적이 도대체 몇 번이 셀 수 없을 정도로 혼인 잔치에 오기를 청하였지만 세상을 향한 여러 욕심(욕구,욕망)이 자꾸만 우리 사람(인생)으로 못마땅함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품게 만들었으며 마음에 안드는 것에 비방하고 훼방하며 언짢음에 사나워져서 다투고 서로에게 함부로하기를 서슴치 않는 죄와 악과 불의와 불법에 가로막혀 오기를 꺼려하고 싫어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이제 우리에게 그리하지 말기를 바라고 원하시는 교훈이요 거울과 경계의 말씀이 되어 우리 앞에 있고 이제는 일깨우고 돌이켜서 고쳐 행하는 것이 진정 우리가 입어야 할 예복이요 옳은 행실(계시록 19장7~8절)이라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